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비추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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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비리, ‘갑’들의 전횡, 무능하고 무책임한 위정자들…새삼스러운 풍경도 아니지만, 요즘 부쩍 자주 뉴스를 통해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야말로 난장판과 같은 지금의 정국을 가리키며 혹자는 “영화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 전에 무대만 둘러봐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공연은 이미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연은 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우리의 맨 얼굴을 비추고 있을까.

 
언론과 정부의 아우성 속에 소외되는 개인 <두개의 방> 
지난 달 20일 국내 초연 무대에 오른 <두 개의 방>은 우리 사회에 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과 정부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어떤 식으로 개인을 소외시키는지 보여준다. 이 연극에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마이클과 그의 아내 레이니,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와 레이니를 취재하는 기자가 등장한다. 정부 관계자와 기자는 나름의 타당성을 내세워 레이니를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록 정작 마이클과 레이니는 사건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애타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는 레이니와 달리 정부는 주목도가 더 높은 사건에 집중하느라 마이클의 ‘순서’를 뒤로 미루고, 언론은 오직 특종을 위해 레이니에게 몰려온다. 당사자의 고통과 슬픔, 두려움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개인의 고통이 깊이 공감되기 전에 수많은 뉴스와 정부의 지침만 먼저 쏟아지는 우리의 현실이 이미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교묘히 위장되는 성폭력 <블랙버드>
영화계, 문학계, 미술계…최근 곳곳에서 성폭행·성추행 사건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농락한 사실이 밝혀진데다, 가해자로 지목된 몇몇 인사들이 어설픈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더 큰 공분을 샀다.

나이, 직위 등 ‘갑’의 위치를 이용한 성폭력, 그리고 이를 사랑과 애정으로 교묘히 포장하는 행태는 연극 <블랙버드>에서 생생히 그려진다. 이 공연에는 열 두 살의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사건을 저지른 후 15년이 지난 뒤 자신을 찾아온 여자에게 자신이 한 일이 ‘성적 학대’가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항변한다. 그의 말은 너무도 그럴듯해 여자마저 혼란에 빠뜨릴 정도다.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남자의 뻔뻔한 모습이 오늘날 몇몇 가해자들의 모습을 씁쓸히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의 무능 혹은 무책임 <날 보러 와요>
검찰은 과연 진상을 제대로 밝혀낼까? 아니, 애초에 그럴 생각이 있을까? 최근 불거진 각종 비리의혹의 수사권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검찰을 주시하고 있다. 연극 <날 보러와요> 속 경찰들의 답답한 수사 행태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1980년대 말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날 보러와요>에는 네 명의 형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어떻게든 진범을 찾겠다는 결의에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수사 환경 탓에 번번이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고 만다. 무모증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찾기 위해 새벽 네 시부터 온 동네 목욕탕을 돌아다니고, 살인 현장 주변의 흙을 무턱대고 퍼와 체모를 찾는 이들의 모습이 허탈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유력한 용의자의 입국을 보고만 있고, 카메라도 없이 취조를 진행한다. 이들은 과연 무능한 것일까 무책임한 것일까.
 
우매한 왕과 그를 유혹하는 자들 <맥베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드>는 마녀들의 예언을 믿고 끊임없이 살육을 저지르는 왕의 이야기다. 장군이었던 맥베드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 홀려 반역을 일으켜 왕좌에 앉고, 이후에도 분별을 잃은 채 계속 폭정을 저지른다. 약 반세기 전 쓰인 이 비극이, 너무도 절묘하게 지금의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간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어 온 이 작품은 지휘자 구자범과 고선웅 연출의 참여 아래 이달 말 오페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다. 구자범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오페라 <맥베드>가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극중 ‘난 내게 잘못한 사람의 배를 침몰시킬 거야’라는 마녀들의 합창, 그리고 맥베드의 부인이 맥베드에의 권력욕을 부추기며 조정하는 모습 등이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는 것.

다행히도 <맥베드>의 이야기는 영주들의 분노를 산 맥베드가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끝난다. 이 역시 우리의 현실을 담고 있는지, 두고 볼 일이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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