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1983년, 실험극장 초연 당시 최장기 공연과 최다 관객 동원의 신화를 남긴 연극 <신의 아그네스>. 당시 아그네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배우 윤석화가 ‘닥터 리빙스턴’으로 돌아왔다. 초연 당시부터 ‘아그네스’ 역 보다 ‘닥터 리빙스턴’ 역할을 꿈꾸었던 윤석화의 오랜 바람이 25년 만에 이루어지게 된 것. 작품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있어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윤석화의 닥터 리빙스턴을 만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12월 6일부터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무대에 오른다.
<신의 아그네스>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 원작의 특성상 연출가의 해석과 표현에 따라 매번 다른 색깔의 무대를 선보여온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 <고스트 맘마> <하루> <싸움>과 드라마 <연애시대>를 통해 탁월한 작품분석과 심리묘사를 선보인 바 있는 영화감독 한지승이 처음으로 연극 연출을 맡아 연극계와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1982년 브로드웨이에서 폭발적인 인기 속에 롱런하고, 1985년에는 작가 존 필미어가 각색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신의 아그네스>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갓 낳은 아기를 목 졸라 죽인 수녀’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믿음을 둘러싼 진지한 질문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성서’ ‘여자들의 에쿠우스’라고도 불리는 작품. 주인공 아그네스와 그녀를 둘러싼 두 여인의 변화를 통해 <신의 아그네스>는 이 시대의 기적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기적이란 신과의 관계가 관계가 아닌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닥터 리빙스턴’ 역을 연기할 윤석화는 2년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습에 전념하면서 작품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연극 100주년을 맞은 2008년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공연에는 원장수녀역에 한복희(한상미), 아그네스역에 전미도와 박혜정이 함께 출연한다.
(아그네스(Agnes)의 사전적 의미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순결(chaste), 신성함 (holy)이다. 동정과 순종의 성녀 아그네스는 예로부터 신의 어린양(Agnus Dei)와 동일시 되면서 ‘죄 없는 희생’ ‘아름다운 희생’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줄거리

수녀가 아이를 낳아 탯줄로 목을 졸라 휴지통에 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수녀의 이름은 아그네스이고 수녀원에 들어온 지 4년이 된 21살의 처녀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세 여인의 이야기이다.
알코올중독자인 방탕한 어머니 밑에서 기형적인 과잉보호로 살아온 아그네스. 여동생이 수녀원에서 죽은 이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닥터 리빙스턴. 그리고 신의 기적을 그리워하는 원장수녀 미리암. 아그네스의 법정 정신과 의사인 닥터 리빙스턴이 사건 발생 당시 아그네스의 정신상태가 정상이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닥터 리빙스턴과 원장수녀, 아그네스가 만나면서 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이러한 미궁 속에 실제로 일어난 과학적 사실에만 관심을 갖는 닥터 리빙스턴과 신앙에 관련된 믿음과 기적을 주장하는 미리엄 원장수녀의 대립은 점점 깊어가고, 당사자인 아그네스의 결벽에 가까운 순수함은 사건에 대한 의문을 더욱더 가중시킨다. 결국, 닥터 리빙스턴은 최면요법까지 동원해 진실을 밝히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쏟아져 나온 아그네스의 고백은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실제 아기를 누가 죽였냐에 관심을 기울였던 모두에게 경악과 충격, 그리고 믿음과 기적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그네스가 남겨 놓은 진실 앞에 닥터 리빙스턴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무대는 막을 내린다.
“저는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그녀가 축복받았으리라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그녀가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제게 그 무엇…… 그녀의 일부분을 남기고 갔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것이 기적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