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제작 의도

본 페스티벌 해방공간은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 사이의 희곡을 공연한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 페스티벌'의 키워드는 [초연, 창작실험, 시대정신]이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은 매년 봄.가을 페스티벌을 통해, 초연작으로 기획된 창작실험의 무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연극매니아의 꾸준한 관심 및 연극관객층 저변확대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과 겨울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실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은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한 2012년 봄페스티벌 '해방공간'을 개최한다.
본 페스티벌은 대한민국의 핵심 사안인 분단, 근대화의 대립항으로서만 존재했던 친일잔재, 전범에 대한 사법판단, 인권과 보편적 가치의 구현, 세계평화 등에 대한 억압과 기피의 대상이었던 해방공간(1945.8-1950.6)의 희곡을 통해 일제강점기 체험의 재현과 성찰, 혼란상과 분단에 대한 당시의 역사인식을 반추해 봄으로써, 일제강점기의 연장선에서 시작하는 '분단'과 '근대화'를 재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현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해방공간, 그 역사적 의미

속박과 예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지만,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1945년~1948년의 해방정국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장이었다. 정치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일제하의 분위기에서 억압됐던 욕구가 일시에 분출되면서, 정치체제와 토지개혁, 미군정과 모스크바 삼상회담, 좌우합작과 통일전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토지개혁과 주요사업의 국유화 등과 아울러 물가고와 인플레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요구, 전통주의의 지속과 근대주의의 유행이 뒤엉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문화적 요구가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압도적 관심과 첨예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이 시기 기술과 예술의 근대성에 대한 모색이 들어설 수 있는 여지를 앗아가 버렸다.


근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기형적인 식민지시기 헤게모니전략의 추상적 근대성을 부정한다.
근대성의 특징은 양면적이고 모순적이다. 자본주의 근대화라는 격랑 속에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삶의 형식이 파괴된 결과로 나타난 개인의 해방과 방향감각상실, 환희와 고뇌를 동시에 겪은 경험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식민지침략과 근대로의 이행과정이 일치함으로써 본질적 상이함을 갖는 내재적 전통과 이식된 근대가 기형적 형태로 결합하게 된다.
식민시기 문화운동의 대세를 이루었던 근대에 대한 일방적인 추구는 개인의 인격과 자아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전통을 부정하고, 추상적 근대성의 개념으로 그것을 대체하고자 했다. 일제의 지배헤게모니에 편승해 그 일부를 공유함으로써 근대를 수립한다는 지배계급의 예속적 발전 전략은 실질적으로는 민족독립을 포기하고 민족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근대화가 식민지시기 헤게모니전략의 일환으로 토착자본과 일부 민족주의자의 주도로 추구된 한계이자 비극이었다. 이로 인해 광범위한 친일 인맥이 해방 직후의 정치변혁과 '민족정기의 심판'에서 '살아남았다. 


해방공간 연극의 시대성

해방공간의 연극은 식민시기에 유보되었던 과제를 한꺼번에 떠안는다.
봉건잔재 청산, 친일파 단죄, 국가건설 등의 사회적 현실과 단절된 전통의 회복, 한국적 근대극 확립, 친일연극의 잔재 청산 등의 연극 내적인 문제가 중첩되면서 해방공간의 연극은 이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치열한 전장으로 변한다. 이념에 따른 연극인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고 연극적으로는 서구근대극과 전통의 대립, 통속극과 대중극의 질적 문제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해방공간의 대다수의 희곡은 좌익 극작가들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공간의 희곡 및 연극은 오랜 시간동안 보수적 학자들에 의해 제한적 소개, 과소평가, 폄하, 왜곡되어 왔다. 80년대 이후 일련의 젊은 학자들에 의해 당시 희곡들이 추가적으로 발견 및 발표되고, 해방공간의 연극에 대한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반쪽짜리 연극사의 복원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방공간은 식민시대 연장선상에 있으며, 동시에 오늘의 현실과 직접적 맥락을 가진다.
식민시기에 진행된 억압되고 왜곡된 근대화가 해방에 의해 원궤도를 회복하기는커녕 한계와 좌절을 가져다주었고, 남북은 미국과 소련의 개입과 주도에 의해 자생적인 대립과 투쟁을 인위적으로 억제 당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친일 청산, 전범 처리, 민주주의 확립, 인권과 보편적 가치의 구현, 세계평화 등의 가치보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우선시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방공간 희곡의 공연이 부진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해방공간이 현 실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의 연장선에서 분단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성장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고 동시에 기피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의 해석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의 창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해방공간의 다수의 작품들은 좌익에 의한 현실비판과 사회주의 혁명의 제창이라는 보수학자들의 인식도 일조한다. 따라서 해방공간의 희곡을 공연한다는 것은 식민지 체험의 재현과 성찰, 혼란상과 분단의 인식 등을 꼼꼼히 들여다봄과 동시에 현대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해방공간의 근대화를 기억하는 것은 21세기의 근대화를 창조 혹은 재창조 할 수 있는 비전과 용기를 제공할 것이다.

