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전통음악과 연극과의 만남, 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참신한 공연을 선보이던 단체, 정가악회의 ‘작곡가와의 만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겨울하늘 기러기 날 듯>이 오는 11월 21일 종로 부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 김정희와의 작업으로, 그 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북한민요의 재창조 과정이다. 정가악회는 2000년에 창단된 젊은 국악인들의 모임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집중육성단체에 선정되어 전통음악의 다양한 맛을 보여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작곡과 연주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작곡가와의 만남 WITH>
정가악회는 지난해 <절대고독으로의 비상 - 정가악회 wlth 윤혜진>을 첫 걸음으로 작곡가와의 만남 시리즈를 만들어왔다. ‘작곡가와의 만남’은 는 작곡과 연주가 분리된 서양음악적 사고를 넘어서, 작곡가와 연주자의 소통을 통해 창작음악을 만들어간다. 정가악회는 연주자지만, 음악이라는 현장에 기능인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국악 본래의 속성인 연주자의 창작자율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단체이다. 서로 다른 자리이지만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작곡가 김정희과 정가악회와의 만남은 서로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는 행복한 만남이요, 국악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만남이다.

북한민요의 재창조, 겨울하늘 기러기 날 듯
작곡가 김정희는 북한지역의 민요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주 소재가 된 것은 서도 지역의 ‘논매는 소리’. 소소한 농사일이 잘 표현되어 있는 원곡의 가사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에 빗대어,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일을 하는 농부들을 표현하고 있다. ‘논매는 소리’뿐 아니라 ‘논둑 가래질 소리’ 등이 창작곡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서도지역의 선율을 중심으로 만든 피리산조가락도 선보인다.

줄거리

1. 기러기 날 듯
2. 서도피리산조 - 아용소리
3. 석양에 해는 재를 넘고
4. 떼 한 장에 벼 닷 말
5. 서도 시나위

- 기러기 날듯
어이야라 에헤엘싸 방애로다
이 논에는 물채가 좋아
일천 기러기 날아가는 듯이
이 곡의 주제인 황북 은파군 례로리 “논매는소리”의 가사이다. 논매는 농부들의 모습이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모진 눈보라에도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겨울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때로는 뒤얽히기도 하고 뒤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함께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그 아름다운 생명력을 담고 싶었다.

- 석양에 해는 재를 넘고
석양에 해는 재를 넘구요
일할 걸 보재는 하고도 많다
에이공 헤이공 성화로다
이 곡의 주제인 평남 평원군 덕포리 “후치질소리-메나리”(잦은소리)의 가사이다. ‘후치질’은 소에 쟁기와 비슷한 ‘후치’를 달아 잡초가 돋은 밭고랑을 갈아엎어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해가 뉘엿뉘엿 재를 넘을 무렵까지 후치질을 하는 농부의 모습이 한 폭의 풍속화처럼 그려진다. 그 힘든 일과 삶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은 평화로움을 떠오르게 한다. 농부가 다른 걱정 없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평화일 것이다. 그런 평화를 담고 싶었다.

- 떼 한 장에 벼 닷 말
에히영 가래야
한 밥 두 밥에 동넘어간다
둑 깊은 논에 떼미질하세
떼 한 장 썩으면 벼가 닷 말씩 될세
이 곡의 주제인 황남 삼천군 달천리 “논둑가래질소리”의 가사이다. ‘떼’는 ‘흙과 함께 뿌리째 떠낸 잔디’를 말한다. ‘떼미질’은 떼가 덮인 논둑을 절반쯤 가래로 떠내고 다시 반듯하게 만드는 일이다. 논둑가래질은 논에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둑을 다듬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논둑에 있던 떼가 흙에 묻혀 썩어서 거름이 되기도 했다. 떼 한 장이 썩어 벼 닷 말이 된다니, 밑거름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겠다. 우리음악에도 이 같은 밑거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썩어 밑거름이 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 서도 피리 산조(아용 소리)
남도에 시나위요, 서도에 삼현육각이다. 남도에 대금이요, 서도에 피리다. 남도에 육자배기요, 서도에는 수심가다. 삼현육각에 쓰이는 장단은 도드리 ? 굿거리 ? 타령이다. 이 장단들에 수심가조의 황해도 “김매는 소리”를 얹어보았다. 각 장단은 중단 없이 한 호흡으로 어느 샌가 넘어갈 것이다. 남도에 산조가 있으나 서도에 그 같은 독주곡이 없어 아쉬웠다. 독주곡, 더욱이 피리 독주곡을 쓰기 위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모든 편성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독주요, 모든 악기 중 가장 음역이 좁고 까다로운 것이 피리이기 때문이다. 북한민요를 연구하게 된 것도, 나의 첫 독주곡을 이토록 어렵게 설정하게 된 것도, 공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삼현육각의 장단과 수심가조와 피리의 천생연분이 잘 살아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