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소설, 연극과 만난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는 2011년부터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이란 이름 아래 주목 받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 작품들을 연극 무대로 끌어오는 시도를 해왔다. 여러 해 전부터 일어났던 낭독의 붐 속에서도 이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의 실험은 소설의 낭독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일조해왔으며, ‘입체낭독’이란 말은 이제 비슷한 다른 공연에서도 쓰이는 일반명사가 되기도 했다.
세 번째로 열리는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는 한유주와 박솔뫼, 두 젊은 소설가에게 초점을 모아 그들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며, 소설 텍스트를 둘러싼 더 참신하고 풍성한 표현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소설, 동시대와 만난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에서는 각광 받는 젊은 작가 한유주와 박솔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언어의 문제와 소설 쓰기 자체의 문제에 천착하며 한국 문단에서는 희귀한 실험적 소설 쓰기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한유주, 독특한 감각과 문체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전해주고 있는 박솔뫼. 가장 동시대적이면서 동시에 미래형의 작가들이라 할 이들의 소설을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젊은 연출가들이 총동원되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무대화한다.
한유주가 탐구하는 글쓰기 자체에 대한 메타적 글쓰기는 이번 “입체낭독극장”의 무대에서 창작 자체에 대한 메타적 연극으로 치환되는 가운데 현재진행형의 언어로 살아날 것이다. 박솔뫼가 최근 다루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공포와 그 징후에 관련된 문제는 이번 공연을 통해 일련의 연작 형태로 드러나면서 2014년 봄 현재의 한국 사회, 혹은 그 미래에 대한 예술적 진단을 전할 것이다.

 

소설, 다채로운 표현과 만난다.
한때 되살아났던 낭독의 붐을 타고 이런저런 낭독공연, 낭송회 등이 열리고 있지만, 대개의 낭독과 낭송이 문학의 언어를 전하는 방식은 천편일률적이다. 문학 작품에 담긴 언어와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증폭시키는 데에만 치중하는 것이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을 단순한 방식으로 읽어주는 공연이 아니다. 가급적 소설의 문장을 고치지 않고 전달한다는 최소한의 원칙 하에서 다양한 해석과 표현이 가해질 수 있다.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문장을 출연자의 입으로 발화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전달 방식이 고안될 수도 있다. 이렇게 자유롭고 다채로운 연출을 통해 원래의 소설 텍스트는 애초에 소설가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의미, 다른 이미지, 다른 울림을 띠게 될지도 모른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에서는 소설을 홀로 자기만의 방에 들어앉아 눈으로만 읽어갈 때와는 다른 새로운 상상이 피어나고, 또 그 상상들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는 마당이 되기를 바란다.

 

소설, 새로운 담론과 창작을 만난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의 무대에는 이미 발표된 소설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이 공연을 위해 새로이 쓴 작품들도 오른다. 한유주 작가의 <한탄>, 박솔뫼 작가의 <도미의 나라>는 연출자들과의 교감 속에서 쓰여지고 수정되었으며, 이번 무대에서 처음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는 ‘문지문화원 사이’의 도움을 얻어 이런 모든 과정과 결과를 둘러싼 담론의 장을 마련했다. 공연 기간 중 작가, 연출자 외에도 평론가, 철학자 등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 무대 위의 라운드테이블”이 열릴 것이고, <인문예술잡지 F>에는 두 번에 걸쳐 이 공연을 만든 이야기와 지켜본 이야기들이 실릴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산울림소극장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이번에 이루어진 창작과 담론이 새로이 진화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각 작품의 출처

 

한유주 작
<자연사 박물관>_ 한유주 단편집 <나의 왼손은 왕, 나의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 지성사, 2011)
<한탄>_ 미발표 신작

 

박솔뫼 작
<우린 매일 오후에>_ <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2013)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_ <21세기문학>2014. 봄호
<도미의 나라>_ 미발표 신작

줄거리


공연작품 소개


 

한유주 작 <자연사 박물관>

 

작품 소개
<자연사 박물관>에서 한유주는, 서사도 묘사도 진술도 아닌, 그저 단어와 문장들로 이미 존재하는 소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를 베껴 내려가는 것으로써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속의 든 또 하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인 트리스탄과 햄릿은, 그리고 작품의 화자이며 작가인 ‘나’는, 쌓였다 허물어지고 다시 쌓였다 허물어지는 서사 속에서 죽음을 향해 표류한다.그리고 그 죽음들은 한낱 주검이 되어, 자연사(自然死) 박물관을 쌓아 올린다.

