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의도

식민지시대 대중연극에서 친일연극까지 고난과 억압의 변방연극사를 재조명한다

이 작품은 한국연극 100년의 흔적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1920-1930년 대중극시대부터 1940년대 친일연극 시대를 관통한다. 신극 중심 근대연극사에서 소외되어 잊혀졌던 신파극과 만담, 막간극 형태로 존재했던 우리의 전통 소리 등 변방의 극으로 존재했던 대중극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1940년대 친일연극의 실태를 벗겨 내면서 억압과 검열의 시대 속에서도 연극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불우한 연극인들의 삶과 작업을 무대화 하는 것이다.
지식과 대중,이데올로기와 연극, 예술과 생존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식민지 시대 연극인의 모습을 되돌아 보면서,
지금 이곳 21세기 한국연극의 지점을 새삼스럽게 확인 하는 것도 이 작품의 기획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 극작가 임선규와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가 만났다면….
한국 연극 최초의 근대극 여배우 이월화는 1935년에 사망했고, 극작가 임선규는 그 이듬해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흥행하면서 본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월화와 임선규는 만난 적이 없고 같이 작업한 적이 없다.
그러나 <경성스타>에는 대중 극작가 임선규와 여배우 이월화가 같이 만나 연극작업을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란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극중에 등장하는 월희란 가상 여배우는 이월화에서 ‘눈물의 여왕’이라 불리웠던 전옥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의 모습이 겹쳐져 있다.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양반과 민중의 차별이 분명했고, 남성 중심주의가 활개치던 삶의 공간에서 한국의 근대 여성 연극인은 어떻게 세상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잊혀졌는가?

연극 만세!
작가 김윤미가 만들어 낸 경성시대 에피소드적 연극 이야기에 연출가 이윤택은 극작가
임선규를 등장시켜 친일연극의 실상을 파헤친다.
임선규의 1940년대 대표작 <동학당><빙화><새벽길>을 극중극으로 삽입시켜 , 한국 근대연극사에서 가장 묻어버리고 싶은 친일연극의 실상을 파헤치면서, 수치와 오욕의
연극사 속에서도 작가의 고민과 저항의 몸짓을 읽어낸다.
“연극인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없어. 그들에게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바로 연극일 뿐이야. 내가 북으로 가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고, 네가 남쪽을 선택하는 것은 남쪽이 너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헤어지더라도 서러워 말자. 연극 만세다….”
<경성스타>에 등장하는 신인배우 전민이 여동생 혜옥에게 던지는 이 마지막 대사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분단 상황을 푸는 연극적 단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줄거리

무대는 경성역 광장에서 시작된다. 시골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 전혜숙은 오빠 전민과 함께 경성역에 도착한다.
그들이 만난 첫 무대는 임선규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공연이 끝난 무대 뒤에서는 옷이 더렵혀질까봐 서서 죽기를 고집하는 퇴물 여배우 이월희가 연출가 박진과 싸우고 있다. 이 와중에 혜숙과 전민은 인사를 하지만, 다음에 보자는 박진의 말에 그들은 승낙하는 걸로 알고 청소를 시작하고, 임선규의 담배 심부름을 한다.
동양극장이 빚더미에 올라 타인에게 넘어가자 임선규는 배우 황철 연출가 박진과 함께 극단 아랑을 만들어 독립한다. 심영은 황철과 사이 가 안 좋아 따로 극단 고협을 차린다. 지방공연 중에 차홍녀가 전염병으로 죽고, 극단 아랑은 창단작 <청춘극장>의 성공으로 아연 활기를 l띠고, 임선규는 대작 <동학당>을 완성한다. 그러나 1941년 친일연극 압력이 거세지고,국민극 경연대회가 열린다. 극단 아랑은 황철이 추천한 일본 축지 소극장 출신 안영일이 영입되고, 임선규와 박진은 극단 아랑을 떠난다.
이들을 맞이한 곳은 바로 심영이 주도하는 극단 고협. 여기서 임선규는 <빙화>를 쓰고,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인 자신의 아내를 주연으로 추천한다. 그리고, 영화판에서 단역으로 추락한 이월희를 어머니 역으로 동시에 추천한다. 문예봉은 이월희와 갈등 끝에 역을 포기하고, 신인 혜숙이 주연을 맡아 이월희와 연기하면서 연기의 선생으로 받든다. <빙화>는 제1회 국민극 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당대 최고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일어로 공연하라는 등 친일의 압력이 거세지자 많은 연극인들이 작업을 포기하거나 악극 등 대중극으로 전향한다. 이때 임선규는 자신의 마지막 희곡 <새벽길>을 완성하고, 자신 이 배우로 데뷔했던 조선연극사 재창단 기념 공연작으로 막을 올린다. 임선규 스스로 배우로 나서고, 아편쟁이로 전락하여 군산항 작부로 살아가는 이월희를 찾아 내어 여 주인공 역을 맡긴다. 1945년 해방을 앞두고 임선규는 마지막 친일연극을 막 올린다.
해방이 되자 임선규는 절필을 한다. 자기반성적 입장에서 민족성을 고취하는 극을 쓰라는 주위의 제안도 거절한다.
혜숙은 유치진선생의 추천으로 이해랑이 연출하는 현대극 싸르트르의 <붉은 장갑> 연습에 참가하던 중 6.25 동란을 맞이한다.
임선규는 아내 문예봉을 따라 월북하고, 전민도 월북을 선택한다. 그러나 혜숙은 남쪽에서
새로 접한 현대극에 눈을 뜨고 남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란으로 서울은 황폐화되고,<붉은 장갑> 연습도 중단된다.갈곳이 없는 혜숙은 잿더미가 된 조선연극사 연습장에 홀로 남는다. 여기서 혜숙은 라무네를 팔던 옛 동양극장 가판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혜숙에게 연극을 하자고 조른다. 그러나 폐허가 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 서울 어디에서 다시 연극을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소년은 손풍금을 타며 거리로 나선다. 혜숙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연극은 여기서 끝난다.

(연극무대에서는 실제와 가설의 상상력이 공존하므로 실제 인물은 모두 익명, 혹은 개명된 이름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