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술이 공존하는가?
삶과 예술은 양팔저울의 양 끝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돌아보며 균형을 유지하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당신이 위의 물음에 잠시라도 주춤거렸다면 당신 삶 속에 삶과 예술의 양팔저울은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다시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자유가 어느새 방종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쏟아지는 구속들과 앞만 내다보며 떠밀어대는 규제들이 난무하는 지금.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애써 억누른 채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다.
억눌러진 자유를 잠시라도 눈뜨게 하는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혹, 있다면 그것의 몫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 삶 속의 예술이 그 본분을 망각한 채 형식에 얽매이고 어긋난 곳을 지향하는 이상, 삶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다. 여기 ‘이옥’ 이라는 산문작가가 있다. 산문문체의 모든 형식을 이지러뜨리고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보다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실험한 사람이다.
비록 조선후기 그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잊히어져 갔지만 억눌린 삶 속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으리라.
줄거리
성균관 시험지 중에 만일 한 글자라도 패관잡기에 저촉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전편이 주옥같을지라도 빼버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여 다시는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라!”
정조 재위 16년(1792) ‘문체반정 정책’.
당시는 천주교(서학)를 둘러싼 노론과 남인의 비판 논쟁이 시작된 시기였다.
천주교 문제에 남인들이 많이 관련된 것을 파악한 정조는 남인의 단점을 청의 고증학과 패관 소품체에 심취해 있는 노론의 문제점과 대비시켰다.
정조는 명말 청초의 패관잡기가 유행하면서, 좋다, 옳다, 그르다, 못하겠다는 선비들의 분명한 자기주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을 비판하여 기성정권의 질서를 파괴하고 왕권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정조의 문체관과 왕권강화에 대한 강한 신념이 패관소품체를 격리시키고 억압하는 ‘문체반정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은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의 본보기가 되어 과거 응제 자격을 박탈하고 멀리 귀양 보내진다. 정조는 이옥의 과거 시험지를 쓰레기로 간주하여 바닥에 던져버린다.
정조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호시탐탐 노리는 왕좌에 대한 간신배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불안함.
성군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바쁜 공무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어두운 밤은 자신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런 밤이 정조에게는 길게만 느껴진다. 정조는 그 두려움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지세 운다.
그러다가 자신이 멀리 유배를 보낸 이옥의 과거시험지를 읽게 된다.
정조는 자신도 모르게 이옥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정조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
정조는 서서히 왕의 관모를 벗고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신분을 잊은 채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기도 당하고, 사랑의 설레임을 느끼며 이별의 아픔도 겪는다.
난생 처음으로 왕과 신하가 아닌, 이익을 위한 편먹기가 아닌,
신분과 신분의 결합이 아닌 순수한 만남과 사랑, 자연스러움과 소박한 웃음과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