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상처, 그리고 치유에의 욕망

고래상어는 지구상에서 몸집이 가장 큰 물고기다.

때문에 종종 고래상어처럼 덩치 큰 물고기들이 해안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문득 한가지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구한 운명을 지닌 그들, 고래상어의 인생여정이다.

넓고 깊은 바다에서 천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고래나 상어, 우리가 소위 말하는 바다의 제왕들이 인어공주도 아닐진 데, 멀쩡한 바다를 놔두고

왜 육지를 찾아 기꺼이 죽음의 여정을 떠나는 것일까?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육지에 대한 갈망은 죽음조차도 뛰어 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연극<고래상어>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줄거리

고래상어는 육지를 갈망하고, 인간은 바다를 갈망한다.

뭍에서 목숨을 잃고 마는 고래상어들과 달리 뭍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래상어>의 인물들은 반대로 죽음의 땅인 바다를 갈망한다. 하지만 한 순간이나마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고래상어와 달리 염장이와 배달원으로 그려지는 삶에서, 그들이 사회의 변두리를 전전해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찾는 바다, 때문에 그들에게 바다란 죽음의 공간이 아닌 죽음 너머에 있는 이상향일 지도 모를 일이다.

<고래상어>의 무대는 시신이 이승을 떠나기 마지막으로 육신을 씻고자 잠시 머무는 영안실이다.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김씨,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외면당한 박씨,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청년. 이들은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채, 그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시신을 닦는다.
즉, 세 사람에게 염이란 단순히 시신을 닦는 것이 아닌 바다로 나가기 위한 준비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바다에 다다랐을 때, 이들은 어느 누구 하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비루한 삶을 살아가거나 혹은 세상을 영영 등지게 된다. 특히 마지막 결말에서 보여주는 반전은 관객의 가슴에 깊게 각인될 정도로 충격적일 것이다.

<고래상어>은 진지한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지루함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낙천적 성격의 박 씨를 통해 극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관객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비극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희극적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관객들의 긴장감을 배가시켜주는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래상어>는 상처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막이 내려진 순간에 그들이 치유 받았는지, 여전히 치유 중인지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며, 따라서 그 몫은 온전히 관객에게 남겨진 셈이다. 요컨대 <고래상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