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에서 온 목소리, 정인
작성일20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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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수사로 표현의 끝을 내는 것은 매우, 많은 경우에서 정확하지 않다. 초콜릿은 달콤하면서 쌉사름하고, 눈물은 기쁨이나 슬픔이며, 침묵은 긍정이거나 외면일 때가 있지 않은가. 어디선가 정인의 노래가 들려올 때, 그녀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단 한 단어로 설명하려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녀의 음은 깊고 높으며, 거칠며 여리기도 한 듯 하다. 마음을 방방 뛰게 하다가도 짜르르 떨게 만든다. 김C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목소리’라고 했단다. 그래, 가장 객관적이며 세밀한 표현으로 지금은 이 말을 삼도록 한다. 아직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지 못했기에.
“닥쳐야 와 닿고 느끼지, 다른 팀과 했을 때처럼 또 하나의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른 모습을 나중에 보게 되면 펑펑 울거든요. 아마 이번에도 끝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엄청 감동 받고(웃음).”
대중 속에 목소리를 선보이길 8년. 지금에서야 첫 솔로 미니 앨범을 내고 홀로 선 무대를 감격으로 채우고 있는 정인은 자신의 이름이 포스터에 곧게 새긴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휘성, 리쌍, 빅마마의 이영현과 함께 하는 콘서트
“저 역시 대중의 한 사람으로 ‘상당히 색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신기한 조합이잖아요. 과거 조인트 콘서트가 솔로 보컬들이 주로 뭉친 거였다면, 이번에는 저도 그렇고, 리쌍, 이영현씨도 다 어느 그룹이고, 멤버죠. 시작부터 차별화 된 거잖아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르니 그 사람들의 무대 역시 다를 수 밖에 없고요.”
가창력 뿐만 아니라 힙합, R&B, 소울 등 개성이 또렷이 녹아 있는 깜짝 놀랄 보이스의 이들이 빚어낼 제 4의 음과 색은 이번 공연의 핵심일 것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전체적으로 다듬어 가면서 공연을 준비해도 되겠습니까”하던 휘성의 발언에 모두가 “두 손들어 우리는 땡큐!”를 외쳤다는 이번 무대에서 정인은 내심 기대하는 것이 또 한가지 있었다.
“휘성 씨가 프로듀서로 나선 것도 좋은데, 이번 기회에 말을 놓았으면(웃음). 고등학생 때 춤추고 노래하던 휘성 씨를 처음 봤는데, 정말 멋있잖아요(웃음). 서로 안 지는 꽤 됐는데 그간 인사만 몇 번 했지 말을 놓은 적이 없어요, 동생인데. 누구나 관심 가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콘서트 한단 이야기 들고는, 아, 드디어 말을 놓는 기회가 되겠구나! 했죠.(웃음)”
정인,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로 안착
“리쌍 노래를 하고부터 힙합 쪽, 언더 쪽에서도 많이 연락이 왔어요. 안 세봐서 잘 모르겠지만 스무 곡 넘게 피처링 했을 걸요?”
“그 동안 진작 솔로 앨범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참 미안하고 고맙다”며 울먹이던, 정인의 소속사 사장님이자 리쌍 멤버 길의 프로듀싱으로, 그녀는 가수 활동 8년 만에 올 3월 첫 번째 솔로 미니 앨범 ‘정인 From Andromeda’를 발매했다. 앨범이 나오자 마자 그녀를 이미 알고 있던, 귀가 좋았던 팬들과 음악 관계자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이적이 만든 타이틀 곡 ‘미워요’를 비롯, 알렉스와 타블로가 함께한 ‘Show’, 주얼리의 박정아와 하주연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Girls on Shock’, 그리고 정인의 오랜 남자친구와 함께 한 ‘고마워’까지 미니 앨범은 작지만 그녀만큼 단단하고 다채롭다.
