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2년만에 돌아온 한국현대연극의 문제작, 기국서의 〈햄릿〉!
81년부터 〈햄릿〉시리즈(1~5)를 연달아 무대에 올리며 연극계의 이단아, 천재 연출가로 불리었던 기국서가 22년 만에 햄릿의 원혼을 불러내어 다시 우리 앞에 세운다.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는 햄릿에 대한 탐구가 아닌 햄릿을 통한 시대정신의 탐구와 원작의 줄거리보다 언어의 힘으로 압도하는 무대를 통하여 한국 근현대 정치사회 현실을 담아낸 새로운 연극적 도전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연극의 원시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언어의 원시성이기도 하지만, 가장 훌륭한 연극의 재료인 인간이라는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연극이 무엇을 할 것인가, 연극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소통시킬 것인가, 햄릿이 이 시대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계속될 고민이다”

2012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초상 햄릿, 그가 이 시대에 던지는 날선 칼날!
기국서 연출이 20여 년 만에 무대로 다시 불러낸 햄릿은 정직한 노동을 하다가 어느 날 해고되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이 땅의 남자다. 햄릿은 깊은 우울증, 유령이 보이는 환각 등에 시달린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성 징후에 시달리는 햄릿을 보며 쌍용자동차 문제를, 냉동고에서 신음하는 망령들의 독백을 들으며 용산참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망령들의 독백 속에서는 현대 사회에 약자라는 이유로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과거 〈햄릿〉시리즈가 ‘대본검열’이라는 압박 속에서도 통렬한 시대정신으로 무장했듯이 이번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는 이 시대의 정치사회 모순을 직시하고 과거보다 더욱 날선 칼날을 2012년 대한민국에 들이댄다.

줄거리

기국서의 〈햄릿6_삼양동 국화 옆에서〉는
후미진 뒷골목,
우리의 기억이 멈춰버린 그곳에서
다시, 햄릿을 이야기한다.

일그러진 시대를 향한 독설.
셰익스피어를 넘나드는 말의 향연.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원시성을 회복한다.

카페가 있고 언덕길이 있으며 멀리 낭떠러지도 보이는
기괴하면서도 동화적인 풍경에서 연극이 시작된다.

이 시대의 청년, 햄릿이 진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기억해내려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매혹적이고 영롱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머릿속에 뒤엉킨 뭔가가 햄릿을 괴롭힌다.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어떨 땐 걸으면서도 꿈을 꾸고, 무엇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고 귀신이 보이기도 한다. 불쑥 친구 호레이쇼가 앞에 나타난다. 호레이쇼와 무의식에 대한 대화를 한다. 눈을 감았다 뜨니 아버지가 눈앞에 있다. 오래 전 죽은 아버지다.

아버지의 유령은 또 다른 헛것, 망령을 몰고 온다. 동학혁명의, 광주사태의, 용산참사 현장
의, 성폭행 피해자의 망령. 우리의 현대사를 훑고 지나가는 신음과 함성이 햄릿을 괴롭힌다. 햄릿은 자꾸 목덜미 뒤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어느 카페, 오필녀라 불리는 오필리어는 햄릿의 오랜 연인이며 절대적인 지지자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햄릿이 옳다는 믿음이 있다. 옆자리의 호레이쇼는 햄릿의 이상한 행동을 걱정한다. 사랑이란 예술이란 무엇일까 설을 푸는데 햄릿이 들어온다. 오필리어는 황무지 같은 현실에 염증이 난다고 햄릿에게 하소연해본다. 카페로 햄릿과 오필리어의 탈을 쓴 배우 둘이 들어와 인형극을 한다. 그것을 바라보던 햄릿은 그들의 표정 없음, 거짓 웃음에 삶의 공허, 자살충동을 느낀다. 오필리어의 독설을 뒤로 하고 햄릿을 카페를 나선다.

햄릿이 간 곳은 어느 절벽. 여기서 한 발 내딛으면 저 세상이다. 절벽에서 자살을 생각하던 햄릿은 우연히 두 명의 기관원이 시체 유기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두 기관원은 권력을 향해 과감하게 저항한 한 인사를 살해하고 실족사로 처리하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지만 여전히 권력의 암살자 노릇을 계속한다.

연극 연습실, 셰익스피어 〈햄릿〉의 배우들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대사를 외우고 있다. 그 와중에 TV에서 보았던 프로그램의 패러디를 통해 권력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하여 비판한다. 햄릿 역의 배우는 칼을 뽑아든다. 그것이 왕을 죽이기 위함인지 왕비를 죽이기 위함인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증오와 추악함 속에 질주하는 햄릿, 햄릿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하수구를 달려간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공동묘지. 무덤을 파는 인부들은 걸쭉한 음담패설을 나눈다. 뜨내기와 건달들이 어떤 무덤에 침을 뱉으며 지나간다. 호레이쇼는 무덤 주인이 누구냐 묻는다. 무덤에 묻힌, 한때 왕이었던 망자의 사연을 듣는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마치 산 자에 대한 경고, 죽은 자에 대한 조문처럼 들린다.

다시 카페 안. 호레이쇼가 마담에게 연극의 서두를 어떻게 잡을까 장황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백발의 노인네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 울리는 가운데 언덕길 너머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