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걸과 친구들
- 장르
- 무용 - 발레
- 일시
- 2009.07.11 ~ 2009.07.12
- 장소
- LG아트센터
- 관람시간
- 0분
- 관람등급
- 만 8세이상
전문가평
평점 6.7예매자평
평점 9전문가평
평점 6.7예매자평
평점 9출연진
작품설명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의 자리를 박차고 파리로 간 김용걸.
전체 단원의 단 5%만 외국단원인 파리오페라발레단
그곳에 동양인 최초의 남자무용수로 입단.
“누구 하나 다쳐야지 그 자리에 들어가고, 항상 뒤에 서서 어깨 너머로 동작을 배워야 하고
언제 누구 자리 들어갈지 몰라, 많은 사람들 순서 다 외어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역을 수행하라는 경우가 많아, 늘 긴장을 풀지 못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회이고 경험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춤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김용걸은 파리오페라단 가장 밑바닥에서 발레리노 쉬제(Sujet)의 자리에 오른다. 2009년 파리 오페라발레단을 그만 두고, 지도자로 한국에 돌아올 김용걸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무용수로 3년 만에 국내 무대에 다시 선다.
무대에 서는 동안, 그의 곁에서 함께 빛나던 아름다운 친구들과 함께!!
ISSUE 1. 세계로 가장 높이 도약한 발레리노 김용걸
27살의 늦은 나이로 오디션을 통해 파리오페라단 최초의 동양인 남자 무용수로 입단, 밑바닥에서 최고의 발레리노 '쉬제'에까지 오른 그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강수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김지영보다 대단한 성취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서양인에 뒤지지 않는 신체조건과 섬세한 테크닉과 표현력으로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무용수로 평가 받는 김용걸은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실력을 키운 순수 국내파 아티스트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하여 데뷔 이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고, 가벼운 도약과 힘찬 움직임,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감동시키며 스타 발레리노로 떠오른다. 한국인 최초로 1997년 모스크바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1998년 파리 국제무용콩쿠르에서 김지영과 듀엣부분 1등.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안 당시 여왕 앞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는다. 1999년 김지영과 함께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장을 수상한다. 2000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를 떠나 동양인 발레리노 최초로 파리오페라 발레단에 입성한다. 한국의 주역무용수임을 잊으려 노력했던 군무시절 동양인으로써 서양의 무용 발레를 하면서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열정을 가지고 특기와 재능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성실함으로 연습에 임한 김용걸은 2002년 말에는 드미 솔리스트로 당당하게 승급되며, 동양의 떠오르는 발레리노로 주목 받는다. 2005년 동양인 최초로 솔리스트에 등급한 김용걸은 이듬해 파리오페라발레단 첫 주역 공연을 가지며, 높이 더 높이 도약한다.
세계 정상급 발레단, 현대무용단의 스타들이 함께 모였다
- 김용걸과 파리오페라 발레단 주역 무용수 오헬리아 벨레(Aurelia Bellet)
- 세계 최고,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배주윤 & 안드레이 볼로틴(Andrey Bolotin)
- 포스트 강수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효정 & 알렉산더 존스(Alexander Jones)
- 최고의 테크닉, 미국 컴플렉션스 발레단 조주환
- 현대 무용의 지존, 미국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의 정현진
- 런던 현대무용의 강자, 영국 러셀 말리판트 무용단의 김경신
- 국립발레단원에서 아시아의 대표 발레단 주역으로, 싱가포르댄스시어터의 박나리
- 국내 최고의 스타커플,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강예나 & 이현준
- LDP, 유니버설 발레단Ⅱ의 화려한 군무와 영스타들의 춤
전문가 2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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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6김소민
‘김용걸’은 너무 긴장했고 ‘친구들’의 수준은 예년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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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김용걸이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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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플레이디비 편집부
기복이 있었던 만찬, 단연 돋보였던 김용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