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1930년대 베를린 캬바레의 두 가지 얼굴, '감성'과 '이성'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베를린의 '카바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가벼운 유희의 장소'와 다르다. 퇴폐와 향락으로 '전세계 모든 도시 중 가장 들떠있는 도시'였던 베를린은 편협한 사회에 대한 독설과 비아냥거림이 가득했으며 모든 형태의 성적 행위들이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시였다. 캬바레의 쇼맨들은 얼마나 부도덕적인가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었으며 매춘부들은 손님들과 수다를 떨었고 누드댄서들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거나 공개적으로 마약을 즐기기도 하였다. 손님들과 배우들이 섹스를 위해 객실로 향하는 것도 물론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뮤지컬 <캬바레>는 가장 원초적인 장소인 캬바레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육체적 탐욕이 넘쳐나는 도시 베를린의 또 다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치시대 동독의 암울했던 시대분위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사회성 깊은 메시지와 주제의식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의 억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개인과 사회', '육체와 정신', '감성과 이성' 같은 상반되는 요소들을 병행시키며 그리고 있다. "지극히 감각적이지만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공존하는 작품" 2002년도 신시뮤지컬컴퍼니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한 최정원, 주원성 주연의 <캬바레>의 연출과 번역을 맡은 바 있는 김철리씨는 공연 당시 뮤지컬 <캬바레>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뮤지컬 <캬바레>는 지극히 감각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관능성과 지성, 뜨거움과 차가움, 육체와 정신 등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을 통해서 사회전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한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과 구별된다."

불행한 시대가 낳은 나약한 인간군상들
캬바레에는 이 시대가 낳은 허약한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여 시대의 아픔을 철저히 그려내고 있다. 엠씨, 캬바레의 사회자이면서 등장인물들의 모든 갈등상황과 사회적 변화를 꿰뚫어 보는 전능한 존재이다. 하지만 엠씨 또한 <캬바레>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사회속 군상(群像)중 하나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비아냥대고 조소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모든 상황들을 인식하게 하고 비판적인 눈길로 바라보게 하지만 그는 정작 방관자일뿐, 아무 것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허약한 지식인에 불과하다. 클리프, 미국인 극작가. 세계를 떠돌며 글을 쓰는 방랑객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냉철한 지성을 소유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도 베를린의 사회적 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한 지식인이자 이방인일 뿐이다. 수동적으로 사회문제에 대응하며 그 상황을 단지 피하기만 할 뿐 자신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는 나약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수 샐리와 하숙집 주인 슈나이더. 그들 또한 자신들의 삶으로 침입하는 사회문제에 대면하기보다는 익숙해진 삶에 안주하기 위해 사랑마저 버릴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들이다. 슐츠, 과일가게 주인.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누려왔던 그는 유태인이란 이유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억압에 모든 삶을 잃어버리고마는 시대의 희생양이다.

줄거리

베를린에서 작품을 쓸 계획인 미국의 소설가 클리프 브라드쇼는 베를린 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는 기차에서 독일 사내를 만나는데,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루드윅.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독일인 특유의 탐색이 끝난 후, 에른스트는 클리프에게 놀렌돌프라츠에서 하숙업을 하는 친구를 소개하며, 도시에서 가장 화끈한 킷 캣 클럽에 한 번 놀러 오라고 말한다. 클리프는 에른스트가 소개한 슈나이더 부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에서 묵게 된다. 이 하숙집에는 코스트와 헬 슐츠라는 두 명의 하숙인이 살고 있다. 코스트는 킷 캣 클럽에서 일하면서 해병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이고, 헬 슐츠는 유태인 과일 상점을 운영하는 인물이며 슈나이더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새해가 되기 전날 밤, 클리프는 소설을 쓰는 대신 킷 캣 클럽으로 향한다. 여기서 그는 화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가수 샐리 보울즈를 만나고 그녀는 노래가 끝나자 클리프의 테이블로 전화를 걸어 무대 뒤에서 한 잔 하자고 유혹한다. 새해가 되는 첫날, 샐리는 클럽의 주인 맥스에게서 갑작스런 해고 통지를 받고 글쓰기와 영어과외를 병행하며 근근히 살고 있는 클리프의 집으로 찾아간다. 성가시게 하지 않기로 약속하며 샐리는 클리프의 룸메이트가 된다. 그러는 중에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샐리, 여느 때처럼 샐리는 아이를 지울 것을 결심하지만, 클리프는 인생에서 아이가 무척이나 중요하므로 낙태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샐리도 이번 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에른스트가 클리프에게 여비를 벌 수 있는 일거리가 될 거라며 파리행을 제안하자 클리프는 주저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인다. 한편, 코스트가 해병들과 놀아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슈나이더에게 코스트는 슐츠와 슈나이더와의 관계를 나무라자 슐츠는 슈나이더와의 결혼계획을 발표한다.

클리프는 슐츠와 슈나이더의 약혼식에 맞춰 돌아오고 모두들 흥겨운 춤판을 벌인다. 코스트는 슐츠가 유태인임을 밝히고, 에른스트는 슐츠와 결혼하려는 슈나이더에게 앞으로 각별히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수심에 잠겼던 슈나이더는 결국 슐츠에게 결혼을 재고해 보자는 말을 꺼내고, 슐츠는 다시 슈나이더를 설득하려 하지만 슐츠의 상점 창으로 벽돌이 날아든걸 본 그녀는 더욱 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경제적인 허덕임으로 다시 클럽에 나가려 하는 샐리와 이를 반대하는 클리프의 갈등은 심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슈나이더가 클리프의 방으로 들어와 슐츠와의 결혼이 모든 것을 앗아갈 것 같아 두려워 결혼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클리프는 샐리와 베를린을 속히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샐리는 자신의 생활 기반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이 싫다며 베를린에 남겠다고 말한다. 클리프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며 셀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녀는 나가버리고 만다. 에른스트가 술 한잔하자고 권하지만, 클리프는 퉁명스럽게 거절하자 에른스트는 킷 캣 클럽의 폭력 조직을 동원하여 클리프를 중상을 입힌다. 다음 날 부상당한 클리프는 떠날 생각으로 짐을 싸고 슐츠도 슈나이더를 위해 떠나기로 한다. 허술한 옷차림으로 들어서는 창백한 샐리, 그녀는 낙태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한다. 클리프는 그녀의 뺨을 때리고, 샐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늘 끝은 똑같지요. 설령 내가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는 이 순간에도 말이에요." 클리프는 기차역으로 떠날 준비를 하지만, 샐리는 함께 가기를 거절한다. 그녀는 그 곳보다 파리를 더 증오한다면서. 클리프는 차표를 남겨두고 혼자 기차역으로 향한다. 기차를 타고 가며 한숨짓는 클리프, 베를린은 아름다운 도시지만 남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 순간, 그의 뇌리로 소설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거기 캬바레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화류계의 여왕과 독일이라는 나라에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도시도, 그 세상의 끝에서 나는 샐리 보울즈와 춤을 추었고, 함께 잠든다. 클리프는 캬바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세관원이 관객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그가 바로 엠씨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슐츠, 슈나이더, 코스트 그리고 에른스트. 엠씨가 관객을 향해 묻는다. "여러분의 고통은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텅 빈 오케스트라가 나타난다. 그들은 힘겹게 무대 뒤의 공간으로 걸어간다. 엠씨 만이 무대에 남아있다. 그는 관객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레인 코트를 벗는다. 이제 관객들은 엠씨가 입고 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군복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유태인과 동성애자를 뜻하는 노란색 별 모양과 핑크색의 삼각형 문양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엠씨는 관객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