“그간 제 개인 앨범이 없어서 조바심이 난다던가, 그런 건 없었어요. 분명 힘든 일도 많았지만,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1년이 지날 때마다 항상 한해 동안 한 일을 행각해 보면, 누구를 도와줬고, 그래서 세상에 내 노래 하나는 얹었구나, 그게 너무 재밌고 감사했죠.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 무조건 제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에겐 자신의 솔로 앨범은 특별한 의미가 아닐 수 없겠다.
“내 땅을 산 것 같아요. 세상에 땅은 많지만 나 하나 설 곳이 제대로 없잖아요. 그런 곳에서 내가 마음 놓고 서 있을 수 있는, CD 크기만한, 그 땅 위에는 서 있어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녀의 힘, 음악+사람
솔로 앨범 발매 후 그녀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 건 사실이다. 관객들을 위한 많은 라이브 무대를 비롯해 얼마 전 ‘무한도전’, ‘초콜릿’,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공중파 3사의 소위 ‘핫’ 하다는 프로그램 세 편에 동시에 출연한 것도 빼 놓을 수는 없겠다.
“역시 길 사장님이구나(웃음), 길 사장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길 잘했다, 그랬죠(웃음).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 하는 건 그렇다 쳐도 그 밖의 프로그램에서도 길 오빠나 적 오빠도 그렇고, 너무 고맙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참 감사해요. 방송 보면서 막 울었어요.”
“학창시절 단지 음악이 좋아 음악을 듣고, 그 목소리들을 따라 부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정인은 보컬리스트의 꿈도, 싱어송라이터의 꿈도 없이 ‘마냥 좋았던 음악을 듣고, 훔치며 내 것으로 자연스레 동화되는 과정’이 지금의 정인을 만들었음을 담담히 이야기 한다.
“제 목소리에 대해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도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지, 하는 것 보다 어떤 느낌으로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부른 노래도 있고(웃음) 지금도 집에서 박정현 언니 노래, 디바들의 노래도 연습해요.”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게 만들었던 그룹 지플라(G.Fla)도 그녀에겐 아쉬움 많이 담긴 쉼표로 남아 있다.
“밴드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많아요. 너무 즐겁고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밴드를 통해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마지막 싱글 앨범에 담기지 못한 곡들이 많은데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곡들 들으면서 ‘아휴, 내 새끼들, 내 새끼들’ 그래요. 밴드를 하고 싶단 생각 많이 하죠.”
이젠 “내 노래는 흑인 음악 안에 있어야 빛이 난다”는 과거의 고집보다 “교류를 통해 세상에 재미있는 게 훨씬 많고 색과 장르가 의미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정인이다.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선천적 청각 장애가 있지만, “오히려 음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정인이다.
하지만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성대 결절로 대화 목소리가 더욱 작았던 그녀에게서, “오늘의 첫 식사”라며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반갑게 스파게티 한 접시와 만나고 있는 그녀에게서, 상대의 눈을 절대 놓지 않으며 재잘거리는 사랑스러운 모습이 절로 배어 나왔다. 정인의 솔로 노래가 음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어도,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하려면, 머리를 내려 놓고 앞뒤 재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쉽진 않지만, 전 뇌를 잘 빼 놓는 사람이라(웃음). 전엔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갖든 말든(웃음) 서른 다섯, 마흔 살 정도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거든요. 근데 이젠 바뀌었어요. 패티김 선생님처럼,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노래하고 끝까지 창작활동 하고 싶어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도전해 보고 싶어요.”
오늘의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다던 한 여자를, 이제 공연이 있을 내일까지 생각하게 하고, “사람들이 내 노랠 사랑해 주지 않으면, 궁상맞더라도 자체 제작해서 유투브에라도 올려서 끝까지 해 보고 싶다”며 웃는 강인하고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음악을 향한 가슴 속 황홀한 구애의 씨앗을 좋은 토양에서 품으며 태양이 제 때 비춰줄 때까지 열심히 기다려 온 인내. 바로 정인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의 해답인 듯 하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주미경(club.cyworld.com/docuherb) / 장소_아이 해브 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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