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공연의도
일제 말 경성방송국을 배경으로 일제에 대항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계승하려했던 방송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현재의 방송인들이 찾아 그 당시 펼치지 못했던 방송의 재현과 숨겨져 있던 선각자들을 찾아내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립을 갈망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함.

연출의도
" 1945년 8월 14일! 다음 날 조국이 해방되리라고 알았던 조선인들이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 또 그 해방이 왔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해방을 맞이했던가! 누구는 그저 농삿꾼으로 해방을 맞았고, 누군 서대문 형무소에서 정치범으로, 누군 일본의 관리로, 누군 같은 조선인 잡는 일본 형사로, 누군 일본군의 장교로, 그렇게 해방을 맞았을 것이다.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조국이 해방되리라고. 이렇듯 삶은, 역사는 무정하게 흘러간다. 물론 이 작품이 그날을 배경으로 삼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다. 1943년 11월 무렵 경성방송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점은 태평양 전쟁의 말기, 일제가 한참 전쟁의 독기가 올라있을때로 경성 방송국은 전시 체제로, 그저 정치적인 선전도구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했던, 그런 시기였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두 남녀, 두 사람의 청춘이 경성방송국에서 만났다. 한 남자는 대학 졸업반으로 학병 동원에 적극 나서자고 강연을 다니던, 구로다 겐시로 - 그는 창씨 개명한 조선인 - 였고, 한 여자는 경성방송국에 재직하던 조선인 여자 아나운서였다. 그들은 소학교 동문으로 방송국에서 오랜 만에 해후하게 된다. 오영신은 당시 - 일종의 독립운동 단체였던 지하 동요극 회원으로 - 방송국 내에서 어린이 동요극을 방송하고 있을 때였고, 구로다는 학병 동원 방송을 하기 위해 방송국에 들렀던 터였다. 반가워 하는 구로다에게 오영신은 몰래 일러준다. <일본은 망할 거라고!> 구로다는 놀란다. 그리고 또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신념에 차, 학우들에게 전장에서 죽어가자고 했던 터라, 그 말은 받아 들일 수 없는 신탁과도 같았다. 그렇게 두 청춘의 신념은 정 반대를 향하는데, 거기에서 이 드라마의 비극은 드러나기에 이른다. 조국 없던 시절, 조국이 일제에 의해 유린당하던 시절, 그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며, 그 청춘들의 희비극 그 자체가 이 드라마의 주제이다. 오늘을 돌아보자. 우린 무엇에 충성하며 이리도 열심히 살고 있는가!

줄거리

라디오 방송 리포터인 이미경은 어느 날 괴 노파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자신이 일제 치하, 1943년 당시, 경성방송국에 재직했던 조선인 여자 아나운서 - 오영신이라고 밝힌 그 노파는, <해를 쏜 소년>이라는 동요극 원고 얘기를 꺼낸다. 특종이라고 직감한 이미경은 그 노파의 이야기를 따라 1943년 경성방송국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당시 경성방송국엔 두 사람의 조선인 여자 아나운서가 있었다. 오영신과 박순임. 그리고 단파 사건 이후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한국말 방송, 제2방송부장 윤일남이 있었다. 방송국 직원들이 미국의 소리, VOA 방송을 몰래 듣다 적발이 되면서 한국말 방송은 아예 폐지되어던 터였다. 당시 VOA 방송에서는 연일 패전을 거듭하는 일제의 소식을 전하면서, 조선의 독립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조선 말 방송이 폐지 되었음에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계발 선전의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학병 지원을 촉구하는 강연은 한국말로 방송이 되고 있었고, 또 하나,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극 방송이 형식상으로 남아있었다. 학병 동원의 최고 명 강연자로 인기를 날렸던 당시 대학생, 구로다 겐시로는 창씨개명한 조선인 학생이었다. 그가 어느날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을 찾았다. 오영신과 그는 소학교 동문이었다. 그들의 해후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어린 시절, 구로다 겐시로 - 본명 조민규를 짝사랑했던 그녀는 항일 의지를 동요에 담아 운동했던 지하 동요극 조직의 일원이었던 까닭이었다. 오영신은 구로다에게 단파방송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제는 패망할 거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구로다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피를 나눈 동포 형제들에게, 일본인으로 죽자며, 전장으로 나가자고 촉구했던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일제는 패망해서도 안되며, 그럴 수도 없다고 그녀를 반박한다. 오영신은 이윽고 동요극 <해를 쏜 소년>을 쓰고 발표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가뭄 든 마을에 한 소년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 화살로 해를 쏘아 떨어뜨린다는 그 얘기는 그녀의 순수 창작품이었다. 하지만 검열관 오까모도 사이꼬에게는 전래동화를 약간 수정하였을 뿐이라고 검열 석상에서 항변한다. 빨간 해는 곧 일본을 뜻하는 게 아니냐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검열관의 추궁을 막아준 건 의외로 경성방송국 이사장인 요시다 미우라였다. 그는 나이 든 홀애비로 젊고 발랄한 오영신에게 오래도록 연정을 품어 온 사내였다. 결국 그녀의 동요극은 발표되는 듯 했으나 발표를 앞두고 내부 밀고자에 의해 방송은 취소되고 그녀는 구속되기에 이른다. 그녀는 체포되며, 요시다 미우라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자신의 원고, <해를 쏜 소년>을 그 밀고자에게 전해달라고. 이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원고나마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어디선가 간직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었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 자신이 품었던 희망을, 후일,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이미경 리포터 또한 그쯤 이야기 끈을 쫓아갔을 때, 자신에게 그 얘기를 들려 준 그 노파는 오영신이 아니었단 사실을 알기에 이른다. 담당 PD의 의혹 때문에 확인해 본 주민등록 조회 결과, 그녀는 오영신이 아닌, 박순임이었다. 당시 그녀와 함께 근무했던 또 한 사람의 여자 아나운서 - 그녀가 곧 그 밀고자였던 것이다. 당시 그녀의 오빠는 경무국장 암살 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오영신의 원고 얘기를 들은 박순임은 오빠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그녀를 밀고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박순임은 해방이 되고 6,25가 막 끝났을 무렵,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경성방송국 자리에서 오영신과 다시 만나게 된다. 총독부로 끌려 간 이후, 소식이 끊겼던 오영신은,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지, 그쯤 미친 여자가 되어 그 폐허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박순임은 그제서야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오빠도 결국은 살려내지 못하였고, 암울했던 그 나라 없는 시절, 구로다, 박순임, 오영신 - 그 청춘들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경은 <해를 쏜 소년>을 방송극으로 꾸며 - 최대한 당시 분위기를 살려서는, 이윽고 오늘에 방송하기에 이른다. 그 비극적인 동요극이 비장미 넘치게 방송되고, 그 말미에 이런 멘트가 방송된다. 박순임 할머니가 오영신 할머니를 찾고 있다고. 그녀의 연락처를 아는 분은 연락 달라고. 박순임, 그녀는 죽음에 임박하여, 나라 없던 시절, 그 비극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 원고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