창극, 한국과 세계를 잇다-<트로이의 여인들>
- 2016.10.25
- 조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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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한국의 창극이 만났다.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 전쟁 삼부작 중 세 번째 비극을 기반으로 한 <트로이의 여인들>이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서양의 텍스트를 우리 소리로 재창조해온 국립창극단이 그리스 신화를 해석해 우리 소리로 표현한 작품이다. 멸망이 눈앞에 닥친 트로이, 남자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여자들만 남은 비참한 현실을 창극으로 그려낸다.
국립극장•싱가포르예술축제 공동제작으로 11월 국립극장에서 세계 초연되는 이 작품은 세계적인 연출가이자 싱가포르예술축제 예술감독인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양과 한국의 색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한발 먼저 만나보았다.
국립극장•싱가포르예술축제 공동제작으로 11월 국립극장에서 세계 초연되는 이 작품은 세계적인 연출가이자 싱가포르예술축제 예술감독인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양과 한국의 색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한발 먼저 만나보았다.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세계를 아우르는 창극
연출을 맡은 옹켕센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창극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객에서 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그가 내세운 콘셉트는 ‘미니멀리즘’으로, 불필요한 음악적 요소들을 걷어내고 판소리의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0년 전, 1998년 처음 한국에 와서 명창 안숙선이 출연한 <춘향전>과 만신 김금화의 굿판을 접했다. 그때 반드시 창극을 연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2014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작업해 2년간 장기적으로 준비했다. 그동안 전통예술이 동시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과 오늘날 창극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 공연은 창극이라는 오래된 집 위에 여러 겹 칠해진 페인트를 벗겨 본연의 모습을 찾게 하는 과정이다.”
연출을 맡은 옹켕센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창극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객에서 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그가 내세운 콘셉트는 ‘미니멀리즘’으로, 불필요한 음악적 요소들을 걷어내고 판소리의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0년 전, 1998년 처음 한국에 와서 명창 안숙선이 출연한 <춘향전>과 만신 김금화의 굿판을 접했다. 그때 반드시 창극을 연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2014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작업해 2년간 장기적으로 준비했다. 그동안 전통예술이 동시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과 오늘날 창극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 공연은 창극이라는 오래된 집 위에 여러 겹 칠해진 페인트를 벗겨 본연의 모습을 찾게 하는 과정이다.”
(좌) 안숙선 / (우) 정재일
창극의 뿌리인 판소리에 힘을 싣고자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 안숙선 선생이 작창을 맡았다. 안숙선 선생은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라 어떻게 해석을 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어떤 장르나 내용이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했다. <트로이의 여인들> 속 인물들 역시 트로이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이 춘향이가 죽음을 불사하고 낭군을 따르겠다는 마음과 다르지 않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 죽음을 불사하는 트로이의 여성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라며 작창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효신, 이소라의 음반 프로듀싱을 비롯해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 정재일이 안숙선 명창이 작창한 정통 기법의 판소리 곡과 서양 음악을 잇는다. 정재일은 “처음에는 창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판소리의 원형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옹켕센 연출의 비전을 듣고, 지금껏 연극이나 미술 작업을 하면서 실험했던 공간디자인이나 성악을 돋보이게 하는 음악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판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박효신, 이소라의 음반 프로듀싱을 비롯해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 정재일이 안숙선 명창이 작창한 정통 기법의 판소리 곡과 서양 음악을 잇는다. 정재일은 “처음에는 창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판소리의 원형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옹켕센 연출의 비전을 듣고, 지금껏 연극이나 미술 작업을 하면서 실험했던 공간디자인이나 성악을 돋보이게 하는 음악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판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극본을 맡은 배삼식 작가는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기원전 415)과 장 폴 사르트르가 개작한 동명 작품(1965)을 바탕으로 창극을 위한 극본을 다시 썼다. 새로운 극본은 전쟁의 야만성과 비극은 남기되, 전쟁 자체의 끔찍함이 아닌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다.
