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애인 있어요" 이은미


여장부, 무대 위의 잔다르크, 강인녀, 무대 위의 카리스마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여가수, 이은미. ‘20주년 기념 콘서트’ 일환으로 70개 도시를 전국투어 중인 ‘맨발의 디바’에게 데뷔 20주년의 감회에 대해 물었다.
“이 일이 미치게 좋아요. 전 대한민국, 세계인구의 0.1%에 속할 거에요. 꿈꿨던 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먹고 살고 있으니까.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하면서 새삼 깨닫고 있어요. ‘아 이 일이 내 운명이구나’ 하는. 지금은 좋아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선 것 같아요." ‘조인성, ‘공유’를 이상형으로 손꼽는 ‘천상여자’의 뒷모습을 가진 이은미의 이야기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공연형, 라이브형 가수’로 우뚝 선 이은미를 만든 건 팔 할의 오지랖이었다. 앨범제작과 관련된 세세한 사항은 물론이고 공연장 선정, 공연이 끝난 후 세션들의 악기정리까지 점검하는 이은미의 태평양처럼 드넓은 꼼꼼함, 거기에 더해진 부단한 노력이 오늘의 이은미를 만들었다.

“리허설이 시작되면서부터 스탭들을 못살게 굴어요. 공연 당일에는 리허설과 공연시간 2시간 30분을 포함해서 적으면 8시간, 많으면 10시간 동안 꼬박 노래만 불러요. 그러고 나면 공연 다음날은 하루 꼼짝 않고 집에 누워있어야 해요. 그래야 제 컨디션을 되찾거든요. 이번 투어를 시작하면서, 6개월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는 시스템으로 살고 있는데. 피로가 많이 쌓인 걸 느껴요. 예전에는 몸이 회복되는 속도가 빨라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느려지네요(웃음).”

대형공연장 중심의 무대를 비판하고, '문화예술회관 투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공연형 가수 이은미의 ‘문화혁명’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부산에서 시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안문화예술회관 담당자가 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어요. 700석 규모의 작은 문화예술회관인데, 이은미씨가 꼭 공연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를 보고 제가 스탭들의 목을 졸랐죠. “이건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꼭 가자”고 해서 모든 스탭들이 개런티를 낮춰서 그 공연을 하게 됐어요. 출입문을 열고 공연을 해야 될 만큼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 오신 걸 보면서 지방의 소도시 주민들이 가수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체감했죠. 그리고 지방의 이런 공연장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조사해봤더니, 140개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좋은 시설을 갖춘 문화예술회관들이 대부분 과시용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 무대를 활용하면 침체되어 있는 대중음악 공연계도 좋아지고, 문화예술회관도 활성화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개런티를 3분의 1 수준으로 깎고, 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한 공연을 시작하게 된 거죠.”

단일 타이틀 공연으로 최장기 공연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은미의 ‘소리 위를 걷다’ 전국 투어는 2010년 까지 총 70개 도시의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말이 쉬어서 70개 투어 공연이지, 42.195를 달린 ‘맨발의 기봉이’를 누른 이은미의 ‘맨발의 투혼’이 전국을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 대해 계약하면서 강조한 부분이 “극장 형태를 갖춘 곳이 아니면 콘서트 안 하겠다”는 거였어요. 극장이 없는 곳이나 공연을 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작은 공연장을 갖춘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체육관이나 회의실을 사용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전부 극장, 문화예술회관을 활용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참 힘들어요. 공연 관계자들은 다들 수긍하겠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4000석 이하의 극장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와요. 이 일이 가능했던 건, 기획사 사장님도 이해해줬고, 우리 스탭들이 절 믿고 개런티를 낮춰줬기 때문이고, 저 또한 그 부분은 희생했기 때문이죠. 스탭들에게도, 저 스스로에게도 참 고마운 일이에요(웃음).”

단독 공연 횟수로만 이미 700회 이상의 무대 경험을 가진 그녀는 공연과 관련된 쓰고 단 수십 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은미는 최고의 공연에 대한 기억은 바로 그 순간에 지워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에는 이 부분을 더 잘해야겠다”는 채찍질로 다음 공연에 대한 준비자세로 들어간다.

“짜릿한 순간, 좋은 기억들은 바로 지워버려요. ‘최고의 기억이었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다음 공연에서는 그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잖아요. 저는 제 목소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새로운 느낌을 던져줘야 하는 프로 보컬리스트 이기 때문에 한정적인 감정에 얽매이기 싫어요.”


