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세상은 소란스럽다. 끝없이 재잘거린다.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고, 휴대폰 속 상대에게 말하고, 누군가의 뒤통수를 보고도, 밥을 먹으면서도, 차를 마시면서도, 심지어 연극을 보기 위해 들어간 공연장에서도 귀에 입을 대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말이 많은 세상을 산다.

그런데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내 이야기만 하기 바쁘다. 내 주장만 내세우기 바쁘다. 때문에 우리는 더 외롭고, 우울하고, 갈등하고, 먹어도 허기가 지는 것처럼 더부룩한 삶을 살고 있다. 끝없이 말을 하면서도 말이다.

결국 대화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소통은 이루어지고, 상처는 치유가 되고, 외로움은 잦아든다. 여기 ‘횡단보도 옆 천원 상담소’가 있다. 괴짜 상담사가 사는. 늘 퉁명스러운 표정의, 비밀을 간직한 남자. 남자가 하는 일은 오직 듣는 것뿐! 그럼에도 사람들은 온다. 와서 이야기한다. 그들 모두는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묻고 싶다. 당신 곁에는 내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 줄 누군가가 있는가?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있는가?

 

이와 같은 주제의 내용을, 조미료를 뺀 산채음식처럼 일견 심심하지만 결국은 편안해질 수 있게, 어른용 동화를 쓴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았다.

줄거리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빈티지한 분위기의 상담소 안. 상담소라고 하지만 이곳은 희재의 거실, 침실, 부엌이기도 한 공간. 세트 트레이닝복을 입은 표정 없는 상담사.

보통의 상담소와 다른 이곳의 특징은 10분 상담에 상담료 1000원. 정해진 시간 10분이 지나면 희재는 가차 없이 상담을 끝내고, 내담자(상담을 받으러 온 자)는 탁자 위 대형 돼지저금통에 1000원을 넣으면 된다. 상담소는 횡단보도 옆에 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병존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

부(父)를 창출했지만, 쇼윈도 부부 홍석기와 변금선.

순한 기질을 타고났지만, 생존을 위해 직장에서는 악랄한 마녀가 되어야 하는 정설화.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서민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을 다녀야 하는데 그곳에서 해고를 당한 홍수경.

아내가 떠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된 한준호와 그의 수다쟁이 아들 한동화.

갑자기 터지는 소변(요절박) 때문에 허락도 없이 들이닥쳐 인연을 맺게 된 강혜빈.

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비밀을 간직한 상담사 희재는 조금씩 편안함을 찾아간다.

그런데! 비가 세차게 내린 어느 날, 채호가 찾아온다. 그리고 희재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