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백치 백지 2011
The Idiot, The White


바보는 한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바보가 전하는 구원 이야기, 사랑!
바보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
세상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는
사랑 이야기

연극 <백치 백지>는
나만의 바보찾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순수영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를 연극으로 만났다.
한ㆍ 러 공동연출극 <백치 백지>로 재탄생
2010년 11월 한국 초연에 힘입어
2011년 6월 대학로를 뜨겁게 달구기 위해 다시 태어난다.
한국의 절대적 미학을 자랑하는 임형택 연출과 러시아 최고의 감성연출가로 잘 알려진 안드레이 세리바노프 공동연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백치, The Idiot>를 원작으로 한 극단 서울공장의 연극 <백치 백지, The Idiot & The White>가 2011년 6월 대학로에 다시금 새 바람을 일으킨다.

2010년 8월 구성워크숍 공연을 거쳐 같은 해 11월 약3주간 국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이미 <두 메데아>, <논쟁> 등을 통해 해외 유명 작품을 한국적 미학으로 잘 살려냄과 동시에, 개성있는 실험적 무대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임형택(극단 서울공장 예술감독)과 러시아 최고의 감성연출가로 잘 알려진 안드레이 세리바노프(Andrei Selivanov)의 공동연출 및 공동각색으로 우리 사회에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현명한 ‘바보’에 대한 부재를 가슴 뜨겁게 그려낸다.


작품 소개 : 원작
백치(1868)
<백치>는 작가의 두 번째 여행 기간(1867~1871) 동안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쓰인 것으로 1867년 봄 뻬쩨르부르그를 떠나면서 [러시아 통보]로부터 이미 선불금을 받은 상태에서 집필이 시작되었다.

간질을 앓고 있던 그가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자신이 거느렸던 농도들에게 살해되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그는 돈을 탕진하며 즐겼고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잃게 된다. 반체제 모임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오랜 형무소 생활도 겪었다. 지독한 생활고 속에서 갓 태어난 아이마저 병으로 죽었다. 그 아이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무렵 그의 작품이 출간됐다. 그 작품이 바로 소설 <백치>였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러시아 신문에 보도된 어떤 형사 재판 사건 기사였다. 이런 사건들을 그는 ‘환상적인 사실주의’라고 불렀지만 이것을 소설에 이용할 때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강조했다. 그는 평범한 러시아인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인간 내부의 인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런 문제들을 한 차원 끌어올려 보편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나를 심리학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단지 더 높은 의미에서 사실주의자일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인간 영혼의 모든 심연을 묘사한다..” 그는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백치>의 주요 의도는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즉 도덕적인 의미에서)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이다.” 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줄거리

첫 번째 이야기, 백치 뮈시킨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는 1868/69년에 발표되었다. 오래 전부터 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려 했다. 아름다움이란 그에게 미적 가상이라기보다는 가장 고귀한 도덕적 능력을 지닌 존재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운 인간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지상의 비참한 상황이 뭇 인간들에게 정말로 선하고 순수한 면을 요청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로서 탄생한 인물이 바로 뮈시킨 공작인데 작가의 창작 노트에는 그리스도 백작 이라고 명명되어있다.

물론 공작이 예수처럼 완벽하지는 않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으며, 간간이 출현하는 간질 증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천성적으로 놀라울만큼 겸손하고 겸허하다 . 뮈시킨 공작은 자신의 이타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주위로부터 거의 백치 취급당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공작이 요양차 오랫동안 스위스에 체류하다가 러시아로 되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열차 안에서 로고진이라는 상인이 주인공에게 말을 건다. 로고진은 아름다운 나스따시아 필립포브나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녀를 차지하려고 온갖 술수를 다 쓸 생각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로고진의 속물적 사고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스따시아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낀다.

같은 날 공작은 먼 친척인 예빤친 장군의 집에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의 그림을 바라본다. 그림 속 여성은 바로 아름다운 나스따시아 필립포브나였다. 예빤친 장군은 나스따시아에게 돈을 주고 자신의 비서, 가냐와 결혼시키려 하고 있었다. 재벌가 또츠키의 정부였던 나스따시아에게 언제나 또츠키가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염려하는 장군은 자신의 (못생긴) 큰 딸을 재벌 또츠키와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려 한다. 몇 시간 후 뮈시킨 공작은 장군의 막내딸 아글라야와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두 개의 강렬한 감정이 그의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그 하나는 아글라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요, 다른 하나는 나스따시아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공작은 실제 나스따시아와 곧 만나게 된다.

뒤이어 공작은 초대받지 않은 그녀의 생일파티에 참석한다. 돈으로 자신을 사려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비웃으며 거액의 돈다발을 불길 속에 던져버리는 나스따시아에게 공작은 청혼한다. 나스따시아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청혼하는 공작에게 감동받지만, 마음 속 솟아오른 사랑의 감정과 이룰 수 없다는 열등의식에 못내 괴로워할 뿐이다. 그녀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사실이 밝혀진 공작을 택하지 못하고 로고진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기 위해 로고진을 따라 떠난다.

한편 아글라야는 뮈시킨 공작이 나스따시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질투심은 나스따시아가 로고진 뿐 아니라 뮈시킨 공작과도 육체관계를 맺었다고 상상하게 한다. 아글라야는 그녀에게 법적 투쟁을 제안한다. 뮈시킨 공작은 다시금 나스따시아를 두둔한다. 아글라야는 장군의 딸이지만 , 나스따시아는 가나한고 불쌍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글라야는 공작을 영원히 떠난다.

