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작가의 말
길게는 15년, 짧게는 1년이 된 글들입니다. 몇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글도 있고, 아직 변화를 겪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을 보낸 글도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세 개의 글을 하나로 관통하는 키워드 같은 건 없습니다.

<환절기에서>를 쓸 때는 20대의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된다면… 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썼습니다. 30대가 돼서 이 글에 살을 덧붙이면서는 그 두려움을 딛고 기꺼이 부모가 된 사람의 마음가짐, 그리고 그 부모가 느끼는 또 다른 두려움에 대한 감정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많은 이면이 있습니다. 그건 불운한 사고의 피해자들, 더 이상 어떤 증언도 항변도 할 수 없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 그들에게 우리가 몰랐던 어두운 면이 있다면, 그렇다면 엄마(부모로 확장해도 되겠습니다)들은 자기 자식의 어두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엄마, 후유증>은 이에 대한 질문입니다.

<바나나를 들고 있는 남자>는 ‘정상적'이라는 판단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에서 출발했습니다. 과연 진실이 정상을 담보하는 증거일까. 어쩌면 우리가 판단하는 정상의 기준은 진실이 아니라 모두의 합의, 혹은 권위자의 판단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 대본에 담고자 했던 감정, 질문, 그리고 나름의 대답들은 모두 저의 추측과 가설, 상상들일 뿐입니다. 그저 이 추측과 상상이 좋은 연출, 배우 분들과 함께 구체적인 설득력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줄거리

<환절기에서>
아이가 죽었다. 난희는 아이의 부고 소식을 받고 낯선 도시에 내려왔다.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몇 년을 살아왔다. 아이와의 인연도, 그리고 과거 연인이었던 상우와의 인연도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희는 아이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지, 과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해야 할지, 조금도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한 채 아이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 대신 아이를 키운 또 다른 엄마 희수를 만난다.

<엄마, 후유증>
미술학원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유일한 생존자인 주영은 혼수상태다. 그리고 그런 주영을 간병하고 있는 수경은 바로 그 미술학원 화재 사고로 하나 뿐인 딸을 잃었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담배꽁초라고 했지만 수경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런 수경의 앞에 죽은 딸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리고 수경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들춰내며 엄마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바나나를 들고 있는 남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보는 남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정신병자'라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를 보살펴주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다. 세상은 그를 그렇게 계속 정신병자인 상태로 두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남자에게 정상적인 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과연 남자는 정상적인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남자가 보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