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의도
# 무엇이 여혐을 조장하는가?
수천 년 동안 인간사에 축적된 가부장제와 성차별 시스템은 2016년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그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여성 혐오는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제3의 성'을 구분 짓는 것에서 비롯됐다. 젠더 구분은 '만들어진 것'으로써, 젠더 문제 이외에도 생물학적/계급적/인종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세상이 잘못됐다.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은 신화화 된 성을 깨부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폭력을 비판하고자 한다.

# '예수, 다시 말해 신(God)이 남성이 아니라면? 성기(고추)가 없다면?'
신의 아들 예수에게 고추가 없다는 설정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혼란을 야기한다. 성기가 없는 예수, 남성성과 여성성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예수를 과연 사람들이 '신'으로 여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불편함을 통해 우리는 고정관념과 일상적인 차별의 시선을 성찰할 수 있을까.

작품의 특징
#1 혐오와 차별을 고발한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여성이 있었다. 인류 역사를 함께 해온 가부장제와 여성 억압의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은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라서" 제자들로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던 막달레나. 오늘날 대학 청소노동자, 항공사 승무원, 콜센터 직원, 중고등학교 교사는 모두 막달레나의 다른 이름이다.
여성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했던 예수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다. 남성 중심으로 해석되어온 "진리"는 도대체 어떤 진리이며 누구를 자유롭게 해왔던 것일까.

#2 성서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연극화하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이유. 왜 신은 딸이 아닌 아들을 이 땅에 보냈을까.
만약 예수가 아들이 아니었다면? 남성을 상징하는 고추가 없다면?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전제에 발칙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고 물음은 곧 예수의 신체의 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인 부위를 제거함으로써 예수의 구원사 전체는 제동이 걸린다.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은 역사라는 웅덩이에 '만약'이라는 상상력의 조약돌을 던지면서 생기는 파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3 재치 넘치는 가사와 재기발랄한 멜로디가 함께 하는 창작노래극!
<예수 고추 실종 사건>은 2천 년 전 성서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대사와 노래를 통해 객석에 있는 관객을 초대한다. 스무 곡이 넘는 창작곡들 중에서 특별히 엄선된 4곡의 넘버는 서사적 기법을 활용한 음악극의 중심을 잡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막이 오르자마자 울려 퍼지는 <요한의 서곡>은 극을 관통하는 질문을 서정적인 멜로디에 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예수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요한이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리자 모두는 패닉에 빠지는데, 이때 고추가 직접 등장하여 부르는 <고추 이야기>는 깜찍하지만 강렬한 가사가 포인트다. 더불어 <마리아의 아리아>, <그까짓 것> 등 또한 연극의 재미를 한층 더 부각시키며 지루한 틈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4 전 세계 73억의 인구 중 33%는 기독교. 24억 명의 ‘구원자’ 예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유대와 온 민족을 구원하러 이 땅에 왔다. 그의 이름을 믿는 자,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 예수의 이야기가 극화를 통해 재현된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요한, 막달레나, 안드레, 가브리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이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역사 속 인물들이 현대화된 오늘날의 서사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줄거리

신의 아들 예수, 사실 그는 ‘아들’이 아니었다?

최후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겟세마네에 도달한 예수와 제자들. 죽음을 앞두고 공포와 번민에 싸인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가부장적인 수제자 베드로와 소위 ‘드센 여자’ 막달레나는 여느 때처럼 사소한 것들로 티격태격한다. 요한은 둘 사이를 중재하느라 애를 먹는다. 베드로는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막달레나가 거슬린다.
그러던 중 막달레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약을 챙겨 먹이라고 했던 부탁이 떠오른다. 목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예수에게 여성인 막달레나가 직접 전달해 줄 수 없어 요한이 예수에게 약을 전해주러 간다. 둘만 남게 된 베드로와 막달레나는 어색해진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베드로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대화는 결국 또 다시 싸움으로 이어진다.

둘의 싸움이 고조될 무렵, 요한이 돌아온다. 사색이 된 채로. “귀신을 본 것이냐”고 추궁하는 베드로의 말에 요한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혈질 베드로는 요한의 입을 열게 하려고 심히 다그친다. 그 순간 요한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베드로와 막달레나는 말을 잇지 못한다.

“없어… 그분에겐 고추가 없어!”

요한은 그밖에 다른 설명이 없다. 예수의 ‘그곳’을 “보았으나 본 것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요한의 말을 빌리자면 예수의 성기는 ‘눈부신 태양’과 같다. 눈으로 정확히 볼 수 없는, 보아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러나 남성의 고추와는 다르게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요한은 확신한다.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막달레나는 더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그게 꼭 있어야 하나요?”

베드로는 이 상황에 경악한다. 베드로에게 ‘신’은 당연히 남성이다. ‘고추’가 없다는 건 예수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발대발한 베드로는 ‘진실을 말해 줄 유일한 사람’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달려간다. 막달레나가 무례하다며 극구 만류하려 하지만 베드로는 이미 떠난 뒤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는 문을 열지 못한다. 아무런 말이 없다. 마리아는 홀로 슬픈 방백을 읊는다.

“우리 여자들은 항상 침묵해야만 했다. 남자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강요했다…”

예수는 정녕 남성이 아닌 걸까? 여자일까? 사람이 아닌 걸까? 고추는 어디로 갔을까? 베드로와 막달레나의 논쟁은 격해지고, 급기야 이성을 잃고야 마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마리아는 계속 말이 없다. 씻으러 간 예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예수 고추 실종 사건>, 진실은 어디에? 사건의 끝은 어떻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