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어떻게 살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使命을 이해하고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의 神의 意志를
통찰하는 일이다. 그 이념을 찾기 위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憂愁主義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스물 두살때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 그가 일생동안 추구한 철학적 주제는 그것 때문에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까닭을 붙드는 일이었다.
그는 시간적 존재로서 항상 운명적으로 불안과 죄책에 고민하는 인간만을 思推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가 말한 ‘주체성이 진리다’라는 말도 타인이나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문제의 해결을 통해 實存의 의미를 깨닫고자 한 것이다. 그는 실존을 미적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등 세 가지 단계로 나누었다.
美的 실존이란 인생을 최대한으로 향락하려고 하는 제1단계의 실존이다. 가능성과 유동성에 몸을 놓아둔다. 여자를 취하고 富를 즐기고 스릴을 맛본다. 한마디로 자유다. 허나 이때의 자유란 이미 자유가 아니다. 새로운 향수를 계속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쾌락과 향락의 노예밖에 안된다. 마침내는 좌절과 절망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서 사람들은 제2단계인 윤리적 실존에 눈을 뜨게 된다. 미적 실존이 애인을 무수히 갈아 치우며 쾌락만을 쫒는 방종가라면 윤리적 실존은 오직 한 애인만을 고수하며 그녀와 결혼하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책임을 항상 새로운 결의로써 기꺼이 걸머지는 일이다. 허나 이러한 복종의 태도는 영원치 못하다. 도덕률 앞에 충실할수록 자신의 無力만을 깨닫게 된다.
윤리란 상대적 의미다. ‘너보다 착한 나’는 있을 수 있어도 ‘절대적으로 착한 나’는 필경 존재할 수가 없다. 여기서 사람들은 제3단계인 종교적 실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미적 실존이 방종한 생활로 인생을 향수하고, 윤리적 실존이 양심을 가지고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면, 종교적 실존은 신앙을 가지고 역설적으로 살려한다. 여기서 신앙이란 ‘모순을 믿는 것’이다. 神의 가혹함이 곧 절대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고뇌와 절망을 거쳐서만 인간은 구제되고 신에 도달함으로써 그 불안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의 자유만 있을 뿐이다. 절망이 아니면 신이요, 신이 아니면 지옥인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이러한 인생3단계는 철학도를 꿈꾸던 나의 학창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산처럼 깊게 각인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작품으로 형상화해 보았다.

줄거리

이렇게 아름다운 신화적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약속”으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던 연극!

거대조직 폭력단체의 두목인 공상두와 앞날이 창창한 풋내기 여의사 채희주와의 만남, 사랑, 이별.

공상두와 채희주는 둘만의 사랑을 보배처럼 간직하며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육체를 탐하는 그런 관계가 아닌 플라토닉에 가까운 그런 사랑이다.
공상두는 한 폭력조직의 보스이다. 그는 야쿠자의 한국상륙을 원천 봉쇄 한다며 5개의 조직 보스를 죽인다. 자신의 오른팔인 엄기탁이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공상두는 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채희주의 집에 찾아간다.
공상두는 채희주에게 전후 사정을 고백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쓰고 갇혀있는 심복 엄기탁을 구하기 위해 자수를 결심한다.
이런 공상두를 떠나보내는 채희주. 채희주는 나약해지려는 공상두를 조용히 “돌아서서 떠나라”라고 하며 떠나보낸다.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는 사람은 없고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현실.
인간적 진실로 인간적인 양심선언!

이렇게 아름다운 신화적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애태우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