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두드리 두드리>는 칸토르의 <빌로폴 빌로폴>을 우리 이야기로 옮겨온 것이다. 원작에서는 칸토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번안된 이번 공연도 그러한 형식을 취할 것이다. 배우들은 마치 신들린 영혼처럼 이끌려 무대에 앉혀지고 어린 날의 사건들을 재연한다. 물론 이 사건들은 어떤 일관된 사건과 이야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작용처럼 논리와 연관성이 없다. 허나 굳이 드러나는 이미지를 통해 파악하자면 전쟁의 처참한 기억의 편린, 대량학살과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을 통해 민중의 고통과 비극적 역사의 계속되는?악순환, 끊임없는 폐허, 주검들 그리고 지금까지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 할 수 있다.
즉, 모든 육체적, 정신적 경계를 뛰어 넘는 개인적 공간인 상상력, 또는 기억, 역사의 차원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연은 소품들의 도상학적 사용과 배우들의 이중이미지, 음악의 심원한 파장, 소도구들과 배우들의 기계적 움직임들로 인해 위압적이고도 감각적인 경험의 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와 함께 20세기 후반, 또는 미래주의적인 연극표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번안에 있어서, 폴란드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유사한 점이 있어 조금만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것으로 쉽게 인식될 수 있으므로 관객의 이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기독교 정신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와 달라 이점 역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어머니의 입장을 강화하여 번안하였다.

줄거리

‘무대’는 탁자와 의자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다.
멀쩡한 모양새는 오직 ‘나’뿐이다. 무대는 ‘나’의 기억 속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기억은 순차적인 시간대를 요구하지도 않고 명확한 공간을 그려내지도 못한다.
기억이 떠올리는 사건은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는 일종의 파편들일 뿐이다.
‘나’는 이런 기억들의 주체이며 원하는 대로 가공하는 신이다.
‘나’는 가족들을 기억하며 무대 위에 어릴 적 외갓댁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 기억의 불완전함 때문에 포기해 버린다. 그리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의 결혼식을 기억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게도 ‘나’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가족들을 기억하며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다. 외가쪽 사람들과 좋지 않은 관계의 아버지는 ‘나’가 보기엔 가정적이지 못하고 고집 센 무능한 군인일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한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핍박받는 존재일 뿐이었다.
‘나’의 기억은 이제 그 영역을 확장한다. 희생자인 어머니는 민족의 희생자를 대변하게 되고, 가족들은 이기적인 민중을 대변하게 된다. ‘나’는 6.25전쟁과 군사독재의 개발논리를 떠올린다. 전쟁 속 비인간성과 패륜으로 어머니는 강간당하기도 하며 군사독재 속에선 자본과 비민주의 그늘에 가려진 민초를 보여주게 된다.
‘나’는 단순히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고 의지를 기록하려 한다. ‘나’는 사진사를 이용하여 사진으로 현상을 기록하고 역사를 정리하며 그들을 사격하여 응징하려 한다.
그리고 모두가 무대 위에서 죽어간 뒤 ‘나’는 유유히 그곳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