뮈시킨은 나스따시아에게 다시 한 번 결혼을 신청한다. 주인공에게 결혼이란 무소유의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에는 나스따시아를 조건 없이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나스따시아는 주인공과 결혼하기 직전 또다시 로고진에게 향한다. 공작 역시 그녀를 찾으려고 로고진의 집으로 달려간다. 로고진은 공작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나스따시아를 칼로 찔러 죽인다. 공작은 기절한다.

다음날 아침 공작은 불쌍한 나스따시아의 죽음을 인지한 뒤, 그녀의 시신 앞에 엎드린 채 넋 나간 듯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로고진은 15년 구금형을 받고, 뮈시킨 공작은 요양원으로 돌아간다. 그의 의식은 세상의 모순에 방해받은 채 서서히 꺼져간다.


두 번째 이야기, 바보 백지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바보가 살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백지라고 합니다.
그의 주민등록상 이름이 아니고 그저 남들이 편하게 부르는 이름입니다.
백지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남들이 “백지야” 하면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기를 부른다는 것은 아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바보를 따라다니며 쥐어박기도 하고 냄새 난다고 피해 다니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무섭다고 울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그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바보를 쫓아다니며 또 놀려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바보는 아무리 맞아도 아이들을 되받아 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보에게 말을 걸거나 매질을 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시집 못간 처녀는 바보에게 푸념을 해대고 마누라랑 싸워서 울분이 삭이지 않은 건장한 아저씨는 바보에게 주먹질을 해댑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다고 백지는 웃어댑니다.

그리곤 어김없이 사라졌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나타납니다. 오늘은 옆 집 개까지 바보를 무시하는 듯 그를 사정없이 물어버립니다. 그래도 좋다고 웃어댑니다. 개에게 발길질을 하다가도 백지는 제 동무인 것처럼 개가 먹던 물밥을 나눠먹습니다. 동네 강아지는 뭐가 좋은지 그 바보를 쫓아다닙니다.

남의 집 초상 날에도 옆 마을 결혼식에도 늘 백지는 나타납니다. 옆집 아저씨도 바보를 늘 두들겨 패던 것이 못내 미안해 그에게 밥술을 떠 줍니다. 어느 결혼식 날 백지는 초야를 앞 둔 신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정말 오래 만에 몹시 심하게 신랑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 신부는 논 두어 마지기에 신랑 집에 팔려왔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리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결혼한 지 수주가 지나자 불어 오른 신부의 배는 이내 넉 달째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아이를 백지가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아이는 쫓겨난 신부와 백지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소박을 맞은 신부는 백지에게 울며불며 찾아가 이게 다 너 때문이라며 백지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심하게 긁힌 상처를 남기고 갔습니다. 백지는 아팠습니다. 긁힌 생채기도 아팠지만 더 아픈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부쩍 성장했고 소녀들은 가슴이 봉곳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없어졌던 백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것은 백지는 오히려 더 어려져서 나타난 것입니다. 아니 백지는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 아마도 나이가 들어버린 마을 사람들에게 백지가 더 어려 보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백지는 바보라고 놀리고 다녔습니다. 마을 아낙이나 동네 청년들은 이제 백지를 마구 두들겨 패기보다는 안쓰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없던 막걸리도 백지에게 나눠주기 시작했고 배가 뒤틀어져 토사를 해버리는 백지를 놀리곤 했습니다. 이제는 아줌마들이 되어 버린 동네 처녀들은 백지에게 가끔씩은 너 이리 와봐 하며 사타구니 쪽을 슬쩍 만져보고는 ‘애는 아닌데’라며 놀리곤 저들이 스스로 부끄러워져 하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합니다. 아마도 더 어려 보이는 백지가 만만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웃 동네에 과부가 있었습니다. 날벼락으로 나이 사십에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을 보내고 사는 과부는 재어 놓은 재산이 많아 이 사내 저 사내들이 업어가려고 난리가 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려가 깊어 보이는 과부는 남들이 백지를 두들겨 패 피라도 본 날이면 백지를 집으로 불러다 상처도 만져주고 피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곤 백지의 주린 배가 안쓰러워 남은 누룽지에 제 철에 사 놓은 과일까지 주곤 합니다.

백지는 과부의 집 앞을 지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과부는 그닥 싫지 않은 듯 백지가 지나 갈 때면 집에 들여 밥상을 내주곤 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동네에는 또 한 번 흉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과부가 백지를 들여 앉혔다는 둥, 과부의 배가 불러 온다는 둥.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과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못된 병이 걸려 저래 앓는다는 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집 출입을 삼갔습니다. 의원도 옘병이니 뭐니 하며 도대체 과부의 병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 집을 변치 않고 드나드는 것은 백지뿐이었습니다. 과부는 점차 얼굴색을 다시 찾고 백지가 오히려 시름시름 앓게 되자, 과부를 보쌈 하여 업어가려던 사내들 사이에 작당 모임이 일어납니다. 천둥이 몹시 치던 날, 사내들은 드디어 작당을 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어 제대로 대적도 못하는 백지를 흠씬 두들겨 팹니다. 그리고 과부를 보쌈하려 합니다. 과부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백지를 막으려고 제 몸으로 백지를 감쌉니다. 사내들은 재수없다며 둘을 시체처럼 내팽개치고 떠납니다.

그리고 둘은 늘 그렇듯이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백지가 마을에 다시 나타난 것은 코 흘리던 아이들이 허리가 구부러지고 헛기침을 하고 백발이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지는 오늘도 바보짓을 하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