 

연출 의도
<자연사 박물관>은 작가의 소설 쓰기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작가가 다루는 소설 속 인물인 트리스탄과 햄릿의 이야기를 통해 불가항력적인 죽음과 그에 대한 파악의 불가능성, 그리고 실존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작가의 글쓰기처럼, 글을 좇아가는 듯, 좇아가지 않는 듯, 무대 위에 올려진 작가와 함께 햄릿과 트리스탄의 행보를 어지러이 쫓다 보면, 어느새 희뜩하니 세워진 죽음들이 소장된,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한유주 작 <한탄>

 

작품소개
한유주의 소설 <한탄>은 어떤 망인(亡人)에 대한 작가의 기술(記述)로부터 출발한다.
죽음을 맞이하여 그는, 정신은 온전하나 / 몸은 썩어가고 있으며, 죽기 전 관계하던 모든 것들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한 채 / 무언가를 새로이 소유할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른다.
소설의 화자이자 작가 ‘나’ 또한, 이처럼 무언가를 쓰고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한탄>의 문장들은 이러한 교착상태의 팽팽한 선을 타고, 결코 비어있지 않은 '없음'에 도달한다.


연출의도
교착은, 느슨한 정체와는 다르다. <한탄> 속 문장들이 서로 밀고 밀리며'없는 문장'에 이르듯 우리의 삶 역시 곧잘 교착에 연유하여 덜컥 멎어버리곤 한다. 마치 모든 걸 잃어버리고만 듯한 상실감에 맞닥뜨리며.
작가의 문장들을 오롯이 좇아가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무대 위 절제된 행위 가운데 전달될 문장들을 통해, 누구라도 마주쳤을 그 교착의 순간을, 그 상실의 순간을 목도할 수 있길 바란다.

 


박솔뫼 작 <우리는 매일 오후에>

 

작품소개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2012년 8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아마도) 서울 한 귀퉁이 작은 방에 살고 있는 어느 여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평온하기만 하던 8일 오후, 여자의 동거남이 강아지 절반만한 크기로 줄어든다. 다음날, 여자와 작아진 남자는 여느 날처럼 대화를 하고 섹스를 하고 간식을 나누어먹는다. 하지만 작아진 남자를 품고 산책을 나간 여자 앞엔 남자가 작아지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 나타난다. 작아졌지만 그대로인, 혹은 작아졌기 때문에 달라진 남자와의 위태로운 동거가 펼쳐진다.

 

연출의도
이 공연은 소설의 안과 밖에서 제기된 아래의 두 질문에 대한 무대화된 답변이다.
“여자의 동거남은 왜 작아졌는가 ”
“작가는 왜 고리원자력발전소 방사능유출사고라는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내었는가 ”
남자가 작아진 어제 유출사고가 폭로되었다는 우연 아닌 우연 때문에 위 두 질문은 실상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박솔뫼 작가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새끼 짐승처럼 작아졌기에 홀로 내버려둘 수 없는 남자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고민하는 여자의 내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이 공연은 현미경을 통해 책장 위 활자로 포착된 내면을 무대라는 돋보기로 거듭 증폭시킨 작업이다.

 

 

박솔뫼 작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작품 소개
‘부산 바로 옆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
이 작품은 소설가 박솔뫼가 위와 같은 독특한 설정을 배경으로 발표한 몇몇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놓인 최신작이다. 부산의 랜드마크 ‘부산타워’을 중심으로 소설 속 화자는 ‘흔들흔들’ 기발한 사유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간다.

 

연출 의도
소설 속 ‘부산타워’는 무대 위에서 하나의 은유이자 상징이 된다- ‘방사능 유출로 상처 입은 도시, 그 중심에 우뚝 솟은 백색의 드높은 타워’.
그리고 두 명의 20대 청춘 남녀가 등장해 자신의 눈앞에 솟아있는 ‘부산타워’가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더듬다가, 종내에는 발견하게 되기를!

 

 

박솔뫼 작 <도미의 나라>

 

작품 소개
<도미의 나라>는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났던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 있는 어떤 기억과 기록들을 모아놓은 듯한 작품이다.
그 날을 전후해서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도미’는 일본의 간사이 지역(나라, 고베, 오사카 등)을 여행한다. 그런 도미의 여정의 사이사이에, 거의 같은 시간 간사이로 부터 후쿠시마 사고의 수습을 위해 도쿄로 돌아가려 했던 도쿄전력 시미즈 사장의 실화가 끼어든다. 시미즈 사장은 우여곡절 끝에 사고 다음날에야 헬리콥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간다. 여행을 마친 도미는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연출 의도
박솔뫼 작가는 이번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공연을 위해 약간 짧은 분량의 단편소설이라 해야 할 이 작품 <도미의 나라>를 새로 써주었다. 그리고 그 글은 공연의 구성 상 좀 더 짧게 줄여지고 편집되었다.
그렇게 해서 극장에서 처음 독자를 만나게 된 이 글을 각기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차원에서 읽게 하고, 그것들을 모이게 하는 것으로 짧은 공연을 구성하려 한다. 사전에 녹음된 작가의 육성, 영상에 담긴 문장, 배우들에 의해 연극적으로 처리되는 발화, 극장에서 처음 글을 대하는 독자의 소리 내어 읽기 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우연과 우발, 즉흥이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달리 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