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서강대학교와 함께 창설되어 55년의 전통을 이어 온 ‘서강연극회’가 100번째 정기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대학교에 막 입학한 15학번부터 70학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서강대학교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여 앙상블을 이룬다.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 ‘연극’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공연을 준비했다.

<아트>, <썸걸즈>, <그와 그녀의 목요일>, 최근 <리타>까지 많은 작품을 직접 각색/번안하며 섬세한 심리묘사와 재기발랄한 감각을 보여준 연출가 황재헌. 서강연극회 출신 연출가로서 대학로의 블루칩으로 평가 받고 있는 그가 1860년 제정 말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일제 해방 이후 1948년의 대한민국으로 옮겨오는 과감한 각색을 통해 관객의 깊은 공감을 끌어내고자 한다. 광복 후 미국 문물이 밀려들어오던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쿠라 가든>에 등장하는 늙은 하인 태목은 이렇게 말한다.
“바뀐 줄 알았는데 그대로고.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다 바뀌었어…”

무너진 가치와 새로운 가치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놓지 않고 온전히 살아냈던 시정리 사람들, 벚꽃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웠던 그들의 시간이 되살아난다.

줄거리

명희는 미국에서 수년 만에 사쿠라 가든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아들이 강에 빠져 죽자 미국으로 도망 하다시피 떠난 후 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다. 돌아온 명희의 앞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사쿠라 가든을 잃을 수 있는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옛날 명희 가문 소작농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꽤 잘 나가는 사업가가 된 석만은 명희와 그 가족들을 염려하여 벚꽃나무를 잘라버리고 과수원을 별장지로 조성하자고 설득하지만, 가족 누구도 그 계획을 귀담아듣지 않는데…

시간이 멈춘 동네, 시정리.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마찬가지로 급격하게 변하는 시간은 때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멈춘 동네 시정리는 해방 직후 격동의 시대상을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시정리 사람들은 각각의 계급과 세계를 반영하며 저마다 풍부한 사연을 품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일상의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독백처럼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고, 어긋난 대화 사이 사이에는 침묵의 순간이 끼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