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004년에 러시아의 대문호 안똔 체홉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체홉4대장막전] 이후 2010년 체홉 탄생 150주년을 맞아 국내 초연이라 할 수 있는 숲귀신(숲의 정령)을 전훈이 새로 번역하여 연출한다.
이 [숲귀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냐 아저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야말로 체홉의 숨겨진 명작이라고 볼 수 있다.
순차적으로 보면 체홉의 세 번째 장막으로써 [이바노프](1887) 다음으로 대중에게 선 보였다.
그가 29세인 1889년 1차로 완성되나 같은 해 12월 27일 아브라모프 극장에서 초연 후 몇 차례 수정을 거쳐 그 이듬해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12월 초연은 참담한 실패를 한다. 공연 뿐 아니라 희곡 자체까지도 평단에서 부정적이였는데 "훌륭하게 각색된 소설이지 드라마는 아니다" 라는 평이 일반적이었는데, 체홉은 이 혹평에 대하여 상심했는지 이후 그가 죽기 전까지 일체의 출판과 공연을 불허한다. 따라서 그의 생전에는 초연 이후 단 한번도 공연 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0년 후 대대적인 개작을 하여 [바냐아저씨]로 이름을 바꾸고 발표를 하는데 이는 모스크바예술극장(MXAT)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등장인물과 어떤 부분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냐아저씨]의 경우 '삶은 어둡고 힘들지만 살아내야 한다' 인데 반해 [숲귀신]은 '허무한 삶은 끝냄이 마땅하다. 하지만 산 사람은 웃기게도 또 살아간다.'로 근접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결말이 체홉의 후기 4대 장막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국내 초연인 만큼 애플씨어터에서는 제대로 된 소개를 위해 희곡의 각색 및 압축 없이 대본 그대로 올린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줄거리

1890년. 러시아 어느 시골.
조용하고 한가한 러시아 전원에 퇴임한 유명교수가 그의 젊은 둘째 아내 옐레나와 함께 자신의 영지에 쉬러오면서 그곳이 떠들썩해진다. 교수 전처의 오빠인 이고르는 옐레나를 짝사랑하게 되고 심각한 상사병을 앓는다.
또한 마을 남자들 대부분 그녀의 도시적 세련됨과 미모에 반하게 된다.
이고르의 구애는 도를 넘어서게 되고, 이를 경멸하는 숲 귀신 흐루쇼프는 숲을 지킬 것을, 도덕을 지킬 것을 요구하지만 옐레나의 영향력에 기운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느 날 교수가 이 영지를 팔고 핀란드에 별장을 살 것을 제안하자 이고르는 늙은 어머니와 자신은 어디서 살라는 얘기냐며 교수에 대한 증오와 자신의 못 이룬 사랑에 대한 자괴감에 권총자살을 하고 만다.
마을은 이고르의 자살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나고, 옐레나는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로 인해 어느 오두막에 숨어 지내다가 결국에는 모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화해를 시도하고 시골의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