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획의도
일제강점기 때는 수탈의 현장으로 광복을 거쳐 6,25한국전쟁 때는 수 많은 귀환동포와 피난민들을 안식처로 6, 70년대 도시산업화 시대에는 꿈과 희망을 찾아 부산으로 몰 려든 젊은이들을 끌어 안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안고 는 소 막마을을 통해 어렵고 힘든 시절 함께 나누며 살았던 삶의 모습을 통해 각박한 세상 살이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 부산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 유하고자 함
189번지배경-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지에 ‘소막마을’이 있다.
소막마을은 소 막사에 사람들이 들어가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출발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조선 소를 대량으로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고 부산항에서 배에 싣기 전에 소가 전염병에 걸렸는지를 검사하기 위해 이 곳에서 검 역을 실시했다. 우암동 검역소는 1909년에 설립되었다. 1909년 처음엔 5개 동의 소막사를 지었다가 나중에 19개 동으로 확장되었다. 소 막사의 크기는 폭 10m, 길이 40m 내외. 각 막사에 50~60마리 내외의 소가 수용됐다. 꽉 채우면 100마리 정도 수용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후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소 막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소막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은 6·25 당시 흥남철수 이후다.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자, 부산 임시정부는 임시방편으로 시내 곳곳에 비어 있 는 건물들을 활용해 피난민을 수용했는데 일제가 비워 놓고 떠난 우암동 소 막사는 그중 가장 많은 피난민을 수용했다. 당시 이 일대는 ‘적기 피난민 수용소’로 불렸 다. ‘적기’(赤崎)는 우암리의 일본식 이름이다. 또한, 산업화 시기 인근 지역에 조성 된 공장, 항만 등으로 인해 이곳으로 유입된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오늘날 까 지도 그 기능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작품의 특징
부산광역시와 부산문화재단이 후원하고 극단 도깨비가 주최하는 연극 우암동 189번지 공연이 09월 20일부터 22일까지 해운대 문화회관 해운홀에서 열린다.
연극 우암동 189번지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산 우암동 소막막을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창작연극이다. 2019년 지역문화예술 특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연극 주최 및 제작한 극단 도깨비는 1988년 7월에 창단하여 지금까지 부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있는 극단이다. 특히 이번 연극 우암동 189번지는 극단 도깨비 공연 중 많은 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울동네합창단’과 동일한 합창을 소재로 한다는 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이번 작품은 연극이라고 해서 대사와 행동의 위주가 아닌 춤과 음악이 함께 할 수 있어 세미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노래들로 구성되어 그 시절 세대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여행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줄거리

근대문화유산 마을로 지정된 소막마을. 마을활동가는 주민들에게 합창단을 만들어 마을홍보를 위해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8.15 해방 이후 이곳에 처음 들어온 귀환동포 출신의 나고야는 물론이고 1.4후퇴 때 피난 온 청진댁, 피난시절 태어난 남포댁, 60년대 산업화시절 소막마을 근처에 있던 합판공장으로 취직하러 왔다가 지금까지 눌러 앉은 합판과 약장수 이들을 대상으로 청춘을 노래하던 니나노 등 자신들이 겪었던 경험 등을 이야기하며 모처럼 마을은 활기에 넘친다. 그렇지만 이 소식을 들은 자식들은 합창보다는 시세가 오를 집값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넘친다. 그렇지만 마을주민들은 노년의 열정으로 매일 연습에 땀을 흘린다. 그때 청진댁 아들이 등장. 어머니에게 집을 팔아 사업자금으로 도와달라며 매달린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노력해 온 자신의 삶이 그저 몇 푼으로 밖에 취급받는 현실에 단호히 거절을 한다. 곁에서 지켜보던 마을사람들이 말려보지만 오히려 마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꺼내며 주민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은 합창을 그만 두게 되는데...

캐릭터

청진댁 | 6.25 전쟁 때 부모님을 따라 함경도에서 우암동 소막사로 피난을 내려왔다. 오는 길 부모님을 여의고 오갈 곳 없이 지내는 모습에 성당 신부님께서 거두어주셔서 점차 적응을 하게 된다. 굳은 일도 마다않고 생활을 꾸려나가지만 남편을 일찍이 사별하고, 아들은 출가 후 소식이 뜸하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일가친지들과 무료한 여생을 보낸다.

나고야 | 8.15 해방 이후 일본에 어머니만 두고 아버지 손잡고 고국에 돌아와 처음 온 곳이 우암동 소막사였다. 어머니 생각에 매일같이 눈물을 훔쳤던 시절. 바로옆 함께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우암동 식구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약장수 |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기 위해 이 곳! 극장 앞 샌드위치맨도 하고 약도 팔면서 직접 소리치며 다닌 젊은시절 내 피와 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곳! 소막마을은 나 약장수를 품어주었던 곳이다!!!

니나노 | 삶의 고단함을 술의 쓴맛과 흥겨운 젓가락 장단으로 버텨온다. 돈을 벌기위해 우암동으로 와서는 사람들의 정에 취해 이 마을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커피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며, 희망을 안겨주고 나 또한 치유 받는다. 나에게 노래는 내 삶 그 자체고 우암동 소막마을은 내 인생의 특별한 의미이다.

합판 | 지독히 가난하고 배고팠던 그 시절, 이 악물며 모질게 살았다. 청춘을 다 받쳐 자식들을 키워내고 지금은 악착같이 폐지 주워 우리 손자들 용돈 한 푼 더 주려고 가족을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마을활동가 | 우암동 소막마을. 그 곳은 어떤 곳 일까? 어떤 감정들이 존재할까? 나와는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일까? 즐거움일까? 다양한 기억들이 흐르는 곳. 무료한 어르신들에게 활력을 드리고, 지금 내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지금 그 곳으로 갑니다.

남포댁 | 우암동 189번지. 힘든 시절, 그 속에서도 소박하고 행복한 추억들.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리 마을. 작지만 나에겐 어디보다 큰 마을. 소막마을이 우리에게 준 행복을 이제 우리가 노래로 추억하리.

청진댁 아들 | 누군가 내 고향이 어딘지 물어봐도 난 한번도 그 곳을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알리고 싶지가 않다. 내가 살던 그 지옥 같은 곳을 말이다. 누구든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잘못 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