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그들은 종이 위에다 자, 연필, 분할 컴퍼스를 쓸 때는 비상한 손재주를 보였지만, 일상적인
활동에서는 아주 서툴고, 어색하고, 손재주가 형편없었다. 그들은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주제를 생각할 때는 무척 느리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 그들의 생각과
정신은 앞서 말한 두 개의 학문, 즉 수학과 음악에만 갇혀있다.”
조나단 스위프트. 「제3부 라퓨타(날아다니는 섬),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여행기.
제2장」. 『걸리버 여행기』. 이종인 옮김 (파주: 현대지성, 2019).
〈걸리버스 3〉는 천공의 섬 라퓨타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유리된 채 허공에 맴도는 교육
제도와, 그 아래 꿈을 붙들고 살아가는 학생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라퓨타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학생들은 오늘도 '살'을 담보로 입시를 향해 달린다. 학원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전을 거듭하지만, 실패는 언제나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 레이스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이 승자에게만 모든 것을 허락하는 혹독한 겨울임을 알면서도 학생들은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
체홉에서 셰익스피어, 입센에서 소포클레스까지. 맥락을 잃고 연기 입시 레퍼토리로 박제당한
텍스트들이 〈걸리버스 3〉에서 다시 소환된다. 죽은 장면들로 이어낸 콜라주와 그 이음새에서
생겨나는 균열에서 관객은 제도가 꿈을 처리하는 방식을 읽어내게 될 것이다.

줄거리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풍자소설이다.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스위프트의 말처럼, 이 작품은 유쾌한 모험 이면에
자리한 인간 사회의 그늘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사회의 민낯을 각기 다른 자리에서 관찰한다. 1부에서 소인국,
2부에서 거인국을 떠돌며 극적인 위치 변화를 겪었던 걸리버는, 3부에 이르러 공중에 떠다니는
섬 ‘라퓨타’에 당도한다. 특정 학문에만 몰두한 채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삶을 사는 라퓨타의
고상한 지식인들은 정작 실생활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그 아래 발니바비의 노동자들은
황폐한 농토에서 고통과 가난에 신음하지만, 사색에 빠진 라퓨타 사람들은 땅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한편, 라퓨타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무리가 학술원을 열고
앞다퉈 혁신적 이론을 들이민다. 그러나 발니바비 땅과 사람들은 더욱 피폐해져 갈 뿐이다.
라퓨타는 누구를 위해 하늘 높이 떠 있는가. 그 아래서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까지 그 높은 곳을
하염없이 올려다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