배삼식 작가는 “많은 작품이 인간의 지혜와 밝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논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리석음, 어두움, 추함 등이 예술에서 더 공을 들여 길게 바라봐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트로이의 여인들>이 수천 년 전 작품이지만 동시대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서투르게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인들의 참상을 들여다보며 희망을 이야기한다.”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배삼식 작가는 “많은 작품이 인간의 지혜와 밝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논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리석음, 어두움, 추함 등이 예술에서 더 공을 들여 길게 바라봐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트로이의 여인들>이 수천 년 전 작품이지만 동시대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서투르게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인들의 참상을 들여다보며 희망을 이야기한다.”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헬레네 역 김준수
옹켕센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 한 나라를 파멸로 치닫게 한 절세가인 헬레네 역에 남자배우 김준수를 캐스팅했다. 판소리의 원형을 찾는 데 이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헬레네를 검색해보면 금발에 푸른 눈의 배우들만 나온다. 아름다움에 대한 굉장한 고정관념이자, 영감을 주는 미녀에 대한 서구적인 시선이다. 헬레네는 그리스에서도, 트로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전쟁의 원인이다. 그래서 양쪽에서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사이’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제3의 성을 도입하고 싶었다. 배우 섭외를 고민하던 중 좋은 배우(김준수)를 만났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수용할 수 없는 인물이면서, 자신의 존엄과 순수성을 강력하게 어필해야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줄 예정이다.”
#한 배역에 하나의 악기, 소리를 전하고 전통을 살리다
“헬레네를 검색해보면 금발에 푸른 눈의 배우들만 나온다. 아름다움에 대한 굉장한 고정관념이자, 영감을 주는 미녀에 대한 서구적인 시선이다. 헬레네는 그리스에서도, 트로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전쟁의 원인이다. 그래서 양쪽에서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사이’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제3의 성을 도입하고 싶었다. 배우 섭외를 고민하던 중 좋은 배우(김준수)를 만났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수용할 수 없는 인물이면서, 자신의 존엄과 순수성을 강력하게 어필해야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줄 예정이다.”
#한 배역에 하나의 악기, 소리를 전하고 전통을 살리다
이번 작품에서는 판소리에서 소리꾼 1명에 고수 1명이 함께 공연하는 전통 방식을 살려, 한 개 배역에 한 개 악기를 배치했다. 첫 번째 시연은 트로이의 공주이자 저주받은 예언자 카산드라(이소연 분)가 무너진 땅을 떠나기 전 광기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카산드라 역에는 불(fire), 불의 신을 상징하는 대금이 합을 맞췄다.
다음으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김지숙 분)가 해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이어갔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트로이의 왕비가 되었을 안드로마케가 노예로 끌려가며 죽은 남편 헥토르에 대한 그리움과 원수의 땅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김지숙 분)가 해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이어갔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트로이의 왕비가 되었을 안드로마케가 노예로 끌려가며 죽은 남편 헥토르에 대한 그리움과 원수의 땅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너는 늙을 일도, 아플 일도 없겠고, 실패해 쓰러질 일도 없겠고…
허나 가끔은 어쩌다 그러하듯 너도 행복할 수 있었으련만…”
허나 가끔은 어쩌다 그러하듯 너도 행복할 수 있었으련만…”
이날 마지막 시연은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 헤큐바(김금미 분)가 장식했다. 트로이 왕가의 마지막 핏줄인 손자의 시체를 손에 안고, 왕국의 모든 희망이 사라진 통한을 가야금 선율이 받쳐주었다.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기나긴 전쟁의 도화선이 된 헬레네(김준수 분)의 창에는 피아노가 함께할 예정이다.
그리스의 고전과 한국의 전통예술이 어우러진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오는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김윤희 (www.alstudio.co.kr)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김윤희 (www.alstu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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