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마녀 시코락스의 아들 캘러번과 꿈결에서나 손끝에 닿을 수 있을 에어리얼과 같은 요정들은 손쉽게 몸종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스페로의 마법은 극작가의 극적 상상과 무관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는 중세 연극에서 무대감독이 사용하였던 레지바톤, 즉, 무대감독용 지시봉으로 볼 수 있다. 관객들이 극장으로 들어서면, '태풍'로고와 함께 '온 세상이란 극장' 제목의 1570년 안트워프에서 출판된 지도가 프로시니엄 오프닝을 가득 메우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이미 프로스페로의 마법에 걸려든 셈이다. 온 세상이란 극장에서 관객들이 싣고 2시간 남짓의 연극여행을 위하여 출항할 선박의 모습이 프로시니엄 오프닝에 드러나면서, 장중하면서 흥겹고, 환상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음악극 '태풍'이 시작된다. 막이 걷히면, 프로스페로는 백패를 긋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인물들을 올려놓는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권력의 야욕에 빠진 귀족들, 광대들, 늙은이들, 젊은이들, 빈정대는 사람들, 순진한 사람들 등.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듯 백패가 돌면, 등장인물들은 세상의 온갖 낡고 추악한 것들을 백패 위에 실어 올린다. 셰익스피어 원작 'THE TEMPEST'의 극 초반에 나오는 태풍은 온갖 인물들을 백패 위에 올리기 위한 프로스페로의 마술적 고안으로 그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의 두 번째 태풍은 세상의 온갖 낡고 추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다가올 새 천년에 풍요와 정의가 넘치는 새 세상을 사랑으로 펼치기 위한 이윤택의 극적 고안이다. 따라서 무대는 다시 한번 백패라고 하는 세상 안에 '혁명도 없고 전쟁도 없는 파라다이스, 지상의 낙원,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고 환상을 배우는 낙원' 극중극 마스크 장면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낙원에서조차 그 추악함을 드러내는 인간의 욕망은 이윤택의 두 번째 태풍. '신풍'의 고안을 필연으로 만들었으리라. 1999년 세기말에 부쳐진 음악극 '태풍'은 우리 것과 다른 것의 공존을 추구한 각색, 연출 이윤택의 포스트모던한 공연의 중심 개념으로 인하여 연기를 위시한 음악, 무대 ,조명, 의상, 특수효과 등 스태프 전반에 걸쳐 장대한 스케일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원작을 '해체 및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내 것 네 것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밀레니엄 음악극 '태풍'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이란 굴레에서 자유하여 '자연'으로 회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지고지순의 예술세계를 구현한 이윤택의 '태풍'은 새 천년을 향한 연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다.

줄거리

전막
알론조왕과 그의 신하들이 탄 배가 갑작스런 태풍으로 인하여 좌초당한다. 바다를 잠재워 달라고 애원하는 어린딸 미란다를 달래며, 섬의 주인 프로스페로는 12년 전 알론조왕의 원조를 받은 친동생 안토니오에게 자신의 통치권을 빼앗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시샘하며 바라보고 있던 새의 요정 에어리얼이 날아들어 프로스페로의 명령대로 태풍을 일으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섬 이곳저곳으로 흩어놓았다고 보고한다. 프로스페로는 에어리얼에게 미란다의 사랑을 인도해 오도록 지시한다. 에어리얼에 이끌려 등장하는 퍼디넌트 왕자와 미란다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고, 프로스페로는 허드렛일을 통해 퍼디넌트의 성품을 닦도록 한다. 조난을 당한 두 번째 그룹은 알론조왕, 그의 동생 세바스티안, 안토니오, 곤잘로, 그리고 신하들로 이루어져 섬을 헤매고 다닌다. 세바스티안과 안토니오는 알론조왕과 곤잘로가 잠들었을 때 그들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략은 에어리얼에 의하여 저지된다. 세 번째 그룹은 궁정광대 트린큘로와 주정뱅이 주방장 스테파노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프로스페로가 섬에 오기 전에 섬을 통치하였던 마녀 시코락스의 반인반수 아들 캘러번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이고, 프로스페로에게 빼앗긴 섬을 돌려 받기 위하여 진격한다.
후막
후반부는 사랑하는 두 연인들이 격렬한 키스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막이 올라간다. 프로스페로는 사전에 적들의 계략에 대해 미리 경고를 받고 대착을 강구하고, 퍼디넌트에게 미란다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곧이어 성대한 향연이 벌어지는데, 극중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프로스페로, 퍼디넌트, 그리고 미란다이다. 하지만, 형 프로스페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안토니오로 인하여 향연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 세상 모든 추한 것들을 날려보내는 태풍이 다시 한번 몰아친다. 음향과 바람, 조명 세례가 한 차례 지나간 후 무대는 정적에 사로잡힌다.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왕에게 화해를 제안하고, 알론조왕도 이를 받아들여 프로스페로에게 군주권을 복원시킬 것을 약속한다. 왕국은 두 사람의 용서와 화해로 더욱 안정적이고 강력해졌으며, 프로스페로는 마법의 지팡이를 버리고, 미래의 희망을 퍼디넌트, 미란다 두 젊은이에게 넘기고, 에어리얼과 캘러번에게도 자유를 선사한다.

캐릭터

프로스페로 | 권력가의 암투보다 책과 낭만을 더 좋아했던 군주. 친 동생에게 정권을 찬탈 당하고, 자신의 공국에서 쫓겨나 표류끝에 섬에 도착하여 마법을 터득, 자신의 딸 미란다와 퍼디넌트 왕자의 사랑을 맺어주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극의 중심 인물

알론조 | 부패한 왕국의 무능한 국왕. 태풍을 만나 아들 퍼디넌트 왕자를 잃고 헤매다 자신의 죄르 뉘우치는, 낡은 세상과 구세대의 상징적인 표본. 그의 번민과 회한의 노래는 20세기를 접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퍼디넌트 | 왕권에는 관심이 없고 서민적인 노동에서 희열을 얻는 자유주의자. 미란다와의 운명적인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21세기형 왕자

미란다 | 새로운 세상의 모태가 되는 기적과도 같은 인물. 퍼디넌트에게는 여신과 같은 존재로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원초적인 자연 그 자체

곤잘로 | 혼돈된 세상을 구원할 힘을 갈구하며 알론조 왕에게 영원한 순정을 바치는 충신

안토니오 | 악의 정당성을 목숨처럼 소신있게 지키는 인물. 세상을 뒤집히는 태풍 속에서도 그는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세바스티안 | 음모의 화신인 안토니오의 계략에 말려 들어 형 알론조왕을 죽이고 왕권을 빼앗으려다 미쳐버리는 권력을 희생양

캘러번 | 새의 요정 에어리얼과 함께 프로스페로의 마법에 걸려든 원초적 인물. 하지만 인간 원형의 심성을 그대로 보존한 초자연적 인물, 아름다운 괴물이다.

에어리언 | 쪼개진 소나무 통에 갇혀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프로스페로의 마법으로 풀려나 그가 계획하는 일을 성사시키고 대신 자유를 얻는 새의 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