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010 자유종 - 전시의 즐거움

연출의 글
연출가 박재완이 이끄는 극단 <루트21>과
극작가 이인수의 뜨거운 만남 박재완


밝혀두기: <新자유종 - 전시의 즐거움>은 이해조의 자유종 읽기에서 발전된 작품임.

1. 작품의 의식세계: 1910년대가 근대화의 필요성을 직감했다면, 그 시대와 엇비슷하게 지금의 우리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그 중 하나의 인식은, 우리의 문화, 예술, 과학기술, 인력을 우리부터 인정하고 과시하고 자랑하고 ‘팔아먹지’ 않으면 미래가 처참해질 거란 예감. 나는 현재 횡행하는 이 국제화의식의 부작용사태를 <新자유종>의 주요 정신세계로 다루고자한다. 이 맥락 속에서 자라난 또 하나의 ‘독버섯’ 같은 정신세계는 남녀, 시대, 국가를 불문하고 끼어드는 인간의 사리사욕이다. <新자유종>은 버릴 수도 집어먹을 수도 없는 우리의 사회적 욕심을 네 여자와 한 남자를 국제화의 고리를 뜯어먹는 어떤 공간 (<新자유종>에서는 국제적 명성을 얻은 한 미술가의 박물관에 넣고 먹이사슬과 행동양태를 추적한다.

2. 공간과 연기양식: 작가 이인수가 찾아들어간 공간, 연기, 장면, 구성의 사실성은 모두 포기한다. 그 보다 나는 공간의 겉치레가 드러내는 우리 정신의 부패성을 과장하고 확대해 궁극적으로 그 웃지 못 할 희극성이 강조되게끔 하겠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 공간과 걸맞게 사실성을 버리고 신체물리성만을 과대포장 해, 인간이 부린 사회적 욕심의 치졸만을 희화적으로 고발하겠다. 몸의 물성과 가면성을 살릴 신체연기의 덕목들을 가능한 한 많이 쏟아 넣겠다. 또 <자유종>의 거미줄 식 토론방식에서 ‘감’을 잡은 바대로, 장면 간, 내용 간 건너뛰기를 시도한다, 시도 자체가 차라리 우스꽝스런 현대성을 폭로하길 기대하면서.

작가의 글
세월이 변해서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독립국가로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나름 세계에서 어느 정도 명함을 내 놓을 수 있을 만큼의 나라로 성장했다. 또한 여성의 교육에 대한 인식은 옛날과 비교하여 큰 변화를 겪었고, 남자와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회에서도 중요한 이곳저곳에서 여성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역사적 맥락이 다른 이 네 여성의 "학리적인" 토론을 오늘날 나의 삶 속에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선진 강대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많은 여자들이 교육수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의유식으로 남자만 의뢰하여 먹고 입으려" 하고 있다는 것, 삶의 이유와 가치를 자식 교육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회적인 변화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이러한 점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우리 사회의 어떠한 구조적인 문제가 여성들의 삶과 주체성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바로 이 점을 더욱 교묘히 고착화 시키고 있는 것일까? 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질문은 한 번 던져보고 싶다.

줄거리

엄청난 돈을 미술관에 기부하면서 미술관 관장이 된 정치적 야망가 조한민의 신임 관장 취임식 준비가 한창이다. 오래 전부터 이 미술관을 지켜왔지만, 한민의 등장으로 설 자리가 없어진 큐레이터 숙자는 opening speech를 연습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현숙에게 빼앗긴다. 그것은 한민의 결정으로 현숙이 하게 된 것. 현숙은 조한민과 불륜 관계이자, 출세욕이 많은 유학파 출신 큐레이터다. 이러한 와중에 기자들이 도착하고, 미술관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현숙이 기자들을 상대한다. 그 때 등장하는 아현(조한민의 부인)과 자실(조한민의 어머니). 최고의 미녀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한민과 결혼 후 은퇴한 아현에게로 모든 시선과 관심이 쏠린다. 그러자 오늘의 주인공은 한민인데 왜 나서냐고 압력을 가하는 자실. 그렇게 여성들의 미묘한 신경전속에 조한민의 등장으로 신임 관장 취임식이 시작된다.
취임식 후 한 테이블에 앉은 네 여자. 네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미술관을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미술의 메카로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대화중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식과 위선을 가면 삼아 서로가 서로에게 날이 선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이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한창일 때 들어선 백기자. 이후 조한민이 합세하자 백기자는 이미지 게임을 제안한다. 이미지게임을 빙자한 진실폭로 게임. 감추려는자와 파헤치려는 자.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 것인가?

캐릭터

김자실 | 공공연한 비밀이란 게 있는 거다. 다 알아도 다 모르는 척 하는 게 있는 거야. 그것도 공짜로 그렇게 되는 줄 아니?

조한민 | 웃기잖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나? 딱 그거잖아. 현숙씨 말대로 거미줄이 그렇게 생겼어.

박숙자 | 참... 다들 생각보다 불쌍하게 사네. 기존의 권위체계 전복? 괜찮은 해석이네. 근데,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오겠지?

김현숙 | 나처럼 사는 것도 거미줄 위에서 줄타기하는 것만큼 아슬아슬한 일이라는 거 알아요? 거미줄을 타고 가다 보면, 그 끝에서 줄을 쥐고 있는 건 다 남자거든.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어쩌겠어?

백기자 | 미술관은 텅텅 비었고, 우리만 남았고, 해는 져서 바깥은 깜깜하니 조용하고... 분위기 너무 좋은데요. 꼭 MT 온 것 같다! 이럴 땐 게임을 해야 되는데.

이아현 | 이 중에서, 이 중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라났을 것 같은 사람은? .. 저도 숨 좀 쉬고 살면 안될까요?

김기자 | 백기자. 빨리 가자. 더 못 참겠어. 백기자! 이제 가지. 시간도 늦었는데. 가자. 우리 낄 자리도 아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