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관객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판소리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소리를 만드는 무대공연이 아니라, 무대와 객석을 아우르는 하나의 판에서 소리가 어우러지는 공연이다. 판소리만들기 '자'는 한국 전통 판소리의 생명력과 판소리의 창작 원리를 무대와 객석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새로이 발견하고자 판소리 <억척가>를 제작하였다.
<억척가>는 한자어와 한문고사 대신 오늘날의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생동하기 위해 오늘의 말을 찾고자 했으며, 동서고금의 악기로 극의 다양한 상황과 관계를 표현해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복자 했다. <억척가>는 오늘날 관객의 애환을 담아낼 수 있는 오늘의 소리,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판소리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오늘날의 애환을 담아내는 판소리
판소리만들기 '자는'는 전작 <사천가>를 비롯해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다채로운 표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자 그 실험의 연장선 위에 <억척가>가 있다. <억척가>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utter Courge und ihre Kinder)>로부터 영감을 받아, 전쟁 속에서 살길을 구하는 억척스러운 사람들의 노래가 되었다. 한 명의 소리꾼과 악사들은 소리와 표정과 몸짓을 통해 전쟁의 표정을 역동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오늘을 사는 억척스러운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내고자 했다.

줄거리

전라남도 촌구석의 김순종이 꽃다운 열어섯에 시집가 허니문 베이비를 갖는다. 유교 정신을 받들어 모시는 엄격한 시댁에 갖힌 순종은 오뉴월 꽃 가슴 바람을 못 이겨 동네 앞에 그네 뛰러 갔다가 치마가 바람에 훌러덩 뒤집어져 마릴린 순종이라 소문이 나 소박을 맞는다. 아이를 안고 쫒겨난 순종이 히치하이킹으로 연변에 도착, 매력남 '제갈 아귀'를 결혼한다. 그러나 술과 마작,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참지 못해 피눈물을 머금고 연변을 떠난다. 연변을 떠나 한나라에 들어선 순종에겐 달구지가 하나 생기고 그녀는 중국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하는데 무능력하기 이를 때 없고 허구헌 날 쏜찌검이라... 하는 수 없이 김순종은 아들 둘, 딸 하나를 데리고 길을 떠나 한나라 여기저기를 떠돌게 된다. 지긋지긋한 팔자를 바꿔 보고자 이름을 김순종에서 김안나로 개명을 하고, 전쟁 통에 자식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구루마에 물건을 가득 실어 파는 전쟁상인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전쟁은 지속되는 가운데 큰 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군대에 지원하고, 둘째 아들 제갈 정직도 오나라의 회계병이 되어 어미 품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회계병으로 일하는 둘째 제갈 정직이 안나의 달구지를 찾아오는데... 회계 담당으로 금고를 지키고 있던 그가 적국의 추적을 받고 있었던 것...! 한편,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챈 적군은 안나와 아들의 몸값을 두고 흥정을 벌이는데 '2천냥이 없다면 구루마라도 내 놓으라'는 적군의 말에 안나는 구루마없이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막막하여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그 사이 적군은 아들의 목을 베고 만다. 졸지에 둘째 아들을 잃은 안나에게 적군은 정직의 목을 갖고 와 '아는 사이가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그러나 전쟁 통에 살아남아야 하는 안나는 죽은 아들을 모른 체하며 비정하게 돌아선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안나는 억척으로 이름을 바꾸고 마흔을 넘긴다. 세월이 흘러 오랜 전쟁도 휴전을 맞이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물건을 잔뜩 사들인 억척은 휴전 소식에 물건을 되팔러 읍으로 간다. 한편, 휴전이 되자 농민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평화를 짓밟은 폭력과 착취의 우두머리로 큰 아들 용팔을 지목, 그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허망하게 두 아들을 잃고 정처없이 전쟁터를 떠돌던 억척은 성안으로 물건을 떼러 가고 막내딸 추선은 성밖에서 잠을 청한다. 이때 성안을 공격하기 위한 병사들이 쳐들어오고, 벙어리인 추선은 성안에 있는 억척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 북을 치기 시작한다. 병사들은 성을 점령하기 위해 오랫동안 구상해 온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놓이자 추선에게 총을 겨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