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인생에서 무대지시문과 같은 심경을 마주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 온 시간 속에 내가 없는 사막과도 같은... 그런 마음으로 존재 증명에 대한 화두로 2014년 이 작품을 썼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은 40대에 접어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중년의 멋’은 이 변화에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정신분석가 융은 ‘상승정지 증후군’이란 용어로 중년 남성의 변화를 설명한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매진하다가 어느덧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된 중년 남성들이 ‘인생의 정오(noon of life)’에서 바로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중년 여성은 어떠한가 여전히 가정 안에서의 역할을 강요 받기도 하지만 사회적 위치가 별반 다르지 않는 사회적 변화에 비추어 본다면 ‘인생의 정오’를 맞이하는 지점은 같을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회적 성공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 일 테다. 인생이라는 것이 잘 살고 있다 싶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와 마주했을 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중년의 부부가 지금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우리 잘 살아 왔지?’ 

‘잘 사는 게 뭐야?’ 라고.... 

인간은 혹독한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쩌면 망각은 물리적인 뇌의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행위일지 모른다. 스스로 봉인해버린 진실을 열게 될 때 마주하게 되는 참담한 성찰의 순간. 지워졌거나 지우고 싶은 고통의 지난 시간. 우리는 진실로 과거의 사건과 지옥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진정한 치유와 보상은 가능할까. 잘 못한 게 없지만 죄인의 된 그들이... 우리가... 

줄거리

홍숙영과 사내는 여행을 떠난다. 홍숙영은 남편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떠난 여행. 사내의 기억을 찾기 위해 사내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차를 타고 떠난 두 사람의 여행은 차가 고장 나면서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멈춰 서게 된다. 낯선 곳에서 멈춰 서버린 그들의 자동차.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다. 두 사람은 사내의 친구를 기다리며 자신들이 살아 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홍숙영은 사내가 거짓 연기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들의 지난 시간을 더듬으며 서로가 누구이지 찾아 가려 하는데... 홍숙영은 딸에 대해 사내와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사내는 딸의 존재도 모르고 자신은 홍숙영이 말하는 남편이 아니라고 할 뿐이다. 
길에서 벗어나기 전까지의 그들이 되짚어서 찾아내는 건 마주하기엔 너무도 고통스러운 딸의 죽음이다. 
사내는 끔찍하게 살해 된 딸의 죽음을 대면할 수 없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게 된 이유가 밝혀지는데... 하나는 딸의 죽음이 그것이고, 또 하나는 딸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의 자괴감이고, 또 하나는 아직 딸의 죽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아내 홍숙영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살았을 리 없다. 내가 나인 순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 인간이 인간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선을 넘은 사내와 홍숙영은 어느 길을 선택할지... 현실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지.... 

캐릭터

사내 |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건설회사 간부로 근무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남성일수록 ‘사춘기’라는 남성의 갱년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경향을 보이듯 그도 그렇다. 잔글씨가 안 보이고 근육의 힘이 떨어지는 등 현격한 육체적 변화가 이젠 인생과 맞설 수 없을 거 같다는 불안 심리까지 가져온다. 그런 그가 딸의 죽음으로 일상이 정지해 버렸고 기억은 지워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지워진 게 아님이 밝혀지는데... 

홍숙영 | 남자의 아내. 중학교 국어교사인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다. 갱년기가 자신이 넘어야 하는 큰 산이라는 정도의 위기감이 있었을 뿐. 그런 그녀의 삶에 사고가 났다. 딸아이가 죽고 남편은 기억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딸 도희의 죽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