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러시아의 거장 안똔 체홉의 극단적인 사실주의 고전을 보여준다
<전원 생활의 정경>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1897년에 발간된 《희곡집》에 발표되었고, 1899년 가을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의 희곡 [숲귀신](1888)을 개작한 것인데,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던 그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챠이카(갈매기)] 성공 이후 힘을 얻어 그 극장과의 두 번째 공연을 위해 여러 가지로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전신 [숲귀신]은 주인공이 자살을 한다던가, 초현실적인 마무리가 있는 것을 개작된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살아가려하는 희망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꾸는 등 그의 삶의 관조적인 자세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에 묘사된 모든 인간들간의 갈등 저변에 깔린 것은, 그 시대의 세속과 도덕에 대한 항의이며, 작자는 이런 생활과 타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독자에게 호소하려 하였다.
배우들의 멘탈앙상블로 사랑의 본질과 삶의 이유를 보여준다.
어른들의 사랑은 깊고, 은은하며 끈끈하다. 젊은 열정과는 또 다르게 심리적 무게로 다가온다. 이러한 연기를 소화하기란 연륜과 경험은 물론이고 연기적 내공이 쌓이지 않고는 소화하기 매우 힘들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가히 심도깊은 심리적 흐름을 이어가는 멘탈앙상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의 깊이를 표현하는 실력이 남다르다.
<전원 생활의 정경>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1897년에 발간된 《희곡집》에 발표되었고, 1899년 가을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의 희곡 [숲귀신](1888)을 개작한 것인데,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던 그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챠이카(갈매기)] 성공 이후 힘을 얻어 그 극장과의 두 번째 공연을 위해 여러 가지로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전신 [숲귀신]은 주인공이 자살을 한다던가, 초현실적인 마무리가 있는 것을 개작된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살아가려하는 희망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꾸는 등 그의 삶의 관조적인 자세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에 묘사된 모든 인간들간의 갈등 저변에 깔린 것은, 그 시대의 세속과 도덕에 대한 항의이며, 작자는 이런 생활과 타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독자에게 호소하려 하였다.
배우들의 멘탈앙상블로 사랑의 본질과 삶의 이유를 보여준다.
어른들의 사랑은 깊고, 은은하며 끈끈하다. 젊은 열정과는 또 다르게 심리적 무게로 다가온다. 이러한 연기를 소화하기란 연륜과 경험은 물론이고 연기적 내공이 쌓이지 않고는 소화하기 매우 힘들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가히 심도깊은 심리적 흐름을 이어가는 멘탈앙상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의 깊이를 표현하는 실력이 남다르다.
줄거리
정년 퇴임한 유명 교수는 그의 젊은 부인 옐레나와 함께 그의 시골 영지에 살기 위해서 돌아온다.
그 영지가 원래는 사망한 그의 첫 아내의 소유인데,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바냐)가 아직 거기 살며 그 농지를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바냐는 교수에게 농지 수익의 대부분을 보냈고 스스로는 아주 적은 돈을 받았을 뿐이다.
역시 그 영지에서 농지를 관리하며 살고있는 교수의 딸인 쏘냐는 그의 새 아내와 비슷한 나이이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고 뽐내며 민감하다. 통풍치료를 위해 의사 아스뜨롭을 불렀지만 시골의사라고 무시하며 한 번도 진료를 받지 않는다.
아스뜨롭은 성실한 의사였지만 어느 날 환자를 살리지 못한 트라우마로 인해 열정은 사라지고, 술로 시간을 탕진해 버린다.
옐레나는 남자들에게 Sexual tension을 주는 존재이다. 시골생활만 하던 아스뜨롭과 바냐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옐레나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옐레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는동안 쏘냐는 의사선생을 짝사랑하는 아픔을 겪는다.
옐레나는 쏘냐의 그런 마음을 알고 의사선생을 설득하지만 자신이 설득당하고 만다. 이 모습을 본 바냐는 충격을 받는다.
옐레나는 자신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교수가 사람들을 모아 이 영지를 팔자고 제안할때 처남인 바냐는 이 영지가 어떤 영지인데 파냐며 홧김에 그를 향해 총을 허공에 쏘아버린다.
그후, 바냐는 자살을 하려고 의사의 약을 훔치지만 쏘냐의 설득으로 포기하고 만다.
결국 교수 내외는 영지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원래대로 계속된다.
그 영지가 원래는 사망한 그의 첫 아내의 소유인데,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바냐)가 아직 거기 살며 그 농지를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바냐는 교수에게 농지 수익의 대부분을 보냈고 스스로는 아주 적은 돈을 받았을 뿐이다.
