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햄릿을 잘 모르는 혹은 햄릿을 잘 알고 있는 모든 관객을 위한 햄릿
'죽느냐 사느냐'의 심각한 고민 속에 빠진 칙칙한 무게를 덜어내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광대극으로 재탄생한 <노래하듯이 햄릿. '햄릿'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햄릿'을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햄릿'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흥미로운 햄잇의 이야기로서 그리고 '햄릿'을 잘 아는 관객들에게는 '햇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에 대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공연이다.
<노래하듯이 햄릿>은 공연창작집단 뛰다 '인형음악극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인형. 오브제, 음악, 광대 등 뛰다 특유의 연기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으며, 절묘한 구성이 돋보이는 시적 장면들과 작곡가 한정림의 마침맞은 음악이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연이다. 2005년부터 총 4년여의 기간동안, 수없이 갈고 다듬는 섬세한 창작과정을 통해 마치 장인이 하나의 완성품을 뽑아내듯 만들어낸 작품이다.
햄릿의 모든 인물들을 4명의 광대가 인형과 가면을 통해 연기하고, 여기에 28곡의 아름다운 노래가 덛붙여진다. 뛰다의 인형음악극은 아동극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인형을 공연예술의 새로운 언어로 격상시키고, 뮤지컬로 획일화된 음악극의 지평을 확대하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양식이다. '햄릿'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공연의 양식까지 뛰다만의 스타일로 풀어내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아닌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인형음악극 '햄릿'이 만들어졌다.
<노래하듯이 햄릿>은 연출 배요섭. 작곡 한정림. 무대 김경희. 의상 이진희 그리고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최고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만들었다. <노래하듯이 햄릿>은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아동극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 있어서도 고유의 연기 메소드와 스타일을 갖춘 극단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네 명의 익살광대들이 펼치는 희극적 비극
네 명의 무덤지기 익살광대들이 수레를 끌고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영혼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자이다. 죽은 이들의 물건이나 그의 형상을 본뜬 가면과 인형들을 정성스레 모셔 놓고 저승길로 인도해 주는 노래를 불러줍니다. 이들의 수레 속엔 수많은 이들의 사연들이 담겨져 있고, 그 사연들로 수다 떨며 노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낙입니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삶을 끝내고 심판받으러 가는 관문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욕망과 미련을 멈추게 하고 또 다른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또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죽이고 싸우고, 복수 못해 안달하고, 사랑 잃은 슬픔에 가슴 저미는 삶들 모두가 그들에게는 우습고 허망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웃고 떠들 수밖에요.
인형과 가면, 음악이 어우러지는 난장판
<노래하듯이 햄릿>은 죽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가지고 노는 한바탕 난장입니다. 네 명의 광대들이 햄릿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모두 연기합니다. 장례를 치루고 남겨둔 물건들은 이들이 변신하는 도구가 됩니다. 광대들은 또한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노래로 각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그 노래들이 떄로는 매우 애절하고 절실하게 들리기도 하고, 떄로는 낯설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피아노와 첼로의 그리고 퍼쿠션의 앙상블은 배우들의 코믹한 창법과 어우러져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마치 극 전체의 음악은 장례식의 곡소리와 구석에서 벌어지는 왁자지껄한 화투판의 웃음소리가 버무려진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뛰다의 햄릿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인 <햄릿>. 무수한 햄릿들이 무대에 올라갔고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래하듯이 햄릿>은 원작 햄릿이야기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대본과 연출을 맡은 배요섭의 새로운 접근과 노련한 뛰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어우러져 이제껏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뛰다만의‘햄릿’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캐릭터의 사연을 부각시키고,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던 햄릿의 캐릭터를 조롱하면서 ‘햄릿’에 대한 해석 자체를 거부하여 관객이 스스로 햄릿에 대해 판단하게 하는 열린 구조로 재창조되었습니다.
줄거리
어릿광대 무당 보비리는 어느 날 황량한 계곡을 지나가다 해골을 하나 발견한다. 계곡의 바람이 해골을 스쳐 지나가면서 슬픈 곡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옆에 살아생전 그가 지니고 다녔을 법한 빛바랜 수첩을 발견한 보비리는 그 죽은 해골이 지난날 비극적으로 죽어간 햄릿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햄릿은 그때까지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밤마다 계곡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보비리는 그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진혼굿판을 벌이기로 한다.
보비리와 함께 다니는 또 다른 세 명의 어릿광대 무당들이 모여 든다. 착하고 순진한 무룡태, 깐작깐작 삐딱한 앙짜, 엉큼한 은근짜, 이들은 햄릿이 남긴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의 삶을 되짚어준다. 햄릿이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무슨 고민들로 자기 삶을 괴롭혔는지, 또 어떤 후회를 남겼는지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들쳐 보여 준다. 이로서 햄릿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곧이어 어머니의 결혼, 그것도 아버지의 동생, 자기 숙부와 결혼하는 어머니를 지켜봐야했던 햄릿의 고민들을 어릿광대들은 햄릿을 대신해 내뱉어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숙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 숙부가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왕좌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햄릿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햄릿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답답해진 어릿광대들은 햄릿을 다그치고, 얼러주고, 때론 욕을 해댄다. 겁쟁이, 비겁한 놈, 멍청이라고. 햄릿은 다시 힘을 내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히 수행한다. 연극 공연을 통해 왕의 심중을 떠보고 확실한 물증을 잡아 단번에 처치해 버리려는 작전. 하지만 또다시 햄릿은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놓치고 결국 쫓겨 가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사랑했던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오필리어도 미쳐 죽는다.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햄릿은 결국 돌아와 복수를 하게 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이승의 언저리를 떠도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익살광대들은 햄릿의 최후를 자기 마음대로 지어내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어떤 것은 비장하게, 어떤 것은 잔인하게, 어떤 것은 애처롭게 끝이 난다. 이러나저러나 죽음은 허망한 것. 그것만큼이나 삶도 허망하다는 것을 햄릿도, 이 굿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마지막 진혼곡소리가 굿판을 울릴 때 햄릿의 영혼은 덤덤히 이승을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