줄거리

1. <두뇌수술> 윤한솔 연출(혜화동1번지 5기동인) / 4.19-4.29

해방 후 어느 날, 외과의 오박사는 두 사람의 뇌를 서로 바꿔 넣는 수술을 했다. 수술 받은 이는 부잣집 아들이나 반편이로 태어난 상도와 가난하지만 총명한 시골청년 무길이다.
상도의 정신이 온전해질 거라 기대한 백운양 부부는 자신이 무길이 같다는 상도를 보며 불안해하고, 무길이 신경통 수술을 한 줄로만 알고 있던 무길의 애인 인순은 무길이 반편이처럼 행동하며 헛소릴 하자 쓰러져 오열한다.
대뇌교환수술을 취재하러 온 기자는 두 사람이 대면을 해야만 이 일이 해결될 것이라 하는데…

광복 직후 발표된 진우촌의 <두뇌수술>(원제 : 망향)은 문명비판과 민족 주체성 회복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진우촌의 작품은 전통적 인습에 대한 비판, 끈질긴 생명의지와 사랑, 자연과의 대결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들 세 갈래로 정리된다. 당시 '무대와 연극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극예술 신봉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윤한솔 연출은 "자가당착적 희극"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시각을 제시한다.


2. <그날은 오다> 이양구 연출(혜화동1번지 5기동인) / 5.3-5.13

1940년 일제시대 서울 시내 중류 계급 홍상용은 정회총대(町會總代)를 맡아서 근로보국, 징용, 헌급 헌납 강요 등을 하면서 살고 있다. 국민학교 생도 인묵은 아버지의 뜻대로 경기 중학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자유를 찾아서 가출하여 만주로 떠난다. 한편 사회주의자인 승용(상용의 동생)은 사상의 문제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승용은 고문을 받고 유치장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경찰을 치고 도망친다. 6년 후 1945년 9월 9일 일본이 패전하고 미군이 진주한다. 만주로 간 인묵은 조선인 의용대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승용은 해외에서 돌아온 혁명투사들을 원호하고 생활 지원을 하는 한편 조선 건국사업에 매진한다. 한편 해방 후 친일 전력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던 상용은 자신의 전 재산을 인묵의 이름으로 건국사업에 기부하고 자살한다.

<그날은 오다>는 모두 3막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시내 중류 계급 가정을 무대로 1939년부터 1945년 9월 9일 미군 진주일까지 친일파 홍상용 일가가 겪는 가족사를 통해서 해방을 전후 한 풍경을 그려낸다. 친일 교육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출했던 막내아들 인묵이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오자 아버지 홍상용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고 자살하면서 아들에게 새 조국 건설에 쓰라며 전재산 20만원을 남긴다.


