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타이 손 피아노 리사이틀

장르
클래식/오페라 - 클래식
일시
2010.06.23 ~ 2010.06.23
장소
예술의전당
관람시간
0분
관람등급
만 8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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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쇼팽이 사랑한 피아니스트 당타이 손

제10회 쇼팽 콩쿠르 수상자인 당 타이 손이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에 내한하여 쇼팽의 진수를 선사한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절묘한 피아니시모와 감각적인 루바토로 청중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 줄 것이다.

1980년,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베트남에서 온 한 청년이 이보 포코렐리치를 제치고 우승자로 등극했다. 이 콩쿠르 사상 최초로 동양인이 우승을 하는 '사건'은 피아노계에 일대 파란은 일으켰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섬세함과 추종을 불허하는 음악성으로 전세계 무대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국내 내한공연은 2005년 이후로 5년만의 무대로, 쇼팽 탄생200주년인 2010년에 당타이손이 쇼팽 곡 연주를 통해 쇼팽이 살아서 돌아온 것 같은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 할 것이다.

쇼팽이 사랑한 피아니스트 당타이 손은 베트남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척박한 환경에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던 당 타이 손. 그의 평탄하지 못했던 인생의 깊이와, 그런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음악에 대한 사랑이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에 스며들어 그 어떤 연주자와 비교될 수 없는 당 타이 손 만의 쇼팽을 탄생 시켰다. 쇼팽 콩쿠르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 그와 쇼팽은 강한 인연을 갖고 있다.
당타이손과 쇼팽과의 첫만남은 음반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년기 그리고 청년 시절의 당 타이 손에게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주었던 피아니스트로는 리히테르에 이어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있다. 1970년에 당 타이 손의 어머니 리엔이 쇼팽 콩쿠르 참관인으로 초청되었을 때 그녀가 사갖고 돌아온 라이브 음반 속에는 1965년에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아르헤리치의 본선 연주가 들어 있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속도감과 스릴이 느껴졌고 게다가 정열적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강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당 타이 손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지칠 줄 모르고 레코드를 들었다. 이 레코드들은 중요한 선생이 되어 주었고 쇼팽의 음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쇼팽과 당 타이 손 모두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반면, 메트로놈 처럼 정확하고 규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쇼팽의 피아노 위에는 항상 메트로놈이 놓여 있었고, 오른손(선율)이 유연한 루바토를 표현할 지라도 왼손(반주)은 항상 박자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 타이 손 또한 어릴 적부터 메트로놈 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규율을 고수 하였으나, 전세계 곳곳으로 연주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자유로운 일정과 여유로운 환경에서 진정한 ‘루바토’를 체득하게 되었고, 그의 음악에서 쇼팽이 원하던 흔들리지 않는 박자 안에서 피어나는 유연한, 바로 그 ‘루바토’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쇼팽을 완성하기 위한 ‘루바토 Rubato’
당 타이 손은 쇼팽 작품들을 연주하면서 루바토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템포 루바토는 하나의 프레이즈 가운데 템포를 자유로이 가감해서 연주하는 것이고, 기계적인 정확성을 대신해서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한다. 템포를 약간 흔드는 것, 아주 약간 음와 음의 사이를 만드는 것이다. “쇼팽의 작품에서 루바토는 선율의 프레이즈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파악되면 작품의 논리적인 전개도 해결됩니다. 쇼팽 연주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이 루바토라고 말할 수 있지요. 루바토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루바토를 체득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릴 때 규칙을 지키며 생활을 하고, 시간과 규범을 잘 지키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고, 같은 시간에 돌아오며, 공부나 연습이나 일을 거르지 않고 레일 위를 곧장 달려왔어요. 이런 생활에서는 루바토의 감각을 결코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서방 세계에서도 활동하게 되었고 특히 캐나다에 이주해 살면서 정신적인 자유를 얻게 됐습니다. 자유스런 시간을 만끽하고, 한 점 구애 받을 것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 처음으로 루바토가 지닌 본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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