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연극 연출을 공부할 때 수강했던 '미국 동시대 희곡'이라는 수업에서 토론 주제였던 희곡 중의 하나가 바로 데이빗 린시-아베어의 "퍼디 미어스"였다. 미국 동시대 드라마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의 희곡들을 소개하면서 왜 드라마터그 교수는 이 희곡을 선정했을까? 그 이유는 희곡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점차 드러났다.
이 희곡은 언뜻 보면 미국의 전형적인 드라마 구조와 코미디 그리고 대중문화적인 유형성을 도입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가지고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는 미술을 만들어내었듯이 이 작품 역시 연극적 전통이 만들어온 전형성과 클리쉐를 가지고 다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새로운 공연을 제시하였고, 이에 미국 연극의 젊은 관객들은 적극적인 지지와 열광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주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가 탄탄한 구성 안에서 효과적으로 맞물려있으면서도 그 희극성과 부조리한 기괴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웰메이드 드라마의 구성을 유지하고 화해의 결말까지 무리없이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비사실적일 정도로 다양한 결함을 지닌 인물들의 정서와 과거가 고유의 개성으로 충돌하면서 이야기의 진행에 탄력을 더해 줄 뿐 아니라 결말에서 제시하는 그 순간의 화해를 넘어서는 열린 결말까지도 생각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작가 데이빗 린시 어베어는 연극과 영화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미국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이다. 그의 희곡은 강한 예술성과 실험성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안에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을 지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에 속한다. 그는 미국의 가장 가난한 계층에서 자라다가 우연히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 입학하는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양극적인 두 세계에 대한 강한 차이를 느꼈고, 이러한 경험을 희곡에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희곡 안에는 엘리트적인 연극 문화와 대중적인 공연, 영상 문화의 요소들이 함께 담겨있다. 그는 앤디 워홀이나 로버트 라우센버그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처럼 대중적인 문화나 취향들이 엘리트적인 연극 문화와 만나 새로운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창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퍼디미어스>는 데이빗 린시 어베어의 첫 성공작으로 그의 초기작답게 그가 영향을 받은 선배 작가들 그리고 대중문화들의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만나 기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너무 진부한 상업적인 코미디로 빠지지도 않았고, 순수하고 어려운 연극적인 전통만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느낄 수 있었고, 이에 당대 미국의 연극계, 그리고 관객은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비록 번역극이지만 이 희곡을 통해 관객들이 기존의 형식, 취향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감수성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극을 만들어내는 작가나 연출가, 배우들도 우리가 가진 연극적인 전통과 대중문화적인 요소들을 융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극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줄거리

“누가 제발 나한테 조금이라도 사실을 이야기해 줄 순 없어!!!”
기억을 잃어버린 클레어가 오늘 하루 잊어버린 과거를 찾아 집을 나섭니다. 오빠(?)를 따라서…
클레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 리처드와 엄마를 기억하는 아들 케니는 클레어를 찾아 나서고…
해가 저물 때까지 기억해야만 해!
내가 누군지, 저 사람이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그 때 누군가 말해 줍니다.
“괜찮아, 어떤 일은 잊혀진 채로 두는 게 더 좋아.”
클레어의 우당탕탕 기억 소동극, <퍼디미어스>!

캐릭터

클레어 |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함. 그렇지만 지나칠 정도로 밝고 긍정적인 사람.
“다른 일은 완전히 잊어버려 놓고 그 불쌍한 늙은 개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니 웃기지 않아?”

리처드 | 클레어가 기억하지 못하는 클레어의 남편. 좋은 직장과 좋은 가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한다.
“나 좋은 사람이라구요. 나 아는 사람들을 다 날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요.”

케니 | 클레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 욕을 하고 대마초를 피우면서 반항한다.
“내가 레이저 눈이면 당장 엄마를 찾아낼 수 있는데. 엄마, 엄만 좋은 엄마야.”

저는 남자 | 한쪽 귀가 안 들리고 한쪽 눈이 보이질 않고 한쪽 다리를 저는 남자. 말해 줄 수 없는 이유로 클레어를 데리고 도망가려 하고 말해줄 수 없는 이유로 베이컨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클레어, 정말 기억 안 나? 괜찮아. 안 나는 게 더 나아. 어떤 일은 잊어버린 채로 두는 게 더 좋아.”

거티 | 클레어의 엄마.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말해주고 싶어하지만 뇌졸중으로 제대로 된 단어를 말할 수 없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지난 일을 이야기한다. 계속 끊임없이!
“클레이, 잔이 린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 클레이.”

밀레(힝키빙키) | 유일한 친구 힝키빙키를 항상 데리고 저는 남자를 따라다닌다. 힝키빙키의 가벼운 입 때문에 항상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언젠가는 동물원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난 진짜 지하실이 싫어. 그리고 난 진짜 입이 가벼벼벼벼벼볍거어어어어어드은!“

하이디 | 남자 운이 없는 씩씩한 여자. 사랑한 남자들은 항상 사고뭉치였고 썩은 사과였지만 절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다시 한 번 인생을 걸어 남자를 택하고 그 댓가를 받는다.
“내 남편들은 썩은 사과가 아니었어. 다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서 내가 끌린 건 절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