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시대의 ‘동의’를 구하다.
팬데믹(pandemic)의 시대. 오늘 우리는 어떤 ‘동의’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New Deal)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핵발전소, 페미니즘, 친환경, 대변과 비대면 등. 시대의 모든 숙제는 많은 함의(含意)의 ‘동의’를 구합니다.
우리는 어떤 ‘동의’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까요?
브레히트, 좀비를 만나다.
브레히트의 학습극으로 1930년대 발표된 <예 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
오늘 동시대의 관객과 소통하기 위하여 좀비를 만나다.
브레히트의 ‘동의’
‘동의’개념과 관련해서 <예 라고 하는 사람과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에서는 ‘긍정’과 ‘부정’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동의’는 이 개념에 대한 통상적 관념과 달리 ‘긍정’과 ‘부정’을 다 포괄합니다. 진정한 ‘동의’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오직 당사자가 ‘필연성’에 입각해서 ‘긍정(부정)’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동의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요구되는 바를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식되어야 할 필연성들은 생각하는 주체의 발견을 요구한다. 발견(Erfindung)이 동의다”라는 브레히트의 주장은 ‘동의’가 세계관과 세계인식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동의가 어려운 것은 필연성의 발견이 때로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팬데믹(pandemic)의 시대. 오늘 우리는 어떤 ‘동의’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New Deal)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핵발전소, 페미니즘, 친환경, 대변과 비대면 등. 시대의 모든 숙제는 많은 함의(含意)의 ‘동의’를 구합니다.
우리는 어떤 ‘동의’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까요?
브레히트, 좀비를 만나다.
브레히트의 학습극으로 1930년대 발표된 <예 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
오늘 동시대의 관객과 소통하기 위하여 좀비를 만나다.
브레히트의 ‘동의’
‘동의’개념과 관련해서 <예 라고 하는 사람과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에서는 ‘긍정’과 ‘부정’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동의’는 이 개념에 대한 통상적 관념과 달리 ‘긍정’과 ‘부정’을 다 포괄합니다. 진정한 ‘동의’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오직 당사자가 ‘필연성’에 입각해서 ‘긍정(부정)’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동의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요구되는 바를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식되어야 할 필연성들은 생각하는 주체의 발견을 요구한다. 발견(Erfindung)이 동의다”라는 브레히트의 주장은 ‘동의’가 세계관과 세계인식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동의가 어려운 것은 필연성의 발견이 때로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갑작스럽게 좀비바이러스가 발병된 도시. 학생 대현과 성수, 그리고 여교사는 무사히 옥상으로 피신을 한다.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군인이 도착하지만 혼자이다. 성수의 여동생 세연도 좀비를 피해 옥상에 도착하지만 그녀에게는 피가 묻어있다. 세연은 감염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