강산이 두 번 변한 20주년을 맞이한 감회 역시 프로가수, 이은미 스럽다.
“무덤덤해요. 가수로 산 지난 20년이 순탄하거나, 무난하진 않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냥 똑같거든요. 1집 때나, 신촌블루스를 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요. 녹음하고, 공연하고, 방송 몇 개 하고, 인터뷰 하고. 이 반복된 생활이 20년 넘게 반복되고 있잖아요. 그래도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하면서 ‘아, 이 일이 내 운명이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기는 해요. 요즘 제 공연장은 참 재미있어요. ‘애인 있어요’ 덕분에 관객층의 스펙트럼이 확실히 넓어졌거든요. 절 신인가수로 알고 있는 10대들도 많아요. “어이구, 늦게 데뷔하셨네요?”라는 리플도 본 적 있고(웃음). 기분 좋은 일이에요.”

맨발의 디바, 모공이 쪼그라드는 감동!
이은미를 수식하는 대표 단어는 역시 맨발이다. 방송 프로그램에 맨발로 출연했다가 담당 피디가 감봉 받은 사연은 둘째 치고라도, ‘이은미=맨발’의 공식 자체가 지겨워서 일부러 신발을 신고 무대에 오른 적도 많았다. 노래를 하는데 발만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 몸의 모공이 쪼그라드는 쫄깃한 감동” 이라는 말로 ‘맨발의 디바’라는 수식어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제가 무대에서 신발을 벗거나, 신발을 챙겨서 무대에서 내려오면 관객 분들이 박수를 쳐주세요. 아마, 신발을 벗고 박수 받는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거에요. ‘맨발’에 대한 공식이 저를 압박해올 때쯤, “와~”하는 환호성을 보내는 관객들을 보면서 이게 얼마나 소중한 별명인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는 사실의 대단함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었어요. 가수 이은미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죠.” 

그녀는 인터뷰 내내 자신은 ‘연예인’이 아닌 ‘음악인’, ‘프로 보컬리스트’로의 이은미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연예인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이고, 가장 잘못 한 일 또한 ‘연예인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싫은 것도 못 감추고, 좋은 것도 못 감춰요. 술집에서 술을 먹는데 누가 “야, 이은미다!” 이러면 “내가 네 친구냐? 어따 대고 반말이야!” 이렇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젊었을 땐 사고도 많이 치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제 음악을 몇 명에게라도 더 알려보자고 억지웃음으로 방송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애초부터 알았기 때문에, 연예인으로 살 시간이 없었어요. 포장마차에 간 적이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 손님이 “이은미는 쌩얼이 자신 있다는 얘기야?” 라고 제가 다 들릴 정도로 말하는 거에요. 가수가 맨 얼굴로 돌아다니는 게 놀라웠나 봐요. 그래서 제가 눈을 마주쳐서 ‘씨익’ 하고 웃어줬죠. 다행스럽게도 옆에 계신 분이 절 대변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아니지. 연예인이 아니라는 거지” 라면서. ‘아,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어요. 제가 연예인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특별한 팬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 무릎만 닿으면 모든 걸 꿰뚫어본다는 예능프로그램에 나간 그녀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아(웃음). 제 처음이자 마지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될 거에요. 예전에는 아침프로, 토크쇼에서 섭외전화가 많이 왔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나가서 제 인생의 짠했던 이야기, 사랑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얘기들은 제 음악에 다 녹아있는데. 친한 (김)창렬이나 (정)준하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라고 몇 번씩 권유한 적도 있죠. 준하는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이기도 하지만, 제가 그런 걸 안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굉장히 두려움에 떨면서 이야기해요. 이러다가 누나한테 맞는 거 아닌가, 무릎 꿇고 세 시간 동안 설교 듣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면서(웃음).”

프로 보컬리스트 이은미가 20년 넘게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있다. 반복되는 무대 위에서 새롭게 선보여야 할 무엇을 향한 ‘새로운 채움’이다.

“매번 앨범을 낼 때 마다 힘들어요. 새로운 걸 채워 넣으려는데 뭔가에 부딪힌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 재능은 왜 여기까지 일까?’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연주를 잘하는 친구, 편곡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샘도 내고 그래요. 앨범을 낼 때마다 괴롭고, 부족함을 느껴요. 20년 동안 같은 목소리를 들어온 분들에게 다른 새로운 걸 선보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투어 공연중인 요즘도 ‘무엇을 채워서 녹여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도시, 새로운 관객 앞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불러요’라는 감정으로 불러야 하니까 그게 참 어려워요.”

