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탐욕
이 작품은 지나친 욕망이 어떻게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지에 관한 연극이다. 처음 그들이 바랐던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이다. 약혼녀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싶은 장님 제랄드, 아무도 하지 못했던 불가능한 수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닥터 하드크로프트, 답답한 시골 농장에서 벗어나 가수로 성공하고 싶은 낸시, 깜빡깜빡 잊어버리지 않고 보다 똑똑한 뇌를 갖고 싶은 간호사 수잔, 그리고 자신의 서커스 쇼에 스타가 될 공연자를 끌어들이고 싶은 링 마스터 트롬바디, 이들이 갖는 욕망은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싶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집착이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 그들은 더이상 욕망을 갖는 주체가 아니라 욕망에 의해 지배당하는 객체가 되고 만다. 탐욕은 그들을 괴물로 만들고 파멸로 이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코미디적인 감각으로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극은 주인공 마리아의 시선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마리아와 함께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고 싶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스크리밍 Screaming
이 작품에서 스크리밍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 원제인 스크리밍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서, 우리는 한국 제목을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화한 ‘아아아아아’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극은 스크리밍으로 시작해서 스크리밍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스크리밍은 극을 여는 시작에서 주인공 제랄드와 마리아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즐기는 행위로서의 외침이기도 하고, 극을 닫는 마지막에서 마리아가 괴물이 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지르는 비명이 되기도 한다.
또한 스크리밍은 장님인 제랄드가 외치는 소리를 통해 물체를 튕겨 나온 소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돌고래같이 어렴풋하지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는 외침을 통해 그의 연인 마리아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제적인 의미에서, 마리아의 스크리밍은 지나친 욕망으로 인해 괴물로 변해버린 주위 사람들, 그리고 파멸해 가는 이 세상에 대한 공포의 표현이자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리아의 비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비판적으로 돌이켜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공연 개발 과정으로서의 공연
이 텍스트는 뉴욕 컬롬비아 대학교 연극 MFA 극작과의 신작 공연 프로젝트에 의해 개발되었다. 초연은 2010년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뉴욕 샤피로 시어터에서 공연되었다. 그 때도 이 곤이 연출로 참여해, 콜롬비아 대학교 MFA 배우들과 함께 이 희곡을 실연하였다. 하지만 학교 공연이라는 제작여건 때문에 희곡의 모든 가능성이 온전히 보여질 수 있는 최종적이고 완성적인 형태로 공연될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그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한 스튜디오 작업으로 관객에게 보여졌고, 이는 작가와 연출의 성공적인 협력작업과 이후의 작품 개발을 위한 시작으로 기능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 다시 한국에서 이 작품이 완성적인 공연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를 실현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완성된 최종 공연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과정물 (Work in Process)의 형태로 공연된다.
이 텍스트는 일견 상투적이기도 하지만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는 아주 정교하고도 신체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 텍스트는 배우의 코미디적인 신체연기를 다듬고 완성시키고, 또한 관객이 쉽게 그 희곡의 내용과 주제, 그리고 배우의 연기의 완성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워크 인 프로세스는 배우들과 함께 이 희곡을 무대화하기 위한 신체적인 연기를 발전시키고, 디자이너와 함께 이 공연을 최종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형태를 찾기 위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한정된 자체 제작 예산으로 공연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대나 의상, 사운드 또 영상은 실연으로 구체화 되기보다는 컨셉을 구체화한 디자인의 형태를 찾아보고 그 일부분이 제시될 것이고, 이를 통해 관객은 이 공연의 발전 가능성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그 의의를 두는 공연은 종종 흥미로운 순간을 만들어 낸다. 배우와 함께 그리고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어내는 그 순간이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으로 지루해지고 뻔해지는 공연이 아니라 계속 그 완성된 형태로 발전되어 갈 수 있는 그런 공연의 과정을 이 워크 인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고 싶은 게 연출과 함께하는 배우, 창작진의 바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이 공연을 함께 해주는 관객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