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아버지 없다구요?" 여전히 가부장적 폭력 난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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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과 고독감이 어린 조광화를 지배했다. 가만히 누워서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일상은 그에게 권태 그 자체였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남자 아이들의 패거리 문화가 그렇게 싫었다. 그런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어시간에 희곡을 읽게 되었는데 교실 안은 정적이 흘렀고 대사를 마친 그가 책에서 눈을 뗐을 때 반 아이들의 탄성이 퍼졌다. 심장의 존재를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조광화에게 연극은 심장이 쿵쾅되는 환희의 경험이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가 올해 연출 데뷔 20주년을 맞아 <조광화 展>을 연다. 1992년 신춘문예 희곡부문 장마가 당선되면서 데뷔한 조광화 연출은 20주년을 맞아 2월 16일 <남자충동>과 3월 <미친키스>, 5월 신작 연극을 올린다. 1월 중순 대학로 소극장 TOM 연습실에서 만난 조광화는 “(남자충동) 작품 20년은 그럴만한데 연출 20년은 참.. 한 것도 없이 부끄러움만 커지고 있다”고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남자충동>은 1997년에 초연 하고 당시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비롯해 백상예술대상 희곡상과 대상 등을 휩쓴 화제의 작품이다. 2004년에 이어 올해가 세번째 재연 무대다. <남자충동>은 영화 '대부'를 보고 알 파치노처럼 되겠다며 삼류 폭력조직을 이끄는 남자 장정의 이야기를 우화처럼 다루고 있다.

<남자충동>은 조광화 연출에게도 특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 때문에 쓴거다. 내 옛날 작품 대부분이 그렇다. 난 왜이리 세상이 힘들까, 남자는 어떻게 생겨 먹은건지 남자의 속성을 파헤치다 이 작품을 쓰게 됐다. 남자충동 초연때 부모님이 연극을 보러 오셨다. 공연이 끝나고 어머니가 ‘니가 내얘기를 쓰려고 작가가 되었구나’고 말씀하시더라”

“우리 아버지는 아이들을 때리고 엄마를 괴롭혔다. 엄마는 왜 저 끔찍한 남편을 버리고 나가버리지 못하나. 남자든 여자든 현재도 이어지는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의식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출발하는지 그런 고민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남자충동>이 쓰여진 지 20년이 지났다. 젊은 관객이 작품을 보면서 조금 다르게 느낄 수 도 있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작품을 리뷰하게 했을 때 가장 처음 나오는 반응이 ‘때리는 아버지 요즘 없는대요?!’였다 (그는 서울예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건 사실 지엽적인 부분이다. 폭력 그 자체보다는 폭력적인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핵심이다. 폭력도 수위를 낮추고 우화적으로 희화화했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착시현상이다. 현재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며 오히려 더 무섭게 억압하지 않나 싶다. 가부장적 사회는 거짓 욕망을 심어주며 모두가 1등이 되기를 권유한다. 실상은 1등은 소수에 한정될 뿐이고 대다수의 많은 이들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이런 좌절감이 폭력으로 분출된다.”

오랜만에 재연되는 <남자충동>이 주목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류승범과 박해수가 남자 장정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박해수는 <됴화만발>,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조광화와 세번째로 작품을 같이 하고 있다.  

“내 작품 거칠다고 하는데 항상 두가지를 가지려고 했다. 파워와 서정성이다. 무대에 객석을 압도하는 배우의 정열, 즉 공간의 카리스마와 서정성(외로움)이다. (박)해수나 (류)승범이는 둘 다 갖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동물 스러움, 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강하다. 그런데 어이없을 만큼 순진하고 단순해서 풍자적이고 희화적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요즘 배우들은 점점 소프트하고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승범이는 좀더 야생마같다. 에너지 덩어리다. 그의 예전영화에서 맡았던 양아치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면들, 위험하고 귀여운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두 배우의 강점을 설명했다.
 
그와 중앙대 연극무대 선후배 관계이기도 한 고선웅 연출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성향을 작품에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유는 극장에 오는 관객은 다양한 성향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카타르시스가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조광화 연출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 역시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은 인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정치를 떠날 수가 없다. 둘만 모여도 주도권 싸움이다. 갈등이 생긴다. 인간이 왜 힘들까, 인간이 왜 인간적이지 못하고 천박하고 추악해질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사회와 정치를 얘기하게 된다. 방점이 어디 있는가의 문제 같다. 방점이 인간의 조건에 찍힌다면 그건 드라마고 구체적으로 정책까지 간다면 선동적인 작품일 거다.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박근혜 정권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니까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인간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중심사회에 대해 고발하는 것 역시 수위에 따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건지, 자신의 피해의식인지는 한발의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사회다. 넌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공격하는 게 문제다. 세상이 노골적으로 폭력적일때는 연극 <권리장전 검열각하>처럼 저항해야 한다. 우화적으로 말하면 알 수가 없다”
 

글: 김선경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uncanny@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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