이은미가 목숨 거는 두 가지는 ‘라이브’ 그리고 ‘사람’이다.
“사람, 특히 밴드 식구들에게 목숨 걸어요. 10년 넘게 같이 활동한 멤버는 그냥 친구 같아요. 같이 일했던 사운드 엔지니어 중에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안 한다! 내가 이은미의 이응만 들어도, 아주 그냥! 퉤퉤”하고 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친구도 있어요. 지금은 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동료가 됐지만(웃음). 신입 스탭이 들어오면 엔지니어 친구들이 “예전에는 지금 이 실수면, 누나가 벌써 슬리퍼 집어 던졌는데. 누나 성격 좋아진 걸 다행으로 알아!” 이렇게 얘기해요. 잔소리도 많고, 이것저것 따져대지만, 제가 목숨 걸고 있는, 고마운 존재들이죠.”


‘대장부’, ‘무대 위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그녀는 낯가림도 심하고 수줍음도 많다.
“후배들이 인사를 와도 살가운 말을 잘 못해요.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장난치면서 뒤통수도 때리고, 욕도 하는 성격인데 몇 십 년 아래 후배라고 해도 첫만남에서는 깍듯하게 대하거든요. 그런데 이걸 ‘이은미 선배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아닌데. 저는 몇 번 눈인사도 하고, 친해져야 말도 주고 받는데 후배들이 그걸 잘 못 넘기더라고요(웃음).”

강인한 이미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지 않냐고 묻자 “오해는 아닌 것 같다”며 호탕한 잔다르크형 웃음을 내뱉는다.
“예전에는 억울했어요. “내가 뭐가 독하다는 거야” 이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저 정말 독해요. 이 일이 굉장히 외로운 일이거든요. 특히 솔리스트는 더 그래요.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하고, 판단하고. 물론 기획사에서 모든 걸 다 해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 처음부터 모든 걸 제가 컨트롤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저 혼자 극복하고, 버텨내야 했거든요.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많았어요. 그 시간들을 넘어온 걸 보면, 제가 독하긴 독한 것 같아요.”

화려한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와 함성에서 벗어나면 홀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더 많은 이은미다.

“보컬리스트는 몸이 악기인 사람이잖아요. 뭉뚱이를 소중하게 다뤄야 하니까, 하루 일과 대부분이 녹음을 하기 위한, 무대에 서기 위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요. 술을 먹고 와서도 운동을 할 시간이 없으면 새벽 2시에 자전거를 타고 윗몸 일으키기를 해요. 가끔은 ‘이게 무슨 팔자냐, 이 시간에 내가 왜 혼자 이 지랄을 하고 살아야 해?’라는 생각에 서러움이 복받쳐서 운 적도 많아요. 가끔 “이은미씨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개인의 희생이 크다는 걸 꼭 말해줘요. TV에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고 해도,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은 대중들의 사랑, 권력과 자신을 맞바꾸는 거거든요. 전 그걸 권력이라고 말하는데…. 참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노래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치도록 이 일이 좋기 때문에.
“미치게 좋아요. 전 대한민국, 세계인구의 0.1%에 속할 거에요. 꿈꿨던 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먹고 살고 있으니까.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하면서 새삼 깨닫고 있어요. ‘아 이 일이 내 운명이구나’ 하는. 지금은 좋아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섰어요. 일주일 만에 똑같은 노래를 새로운 기분으로 불러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지만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토해내고, 새로운 걸 채워 넣어요. 이 미친 짓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아요. 이게 운명인 것 같아요.”

애인 있어요?
‘애인 있어요’, ‘ 어떤 그리움’,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는 이은미의 인생에 사랑은 필수 교과목 아닐까?
“그래서 요즘 가사를 못 쓰고, 곡을 못 만들고 있잖아요(웃음). 사랑 해야 하는데, 진짜. 누구나 꿈꾸는 게 사랑이잖아요.”