3. <황혼> 김수희 연출(혜화동1번지 5기동인) / 5.17-5.27

해방 직후 경성 근교의 부호 이진수의 별장에 딸 진주가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교육을 한 죄에 대한 책임으로 교원 모두 총사직을 한 상태. 집안일은 거드는 오서방은 해방도 된 마당이니 다시 한글을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진주를 달랜다.
마침 이사장이 시골 대지주의 아들 강병호를 데리고 들어온다. 강병호는 재력으로 도회의원까지 했으나 독립이후 친일파로 몰려 서울로 도망 와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은 달라진 세상에 살길을 모색하고자 구일순 목사에게 통역사를 구해와 자신들의 처지를 제일 큰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연합국, 즉 미국에 알리고자 계획한다. 진주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며 아버지를 비판한다.
구일순은 김영칠이라는 통역생을 데리고 집을 방문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청년이 만드는 독립정부야 말로 자신들의 입지를 다시금 확고히 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는 세 사람의 대화에 열혈청년 김영칠은 분개한다. 그때 강병호의 아버지 강참봉이 시골에서 올라와 이사장에게 아들의 벼슬자리가 어찌 되었냐며 따지기 시작하다, 들어간 돈을 모두 내놓으라며 아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이어 등장한 이사장의 부인 윤씨의 사촌인 옥천마님은 30여년 전 자신을 박대했던 윤씨와의 일을 언급하며 같은 동포에게서 빼앗은 부 역시 바뀐 세상에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집을 떠나고 윤씨는 자신의 지난 행동을 후회한다.
결국 진주는 아버지에게 지난 일을 반성하라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해방 후 38이남에서의 송영의 유일한 희곡작품이다. <황혼>은 해방 직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여진 편에 속하나 해방의 감격 등이 감정적으로 나타나 있기 보다는 친일파의 몰락에 초점이 맞추어져 당시 좌익계에서 주장하던 봉건잔재, 일제잔재의 청산이라는 과제가 본격적으로 형상화된 비교적 드문 경향에 속하는 작품이다.
송영은 해방 전부터 당대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활동해 온 만큼 이 작품에는 ‘작가의 이념 전달’이라는 구호적 성격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재득세의 노력이 계속 좌절되는 가운데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친일파 이사장의 ‘그래도 나는 한 번 해보고 말겠다’라는 대사가 결국 그의 말대로 실현되어 버리는 역사적 현실을 상기할 때, 이 마지막 부분은 매우 역설적인 감흥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 『예술운동』1호 (1945. 12) pp.98~122


4. <호접, 66년의 침묵> 김제민 연출(혜화동1번지 5기동인) / 5.31-6.10

김사량의 <호접>은 1941년 12월 태항산의 호가장 전투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중국 팔로군 지역과 일본군 점령지역 경계 화북지대의 마을에 조선의용군들은 선전활동을 마치고 잠시 쉬는 중이었다. 이때 이 마을의 구장이 밤중에 일본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일본군은 새벽에 이 마을을 포위하였다. 급습을 당한 조선의용군들은 항전하면서 포위를 뚫었고, 팔로군 들이 오면서 일본군이 후퇴하고 전투는 끝이 난다. 조선의용군의 삶이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한층 나은 인간성의 실현과 그로인한 해방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사량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한 문학가였기에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중 <호접>이라는 작품은 해방 직후 남과 북에서 출판되거나 공연되었고, 해방 1주년 기념(1946년)으로 발간한 희곡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후 <호접>은 북에서는 정치적 문제로 잊혀진 작품이 되었고, 남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김사량의 책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간첩행위로 여겨져 그의 작품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북작가의 작품들을 남한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호접>은 60년 가까이 묻혀야 했던 작품이다. 이러한 비극은 분단이후 냉전이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5. <우박소리> 김한내 연출(혜화동1번지 5기동인) / 6.14-6.24

1945년 12월, 가난한 시골집의 장성한 아들인 복만은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한 화가 지망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복만의 미술이 집안 형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며 간판쟁이라도 되라고 계속해서 재촉한다. 아버지와 복만의 불화는 어머니의 중재로 겨우 위태로운 지경을 넘기는 지경이다.
한 집에 사는 박씨의 딸 명순은 부자 남편에게 첩으로 시집갔지만 치장에 신경을 쓰느라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명순의 삶은 행복하지도 않다. 명순과 복만은 서로 좋아하지만 돈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이이다.
간판 일을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 때문에 집안은 또 한 번 크게 소란스러워진다.
명순의 오빠 철봉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돈을 벌러 북쪽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상심한 명순과 어머니를 앞에 두고, 복만은 자신도 철봉과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곳에서 기반을 닦아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만류하는 어머니와 깊이 상심한 명순을 뒤로 한 채 철봉과 복만은 문을 나서는데, 아버지도 뛰쳐나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모두 우박을 맞으며 슬퍼하고 있을 때 명순이 복만의 아버지를 달랜다.

전통과 근대, 자유와 방종이 착종되어 혼란스러웠던 해방 후의 한국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광복의 감격으로만 쉽게 일반화되어버린 해방공간을 뒤집어 본다. 긴 피지배와 전쟁의 시간이 끝난 후 대의명분에서 벗어난 한국인들은 목적지를 잃고 헛도는 방향타와도 같았으리라. 그런 혼란의 와중에 개인으로서 또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목적지를 재설정하려 했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잔인하면서도 코믹하게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