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 기시다 희곡상에 빛나는 마쓰다 마사다카의 은은한 LOVE STORY!
  - 조용히 스며드는 일상의 아름다움
기시다 희곡상 심사위원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은 <海と日傘 (바다와 양산)>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풍경 속에 깊은 감동을 녹여낸 작품이다. 서구식 리얼리즘과는 달리 동양적 리얼리즘의 표준을 제시한 이 작품은, 정갈한 무대 위에서 ‘하는 듯 마는 듯한 연기’ 로 새로운 사실주의를 선보인다. 그리하여 잔잔한 흐름 속에 베어있는 짙은 정서로 스며드는 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지극히 조용하고 일상적인 흐름 위에 관객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함께 숨쉬며 그들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관객과 배우, 무대와 일상의 차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일체의 인위적인 고안을 배제한 연극,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둔 것 같은 희곡. 하지만 그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바다와 양산>은 텍스트, 즉 문자에 충실함과 동시에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안보여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 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줄 것이다.
■ 연극계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최고의 앙상블
- 성숙한 연극, 성숙한 연기
   <바다와 양산>은 일본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의 일상을 조용히 그려낸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일본 원작에 충실하면서 ‘부산’ 이라는 배경과 경상도 사투리를 적절히 첨가해 한국적 정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각색하였다. 또한, 보다 성숙한 연극을 표방하여 성인들이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작품을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배우에게서 그 절정을 이룬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극계 실력파 배우, 예수정, 남명렬, 박지일을 비롯하여 다양한 연극에서 활동해온 여러 조연들은 캐스팅에서부터 연극계의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식 일상을 한국화한 <바다와 양산> 속에서 한국 연극계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최고의 앙상블이 기대해본다.

줄거리

부산 근교의 작은 읍. 준모와 정숙 부부가 마당이 있는 작은 별채에 세들어 살고 있다. 준모는 소설가이자 고등학교 교사이고, 정숙은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하루하루 녹록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던 중, 정숙이 공원에 양산을 두고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숙을 대신해 준모가 양산을 찾으러 간 사이, 정숙이 쓰러지고 왕진 온 의사는 정숙의 생명이 삼 개월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유감스럽게도 이 날 준모는 교사라는 직분마저 잃었다. 그리고, 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풍마저 호되게 불어댄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잡지사 편집부의 경수가 방문해 물받이를 수리한다. 정숙은 여전히 방에 누워있다. 이 때, 마음씨 좋고 순박한 주인집 부부가 준모에게 마을 운동회에 참가해 줄 것을 부탁하러 찾아오고 준모는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결국 운동회에 참가한 준모는 발에 물집까지 잡혀 온다. 발에 약을 바르고 있는데 경수가 찾아와 출판사 여직원 영신이 출판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고를 받으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경수의 말을 통해 영신과 준모가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녁 무렵에는 간호사가 정숙의 약을 가지고 방문해 의사 선생님이 짧은 여행을 허락했다고 전해준다.
드디어 바다에 가는 날 아침. 정숙은 외출 준비로 분주하다.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예전에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핸드백을 꺼내며 잔뜩 들떠있다. 그 때 밖에서 영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외출준비를 멈추고 세 사람은 둘러앉아 차를 마신다. 갑자기 정숙이 찻잔을 엎지르고, 세사람 사이에는 오랜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준모가 탁자를 닦으려는데, 정숙이 힘껏 잡아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놓는다. 그것을 본 영신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도망치듯 뛰쳐나간다. 영신을 뒤따라갔던 준모가 돌아와보니 정숙이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집 앞 마당에 서서 지금 무지개 속에 있다고 말하지만 준모의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정숙은 자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결국, 두 사람은 차 시간을 놓쳐 바다에 가지 못했다.
이듬해 정월, 장례식 날. 화장터에서 아내의 영정을 들고 준모가 들어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간다. 홀로 남은 준모. 상을 펴고 밥을 먹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준모, 무심코 아내가 있던 쪽을 보고 말한다.  이봐, 눈 온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할 리 없고 준모는 다시 후루룩 거리며 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