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삶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부정하는 일이다. 부정을 통해서 극복을 떠올리고 극복해냄으로써 순간의 긍정을 도출해낸다. 다만 인간에게 영원한 균형은 부재하는 까닭에 이내 긍정은 부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과정의 무한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삶에의 환멸을 발견하고 비로소 근원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개의 세계 - 그 사이에서 영원히 표류하는 가련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스트린드베리의 말처럼 인생은 벌이며 지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다만 하나의 세계를 모방해 다루는 것에 그치고 만다면 그 연극 또한 벌이며 지옥이다. 내가 - 당신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옥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 공연은 극단의극단이 추구하는 미학과 원리를 처음으로 적용했던 공연이었다. 그래서 맺음도 이 공연이었으면 했다. 무수히 많은 - 이제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생성의 기록들을 지워나감으로써 다시 - 처음 그곳으로 회귀하기를 바랐다. 인생의 마지막처럼.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좋은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공연은 두 개의 세계라는 부제 안에 머무른다. 공연 바깥도 그렇다. 과거 초연의 선배들이 멘토를 맡아 지도했고, 미래를 이끌어갈 후배들이 열심히 연기했다. 의미있는 마지막을 장식해 준 두 세계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줄거리

한 가족이 있다. 술에 절어 사는 전신마비 아버지,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어머니, 슬픔과 충격으로 넋이 나간 첫째 아들, 아버지와 형을 괴롭히는 절름발이 둘째 아들. 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어머니의 외도로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매장하고 그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찾아와 자신이 이 가족의 일부임을 자처한다. 청년은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족 중 누구도 청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의심스럽게 여긴 여자친구는 집에 머무르면서 그들 사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지나간 진실을 둘러싼 가족들의 분열과 혼란이 절정을 이룬 순간에 마침내 아버지가 매장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