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몹시 추운 밤, 옷깃을 여미지 못한 채, 잔뜩 움츠린 어깨와 떨리는 손, 구부정한 자세로 사력을 다해 걸은 적이 있다. 어딘가로 향했거나 무사히 도착했거나의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느지막한 가을이었고, 사내는 적당히 겁을 먹었고 주위는 굉장히 캄캄했다. 뒤를 돌아보면서 몇 번 망설였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잡아주길 바라면서 막연히 발길을 재촉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불현 듯이 망설이고 비틀거렸던 단상들이 한데 모여 아득한 청춘의 발자취 따위로 남지 않을까 한다.

본 공연은 사건의 테두리 밖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인물에게 밀도 있게 접근하여 극을 끌고 가는 심리묘사와 인문 간의 관계 균열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본인 욕망에 충실한 이들의 노골적인 행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되 조금 더 간헐적인 시선으로 이해와 공감을 돕고자 한다.

줄거리

누가 규복이를 죽였을까

규복, 동로, 탁희, 해주는 중학교 동창으로 15년지기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모여 규복의 여자친구 세랑의 생일 이벤트를 돕던 친구들은 규복이한테 장난을 치는데 그 바람에 규복이는 머리를 다치고 수술을 받는 지경이 된다. 병원비 견적을 뽑으니 1200만원. 이틀이 지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규복이 때문에 불안하면서 싸우기 시작하는 세 친구는 의리라는 명분으로 각자 돈을 구한다. 하지만 해주는 계속 규복의 여자친구 세랑을 만나고, 동로는 이전에 규복에게 빌렸던 돈 800만원을 안 갚아도 되나 안심을 하고, 탁희는 과거에 앙금이 남았던 규복이가 불행해진 것에 묘한 승리감을 느낀다. 누구보다 절친했지만 누구보다 얄팍했던 그들... 쓰러진 친구의 안위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은 이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캐릭터

함동로 | 30
중고차 딜러. 세일즈맨답게 허풍은 잘 떠는데 실속은 없음.분위기메이커. 마초 스타일. 열혈 욱하는 기분파. 규복이에게 800가량 채무가 있음

선해주 | 30
동시녹음 서브 기사. 우유부단. 농담 잘 하고 유쾌함. 규복이 여자친구와 바람 피는 중. 친구들한테도 염증 잘 느낌. 군중 속에 고독.

마탁희 | 30
초등학교 특수체육보조교사. 어쭙잖은 농담 전문. 삼수로 사회체육과 간 이후로 선생 한번 해보겠단 의지로 친구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석사 땀.

최세랑 | 29
외화수입 제작본부 대리. 할 말 잘 하고, 직설적인 편. 해주와 썸타던 중 해주가 남자를 소개시켜줘서 빡쳐서 사귄 것이 이규복.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