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 각자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일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150여 년 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통찰한바 그대로이다. ‘가증스런 시간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묵묵히 앞으로, 앞으로 두 발을 번갈아 내디딜 뿐이다. <즐거운 나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목전의 현실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실존적 삶의 무게를 버겁게 등에 진채 꿈을 잃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꿈을 잃은 사람이고, 꿈에 절망한 사람이고, 꿈에 젖어 사는 사람이고, 꿈을 버린 사람이고, 꿈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다. 오늘날 점차 개별화, 기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인간들의 관계도 ‘나’?아니면 모두?‘타인’으로 고착화되어간다. <즐거운 나의 집>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실존적 비극성에 대해 연극언어를 통해 그 문제의식을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줄거리

무대 위에 무한대의 우주공간이 펼쳐지는 가운데,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공간에 곳곳 드러난다. 달이 지구에서 자꾸 멀어지는 게 걱정인 지원의 할아버지(노인)는 하루 종일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족들에게 늘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해대서 구박을 받는다. 과거 동양 태평양 페더급 챔피언 출신이지만 지금은 조그마한 체육관에서 배 나온 아줌마들의 비위를 맞추며 복싱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아버지 창대는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심한 자괴감을 안고 술로 자존심을 달래며 하루를 버틴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가수 출신의 엄마 서영은 이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무대의 취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화려했던 지난날을 가슴에 품은 채 버거운 삶의 짐을 벗어 홀가분히 숨 쉬고 싶은 욕망에 고통스러워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20대 중반의 지원은 대형 할인마트에서 신제품 커피를 홍보하는 일을 하며, 틈나는 대로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지만 벌써 12번이나 탈락하였다. 13번째 소설 응모작은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지원의 직장 상사인 영진은 지원을 사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질 못하고, 가슴에서만 부글거리는 뜨거움의 고통을 서영이 노래하는 술집을 찾아 달래곤 한다.
지원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적 삶의 무게에 고통스러워하며 저마다의 자신의 꿈에 매달려 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내딛는 걸음마다 삶의 절망이 질펀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젖은 발을 들어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얼굴에는 쓰디쓴 미소를 함빡 머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