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인도의 젠더 전환자 공동체, 히즈라(Hijra)와
이들이 섬기는 신 바후차라마타Bahuchara Mata
성性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이 던지는 하나의 질문
'우리의 성은 남과 여, 단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가?'
히즈라들이 ‘마타(어머니)’로 섬기는 신 ‘바후차라마타’는 남성과 여성 그 가운데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히즈라들이 인도 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유지되어 온 것은 온전히 이 신의 존재 덕분이다.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히즈라들에게 사랑은 성의 구분을 뛰어 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바후차라마타>는 현대 사회가 고수하고 있는 생물학적 기준에 따른 성의 이분법적 구분과 차별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젠더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뛰다’의 관심은 지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지금은 소수자가 되어버린, 이분법의 주류세계에서 추방된 이들의 삶 역시 우리들 안의 삶 중 하나인,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외면하는 세상의 한 면을 그저 담담히 들여다보려 하는 것이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오늘의 이야기를 새로운 무대언어로
2011년부터 한국과 인도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 <바후차라마타>는 긴 공동 워크숍과 창작 레지던시 과정을 거치며 이질적인 두 문화의 충돌과 수용을 통해 한국과 인도의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아시아적 가치를 담아내고자 하는 문화상호적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이 섬기는 신 바후차라마타Bahuchara Mata
성性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이 던지는 하나의 질문
'우리의 성은 남과 여, 단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가?'
히즈라들이 ‘마타(어머니)’로 섬기는 신 ‘바후차라마타’는 남성과 여성 그 가운데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히즈라들이 인도 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유지되어 온 것은 온전히 이 신의 존재 덕분이다.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히즈라들에게 사랑은 성의 구분을 뛰어 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바후차라마타>는 현대 사회가 고수하고 있는 생물학적 기준에 따른 성의 이분법적 구분과 차별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젠더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뛰다’의 관심은 지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지금은 소수자가 되어버린, 이분법의 주류세계에서 추방된 이들의 삶 역시 우리들 안의 삶 중 하나인,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외면하는 세상의 한 면을 그저 담담히 들여다보려 하는 것이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오늘의 이야기를 새로운 무대언어로
2011년부터 한국과 인도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 <바후차라마타>는 긴 공동 워크숍과 창작 레지던시 과정을 거치며 이질적인 두 문화의 충돌과 수용을 통해 한국과 인도의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아시아적 가치를 담아내고자 하는 문화상호적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줄거리
난 여잔 아니에요. 하지만 여자에 가까워요
어떤 이야기가 있다. 그녀, 아니 그, 아니 그냥 그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 사람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사는 것이 불편했다. 보통의 남자들처럼 행동하고, 남자들처럼 옷 입는 게 좋았고, 남자들처럼 자연스럽게 여자들에게 눈길이 갔다.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여자를 사랑하게 된 자신은 분명 남자일 거라 확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그 여자는 자신을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물론 그 여자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남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당연히, 여자가 아니라면 남자여야하기에.
그런데 성전환 수술을 앞둔 어느 날, 그 사람은 남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호르몬 치료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이 낯설었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던 것이다.
그 사람은 더 큰 혼란에 빠졌고 자신을 떠나간 그 여자를 더욱 그리워했다. 그 사랑만이 자신을 다시 구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그 사람은 용감하게 그 여자를 찾아갔고, 마침내 사랑은 다시 이어졌다. 그 사람은 이제 무언가가 된다는 생각은 버렸다. 분명 여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신을 남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구분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자신을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니까.
어떤 이야기가 있다. 그녀, 아니 그, 아니 그냥 그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 사람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사는 것이 불편했다. 보통의 남자들처럼 행동하고, 남자들처럼 옷 입는 게 좋았고, 남자들처럼 자연스럽게 여자들에게 눈길이 갔다.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여자를 사랑하게 된 자신은 분명 남자일 거라 확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그 여자는 자신을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물론 그 여자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남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당연히, 여자가 아니라면 남자여야하기에.
그런데 성전환 수술을 앞둔 어느 날, 그 사람은 남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호르몬 치료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이 낯설었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던 것이다.
그 사람은 더 큰 혼란에 빠졌고 자신을 떠나간 그 여자를 더욱 그리워했다. 그 사랑만이 자신을 다시 구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그 사람은 용감하게 그 여자를 찾아갔고, 마침내 사랑은 다시 이어졌다. 그 사람은 이제 무언가가 된다는 생각은 버렸다. 분명 여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신을 남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구분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자신을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