남자 보는 눈이 높을 것 같다는 질문에 뒤에 앉아있던 코디네이터의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높을 거에요, 아마. 일단, 저는 자기 분야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매력을 느껴요. 제가 올 해 초에, 새 앨범을 내자마자 국군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공유씨를 보려고(웃음). 프로그램 작가 분이 공유씨가 저를 좋아한다고, 꼭 나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공유씨가 진행하는 국군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직접 봤어요. 쟤들(코디)만 사진 찍고 신났었죠, 뭐. 저는 그냥 ‘참, 뉘집 자식인지 잘났다’ 그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아, 저 조인성씨 보고 싶어요. 박해일씨도 멋지고, 황정민씨도 멋있고. 그런데 박해일씨는 살짝 마음에 안 들어요. 키가 좀 작아서(웃음). 일단 체격이 크고, 키도 커야 해요. 아, 저 정말 눈 높네요.”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왕자님보다, 버스를 타고 공연장으로 오는 관객들이 더 기다려진다는 가수 이은미의 남은 꿈은 가식 없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되는 것이다.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모든 무대가 소중하고 감사해요. 매 공연 때마다 다른 감정들을 섞이려고 하지 않고 ‘나는 이 일을 해온 사람이니까’라는 의식 없이 무대에 오르려고 해요. 담백한 음악을 부르고 싶어요. 같은 노래를 몇 만 번 부르고, 히트곡이 되면 타성에 젖어서 부르기 쉽거든요. 똑같은 멜로디, 노랫말이 지루하니까 거기에 장식을 넣고. 그걸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제 밴드들에게 항상 부탁하는 게 “수십 만 번 부른 노래라고 해서, 타성에 젖어 부르고, 다른 장식을 넣지 않도록 나의 옴부즈맨이 되어줘”라고 해요.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떨어지면, 악기인 몸이 낡고, 약해져서 음역을 낮춰서 부를 수는 있겠지만 다른 도구로 음악을 장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실만 담아서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플디가 묻는다
ehoxkd님/ 무대 위 카리스마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원래 성격도 그렇게 카리스마 있으세요?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면요?
“이거, 또 여성스럽게 안 보인다는 얘기인데(웃음)? 관객들과 교감이 되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변해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거죠. 관객 여러분들이 만들어주고, 음악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관객 분들이 끊임없이 교감을 해주시니까, 제가 무대에서 잘난 척 하는 거에요. “나 잘했지?” 막 이런 거거든요. 제가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이에요. 그래서 스탭들이 힘들어해요. 예를 들면, 악기 라인, 잭 같은 걸 제대로 정리 안하면 저한테 죽어요. 건반에 먼지 있으면 혼나고. 이런 걸 잘 못 봐요. 옷에 보풀 생기는 것도 싫어해서 보풀이 생기는 옷은 절대 안 입어요. 이럴 때 보면, 저 스스로도 여성스럽다고 느껴요.”

Teoneo 님/ 아끼는 후배가 있다면?
“이 질문은 제가 평생을 듣고 있는데,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서 “누가 마음이 들어요” 라고 말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얘기하면 제가 그 친구만 인정한 걸로 기사가 나서 되게 웃기게 되더라고요. ‘애인 있어요’가 한창 리메이크 될 때 “누구 버전 들어봤어요””라고 물어보셔서 “네, 좋던데요” 했더니 제가 그 사람 노래만 인정하는 꼴이 된 거에요. 마케팅 할 때 이용하기도 하고. ‘이은미가 유일하게 인정한’ 이래 버리니까. 파장이 큰 질문이 되고, 답변이 돼서 딱히 누구라고 말하기도 그래요. 그런데 정말, 다들 잘해요. 음악을 공부하는 기관까지 생겨서 그런지 분석도 잘하고. 뛰어난 후배들이 많아졌어요.

Conkoco 님/ 실례되는 질문이지만...결혼은 언제쯤으로 생각하세요?
모르죠, 이거야 말로 하늘이 내려주시는 일이니까. 이건 제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잖아요. 그저 뭐 조인성씨를 언제 한 번 보나(웃음). 제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겠죠? 그랬으면 좋겠어요.”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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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3

  • A** 2009.12.15

    너무 기대되는 공연입니다! 빨리 공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A** 2009.12.15

    자유로운 영혼~ 너무 멋져요~ㅎ 이은미씨 얘기를 직접 듣는것 같네요. ^ㅡ^ 빨리 콘서트 가구 싶어효~

  • A** 2009.12.15

    평소에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보니 정말 더 멋지세요!! 그리고 기자님 제 질문 해주셔서 감사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