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괴이쩍어 괴란한 시대, 참혹한 순간도 찬란하게 남긴다. 아큐……, 막연히 읊어보는 이름. 활자 속에 박혀있는 그를 끄집어낼 수도 없거니와, 단순히 형상을 짚어보는 것마저도 난해한 작업이 되곤 했습니다. 원작 소설이 워낙 강력하고 상징적이기에 견주어볼 패기는커녕 더럭 겁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담력이나 기세로 치자면 아큐라는 사내에게 속절없이 밀리고 말 것입니다. 알아갈수록 그는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졸렬하고 천박하기도 했습니다. 목소리를 떠올리면 귓가가 따갑고, 그림자를 그려보면 선은 구불구불하고 형편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뜸 이름부터 다시 불러봅니다, 아Q!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 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며 동시에 'QUESTION'에서 따온 '알 수 없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토록 본적과 거처뿐만 아니라 정체성마저도 분명치 않은 모호한 인물,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듯한 중국 신해혁명 당시의 작품 배경……. 이 두 가지를 맞닥뜨렸을 때 온통 곤혹스러웠습니다. 루쉰은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질까, 어떻게 연극으로써 고찰하고 교감할 수 있을까…. 결정적으로 이 미천한 사내의 일대기가 재미있기나 할까! 매번 걸림돌을 부딪쳤고, 같은 의문을 품은 채로 이 자리에 섭니다. 아큐가 건네는 사회구조 저변의 모순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개인적 신념과 시대적 운명이 수레바퀴처럼 맞물렸을 때 각자 삶의 태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을 부유하는 수많은 담론들을 응집시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결과는 우리에게 감흥과 울림으로 다가가기라 생각합니다. 그 어느 대수롭지 않은 날, 푹 내려앉은 공기와 조근하면서 날선 소리들, 매캐한 냄새 뒤로 남루한 옷깃을 여미며 지나가는 이가 또 다른 아큐일 수 있습니다. 이따금 저마다의 모습을 한 아큐들을 목격할 수 있다면 그 자들이 염원하는 공기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혹자는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는 것을 기억하는 공연이 되고자 합니다.

줄거리

불온한 삶에 드리워진 얄궂은 파국
그의 행적을 점철지은 것은 무엇인가

중국 신해혁명을 전후를 배경으로 웨이좡이라는 농촌에서 날품팔이 일을 하는 하층민 아큐!
머리에 몇 군데 부스럼 자국이 있어 놀림을 받는 그는 건달들과 싸워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도 「사람이 벌레를 때린다」 라고 자신을 타자화하며 자위하는 인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매번 업신여김에 당하고도 굴복하지 않고 위세를 부린다.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아큐 또한 지지 않고 모두를 멸시하는데 심지어는 스스로조차도 경멸한다고 자부한다. 상대가 자기보다 약하게 보이면 두들겨 패줄 각오는 대단했지만, 도리어 되갚음만 당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분통이 난 아큐는 비구니 놀리다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여자를 알아버린 아큐는 자오나리 댁 하녀에게 동침을 요구하다 망신을 당하고 날품팔이 일까지 끊기게 되자 웨이좡 성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후 성에서 돌아온 아큐는 돈을 벌었다고 으스대며 한동안 선생 소리까지 들으며 거드름을 피운다. 하지만 얼마 안가 아큐의 물건들은 도둑들과 어울려 얻은 것임이 드러나고, 신해혁명으로 혼란한 시기에 마을에까지 혁명당이 입성하자 아큐는 시류에 편승하고자 안달을 한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정신적 승리법'으로 탈바꿈시켜 버리던 아큐는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혁명당의 일원을 자처하며 의미도 모르는 모반을 소리 높여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