역시 그 영지에서 농지를 관리하며 살고있는 교수의 딸인 쏘냐는 그의 새 아내와 비슷한 나이이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고 뽐내며 민감하다. 통풍치료를 위해 의사 아스뜨롭을 불렀지만 시골의사라고 무시하며 한 번도 진료를 받지 않는다.
아스뜨롭은 성실한 의사였지만 어느 날 환자를 살리지 못한 트라우마로 인해 열정은 사라지고, 술로 시간을 탕진해 버린다.
옐레나는 남자들에게 Sexual tension을 주는 존재이다. 시골생활만 하던 아스뜨롭과 바냐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옐레나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옐레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는동안 쏘냐는 의사선생을 짝사랑하는 아픔을 겪는다.
옐레나는 쏘냐의 그런 마음을 알고 의사선생을 설득하지만 자신이 설득당하고 만다. 이 모습을 본 바냐는 충격을 받는다.
옐레나는 자신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교수가 사람들을 모아 이 영지를 팔자고 제안할때 처남인 바냐는 이 영지가 어떤 영지인데 파냐며 홧김에 그를 향해 총을 허공에 쏘아버린다.
그후, 바냐는 자살을 하려고 의사의 약을 훔치지만 쏘냐의 설득으로 포기하고 만다.
결국 교수 내외는 영지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원래대로 계속된다.
캐릭터
세례브랴꼬프 | 퇴임한 교수, 60세 초반 지식과 명예, 자존심으로 무장한 사람. 그러나 이것 외에 는 아무 것도 모른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젊은 아 내에 대한 불신, 퇴임 후 불안함 등이 그의 심리를 압박한다.
옐레나 안드레예브나 | 그의 새아내, 27세 고수의 지적인 모습에 반해 결혼하긴 하였으나 역시 나이 차를 극복하기 힘들어 한다. 아스뜨롭으로부터의 도전에 허물어져 버리나 이내 자리를 되찾는다.
쏘냐 | 전처로부터의 딸, 20대 중반가량 줄곧 농지에서 농사만 지어 온 시골처녀. 가꾸면 예뻤을 테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저 억센 농촌 처녀일 뿐이다. 아스뜨롭을 흠모한다.
바이닛츠끼 부인 | 미망인, 전처의 어머니, 70세 가량 자신의 사위가 유명교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평생 그의 자료수집과 기사를 스크랩하며 살아온다.
바냐 | 그녀의 아들, 40대 중후반 순진하리 만치 열심히 일만 해왔던 시골아저씨. 자신이 그토록 힘들여 받들었던 교수의 실체에 실망하고, 그의 아내에 반하게 되면서, 생활이 흐트러지고 만다.
아스뜨롭 | 의사 (바냐의 친구), 30대 후반
의사이지만 환경에 관심이 많고 숲을 사랑한다. 허나 알 콜중독이다. 역시 옐레나를 보자 반해버리고 만다.
뗄레긴 | 몰락한 지주 (바냐의 친구), 40대 중후반 아스트롭과 바냐의 친구. 경제적 불안함과 이혼한 아내의 위자료 등에 시달리지만 늘 낙천적이다.
옐레나 안드레예브나 | 그의 새아내, 27세 고수의 지적인 모습에 반해 결혼하긴 하였으나 역시 나이 차를 극복하기 힘들어 한다. 아스뜨롭으로부터의 도전에 허물어져 버리나 이내 자리를 되찾는다.
쏘냐 | 전처로부터의 딸, 20대 중반가량 줄곧 농지에서 농사만 지어 온 시골처녀. 가꾸면 예뻤을 테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저 억센 농촌 처녀일 뿐이다. 아스뜨롭을 흠모한다.
바이닛츠끼 부인 | 미망인, 전처의 어머니, 70세 가량 자신의 사위가 유명교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평생 그의 자료수집과 기사를 스크랩하며 살아온다.
바냐 | 그녀의 아들, 40대 중후반 순진하리 만치 열심히 일만 해왔던 시골아저씨. 자신이 그토록 힘들여 받들었던 교수의 실체에 실망하고, 그의 아내에 반하게 되면서, 생활이 흐트러지고 만다.
아스뜨롭 | 의사 (바냐의 친구), 30대 후반
의사이지만 환경에 관심이 많고 숲을 사랑한다. 허나 알 콜중독이다. 역시 옐레나를 보자 반해버리고 만다.
뗄레긴 | 몰락한 지주 (바냐의 친구), 40대 중후반 아스트롭과 바냐의 친구. 경제적 불안함과 이혼한 아내의 위자료 등에 시달리지만 늘 낙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