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이렇게나 사과할 일이 많은데 사과하는 사람이 없어서 대신 사과하기로 했다. 그렇게 습관처럼 사과하던 어느 날, 지금까지 해왔던 사과는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일과 다름없는 사과였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했던 사과는 가짜일 수밖에 없었다. 분노, 슬픔, 사과 같은 것들은 목적지가 분명치 않을 때 더 큰 상처를 내고, 상처에는 눈물이 고여 좀처럼 아물지 못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분노와 슬픔 그리고 사과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로 돌아오는 사과, 죄스러울 정도로 황송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운 '미안합니다'가 필요했다. 슬픔과 분노의 처음을 찾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나’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상처에 분홍빛 새살이 돋아나려면, 언젠가 사과할 일이 생겼을 때 제대로 사과하려면. 그렇게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언젠가 정말 사과해야 할 사람이 제대로 사과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줄거리

애플모텔에서 달방을 사는 홍옥. 미안해하는 것도 미안할 만큼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다. 미안해하는 게 지겹고 힘들어서 그만 미안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서 애플모텔에 달방을 얻었다.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끝낸 홍옥. 드디어 그만 미안해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에 옮기려는데, 그 순간 애플모텔 사장이 홍옥을 찾아온다.

캐릭터

이홍옥 | 30대 중반.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홍옥을 흡사 현금인출기처럼 여겼다. 어머니의 현금인출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모순되게도 그것이 계속 현금인출기 노릇을 하게 만들었지만 언젠가 자신의 삶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고, 결국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디자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홍옥은 늘 미안했다. 미안한 것마저 미안할 만큼. 홍옥의 ‘미안하다’는 말이 한없이 건조한 것은 사과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방만자 | 40대 후반. 모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여인숙에 더 가까운 ‘애플모텔’ 주인이다.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물려 받은 모텔이었다. 근근이 운영하던 중 숙박업소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겨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대실이냐 숙박이냐, 회전율을 높일 것이냐 한 번에 더 받을 것이냐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여자들에 둘러쌓여 자란 탓에 마음의 온도가 쉽게 변하고 온도차도 큰 편.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 때문에 대화할 때 흘려 듣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게 미안해할 일인지 잘 모르는 때가 많다. 그래도 선함을 갖고 있다.

조미인 | 30대 초반.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라고 아버지가 ‘미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안타깝게도 미인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겉모습으로 자라버려서 미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조금 밉다. ‘조금’만 미운 건 그래도 ‘알맹이’ 만큼은 미인에 걸맞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경찰이라 경찰이 됐고,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가 대장으로 있는 지구대로 발령 받았다. 금수저라면 금수저인 배경과 많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오지랖이 더해져 인맥이 넓다. 미인은 어쩌면 그냥 호기심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미인의 오지랖이 밉지만은 않은 건 호지랖의 팔할을 차지하는 호기심이 따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 군 | 20대 후반. 애플모텔 직원으로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잘생겼다. 자신이 잘 생긴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능글맞고 느끼한 구석이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입대하는 마음으로 애플모텔에 취직해서 모텔 옥탑방에 산다.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1박 2일의 휴가를 고급 호텔에서 보낸다. 언젠가 터질 ‘한방’을 위해 매주 로또에 투자하듯 제 나름의 투자인 셈. 정말 ‘한방’이 터졌을 때 고급문화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고급문화를 배워둬야 하고, 그걸 배울 수 있는 학원이 김군에게는 고급 호텔인 것.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배우려는 욕심이 많은데 그 욕심의 한계는 보통의 상식에서 끝나고 만다. 그래서 미인과 만나면 서로 더 무식하니 유식하니 하며 투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