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고통은 소리가 되고, 소리가 말이 되고, 그 말이 다시 고통을 불러온다.
고통. 살갗이 패여 나가는 아픔.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 고통은 몸에 상주하고 몸으로 발현된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고통은 결국 몸의 부분으로 드러나고, 그 몸의 부분이란 살, 뼈, 핏줄, 근육, 내장, 피부아래 작은 공간들이다.
두 개의 짧은 이야기로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를 위해, 몸을 미시적으로 사용한다. 현미경으로 몸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지체 하나하나를 가느다란 붓처럼 사용하여 표현한다. 손가락들의 미세한 표현, 눈동자들의 움직임, 입술의 떨림, 얼굴의 주름들, 어깨의 자잘한 근육들, 발가락의 각도, 어깨뼈의 윤곽들이 말을 하게 한다. 그 지체들이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삶의 깊은 부분까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줄거리

1. 고래
침묵 속에서 살던 고래가 어느 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물고기들이 나타나 고래가 내뱉은 말을 먹는다. 물고기들이 고래의 말을 먹을 때마다 고래는 살갗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게 되고, 고래는 살갗이 뜯겨져 나갈수록 몸이 점점 작아진다. 고래는 고통에 쫓겨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래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되었다. 강의 상류 어디선가 최초의 인간 ‘마누’가 고래를 구해준다. 하지만, 고래의 말을 먹고 살아온 물고기들이 배고픔의 고통에 죽어간다. 강의 신 ‘강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누’는 고래를 정성껏 보살펴준다. 세월이 흘러 고래는 다시 커다랗게 자라서는 ‘마누’를 삼키고 깊은 바다로 돌아간다.

2. 넉손이
네 개의 팔을 가지고 태어난 넉손이는 숲속에 버려져 혼자 자란다. 숲속의 온갖 생명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먹고 자란 넉손이는 어느 날 인간의 아이가 내는 고통의 소리를 듣고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사람들에게 이끌려 고아원에 들어간 넉손이는 아이들을 괴롭히며 고통의 소리를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점점 더한 고통의 소리를 원하게 된 넉손이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찾아다니게 되고, 결국 그 모든 고통의 배후에 있는 마을의 시장을 찾아간다. 시장 밑에서 일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온갖 고통을 즐기며 산다. 전염병이 돌자 전염병을 막기 위해 시장은 병에 걸린 사람들의 발목을 자르게 하고 자신의 부모 발목까지 자르게 된다. 시장의 부모는 집에 불을 지르고, 결국 시장은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시장의 고통의 소리를 마지막으로 침묵가운데 들려오는 어떤 비명을 넉손이는 듣게 된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