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19세기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Asher Miller)’ 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희곡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전쟁을 비판한 심리극 <모두 내 아들>로 평론가상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은 1983년 공산주의 체제하의 중국 베이징 인민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된 바 있는 작품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았을 때, 이게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부자유친’ 이라는 말은 가정윤리의 실천덕목인 오륜의 하나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를 하자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와 가깝지 않다. 단순히 ‘아버지와 친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넘어 아버지와 자식 간에 넘어갈 수 없는 ‘벽’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20세기 후반, 아무리 냉전시대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에서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아서 밀러의 공연이 상영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밀러가 표현하고자 했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었던 ‘사회’ 의 부정적인 모습은 이념을 뛰어 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이 아니었을까?
희곡 <가조쿠(家族)>는 ‘아버지와 아들’ 즉,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소통의 부재’를 만들어 낸 것이 과연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야하는 것인가?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사회’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까지 발전시키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만성적인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권력만능주의, 독선주의, 보수와 진보 당파적 대결주의, 기회주의 등의 온갖 고집과 아집에 매몰되어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약 2000년 전부터 뿌리 내린 민주주의를 우린 고작 50년이라는 세월동안 단기 ‘수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수혈’의 과정은 우리에게 뼈아팠다. 이승만의 반민주적 개헌으로 인한 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1인 독재와 군사정권.
2016년, 39년 동안의 ‘죄인’의 쇠사슬을 벗어던진 사건이 있었다. 재일교포간첩단 조작사건. 박정희정권은 재일 교포 사회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재일 교포 대학생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유학을 시키며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 시도하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헌법발표 이후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중앙정보부는 연이어 조작된 간첩사건을 일으켜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특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약자들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일동포도 이에 해당되었다. 더 나아가 재일동포와 약간이라도 관련이 있거나 심지어 관련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연행되어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지금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순히 그냥 ‘사건’ 으로 치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피해자들의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새로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사건’의 피해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우리의 삶, 이 시대의 피해자로서의 우리의 삶을 조명하려고 한다. 직접적인 사건의 노출이 아닌, 간접적인 사건의 노출로서의 피해자인 우리의 삶의 이야기 이다.

줄거리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 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 고교시절, 한국에서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지만 아버지의 집안에 대한 폭력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머릿속에서 가족에 의미를 거세한 채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떠나게 되고 이내 일본으로의 귀화를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속에 있는 ‘한국인’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즈토는 구단의 새로운 사업인 ‘글로벌마린스트레이닝쉽’의 한국 스카우터로 발령받게 된다. 한국의 엄수빈 이라는 고교선수와의 미팅을 담당하게 된 시즈토는 ‘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구단과 여자 친구인 텐도 스즈카의 설득으로 인하여 한국으로 향하게 된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미팅을 마무리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시즈토에게 17년 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의 가족이 나타나게 되고, 과거 아버지가 겪었던 ‘재일교포간첩단사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즈토가 찹찹한 마음으로 애인 텐도와 일본으로 돌아온 어느 날, 마린스타디움에서 주니치 드래곤스와 지바롯데 마린스의 경기를 관람한다. 마침 김태균 선수가 6회에서 두 번째 타자로 등장하여 친 공이 경기장 하늘을 나른다. 텐도는 하늘로 뻗어가는 공을 보며 시즈토에게 뱃속에 시즈토와 본인의 2세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캐릭터

엄주철 | 1949년생 / 1977년 억울하게 재일교포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8년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인물이다. 극 중, 사카즈키 시즈토(한국이름 엄기영)의 아버지로 주된 갈등을 만들어낸다.

엄규태 | 1971년생 / 재일교포간첩단 사건으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을 지키려했던 가장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엄수빈 | 1993년생 / 2010년 현재,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 선수이다. 사카즈키 시즈토(한국이름 엄기영)가 집을 나가고 4년 후, 엄주철이 집에 데려온 고아다. 엄주철에겐 집을 나간 사카즈키 시즈토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글로벌마린스트레이닝쉽’ 선수로 선발되면서 사건의 발단을 만든다.

채승호 | 1974년생 / 엄규태와 공사판에서 만나 지금까지 함께 엄규태 가족 옆에 있는 든든한 제2의 가족이다. 현재 ‘채승호의 청소센터’ 사장으로 있다.

사카즈키 시즈토 | 1977년생 / 고교시절, 한국야구의 희망으로 불리던 야구선수였다. 아버지와의 갈등, 자신이 유일하게 기대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떠나게 되고, 일본으로 귀화하게 된다. 자신에게 ‘가족’ 이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야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하고 이른 은퇴, 이후 일본 프로야구 구단 ‘지바롯데마린스’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글로벌마린스트레이닝쉽’을 이유로 약 20년만에 한국에 방문하게 되고 엄수빈을 시작으로 잊고있었던 ‘가족’을 만나게 된다.

텐도 스즈카 | 1980년생 /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의 오래된 연인이다. 일본야구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 아버지가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을 일본에 데려오고 그로 인하여 어릴 때부터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현재는 ‘지바롯데마린스’ 해외스카우트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릴 적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하여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의 옆에서 누구보다 아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고바야시 다이고 | 1973년생 / ‘지바롯데마린스’ 한국 파견 스카우터 이다. ‘글로벌마린스트레이닝쉽’에 한국 선수 엄수빈을 추천 한 인물이다.

타니마치 쇼타 | 1977년생 / ‘지바롯데마린스’ 기획팀 대리이다. 사카즈키 시즈토(엄기영) 과 입사 동기이다.

이시쿠라 아야 | 1988년생 / ‘지바롯데마린스’ 기획팀 경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