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조쿠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20.01.01 ~ 2020.01.11
장소
예술공간 서울
관람시간
100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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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19세기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Asher Miller)’ 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희곡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전쟁을 비판한 심리극 <모두 내 아들>로 평론가상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은 1983년 공산주의 체제하의 중국 베이징 인민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된 바 있는 작품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았을 때, 이게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부자유친’ 이라는 말은 가정윤리의 실천덕목인 오륜의 하나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를 하자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와 가깝지 않다. 단순히 ‘아버지와 친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넘어 아버지와 자식 간에 넘어갈 수 없는 ‘벽’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20세기 후반, 아무리 냉전시대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에서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아서 밀러의 공연이 상영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밀러가 표현하고자 했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었던 ‘사회’ 의 부정적인 모습은 이념을 뛰어 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이 아니었을까?
희곡 <가조쿠(家族)>는 ‘아버지와 아들’ 즉,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소통의 부재’를 만들어 낸 것이 과연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야하는 것인가?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사회’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까지 발전시키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만성적인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권력만능주의, 독선주의, 보수와 진보 당파적 대결주의, 기회주의 등의 온갖 고집과 아집에 매몰되어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약 2000년 전부터 뿌리 내린 민주주의를 우린 고작 50년이라는 세월동안 단기 ‘수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수혈’의 과정은 우리에게 뼈아팠다. 이승만의 반민주적 개헌으로 인한 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1인 독재와 군사정권.
2016년, 39년 동안의 ‘죄인’의 쇠사슬을 벗어던진 사건이 있었다. 재일교포간첩단 조작사건. 박정희정권은 재일 교포 사회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재일 교포 대학생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유학을 시키며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 시도하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헌법발표 이후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중앙정보부는 연이어 조작된 간첩사건을 일으켜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특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약자들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일동포도 이에 해당되었다. 더 나아가 재일동포와 약간이라도 관련이 있거나 심지어 관련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연행되어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지금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순히 그냥 ‘사건’ 으로 치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피해자들의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새로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사건’의 피해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우리의 삶, 이 시대의 피해자로서의 우리의 삶을 조명하려고 한다. 직접적인 사건의 노출이 아닌, 간접적인 사건의 노출로서의 피해자인 우리의 삶의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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