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아 전국 투어 콘서트 - 인순이는 노래한다
작성일2011.09.30
조회수11,197
예정된 인터뷰 진행을 하루 앞두고 탈세 의혹이 불거졌다. 공식 입장 표명을 하기 전이었던 그때,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시기에 만남은 불발로 향하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다. 지난 시간, 그리고 지금, 그녀의 노래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여 온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창력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무대를 두고 “이처럼 떨렸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건, 경연이 주는 당연한 긴장감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가수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더욱 클 것이다.
가수의 이름으로 33년. 인순이는 긴 녹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핫팬츠를 입고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며 춤출 때 발산하던 강렬함이 절절함으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나가수’에서 더욱 인상 깊었던 무대는 예전의 강렬하고 에너지 넘쳤던 모습과 반대로 매우 서글프고 애절했어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보통 노래할 땐 방송국에서 원하는 것만, 너무나 간섭을 많이 받는데 나가수는 모든 걸 우리에게 다 줬어요.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든 청중평가단의 점수를 얻어 내라는 것이죠. 생각하지 못했던 곡들을 부르게 되도, 경험했던 많은 것들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거죠. 평소에 못 보셨던 그런 부분들, 어찌 보면 내가 숨기고자 했던 부분까지 보이는 것 같아요. ‘서른 즈음에’를 만나면 본연의 내가 나올 수 밖에 없어요.
데뷔 33년 가수 인생으로 ‘서른 즈음’인 지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후회는 없어요. 저는 정말 충분히 성실히, 순간순간을 노력하면서 살았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나름 많이 생각도 해서 어떨 때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고, 진하게 노래로서 보여준 적도 있고, 또 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깜짝 놀라게 해 준 적도 있고요. 창도 배웠고, 재즈도 배웠고 뮤지컬도 배웠어요. 제가 갖고 있는 역량보다 조금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시작 후 30년이 넘는 시간 가수로 서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이 지구에 왔다가 떠나잖아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발도장 찍고 가고 싶었어요. 남들이 넌 안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저는 그 사람들 보란 듯이 우뚝 서고 싶었어요. 누군가 나에게 불쌍하다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당신보다 더 멋지게 살거야, 당신의 생각을 뒤엎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짐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행복하셨나요?
행복했어요. 나는 큰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밥 한 끼를 먹으면서도 “와, 맛있다, 맛있지? 맛있지?” 조잘조잘 이야기하면서 먹는 스타일이죠. 그 순간에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여름에 사람들을 만나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해요. 난 크리스마스가 너무 좋아요. 화려해서도 좋고, 어렸을 때 교회 가면 맛있는 것도 많이 줬고. 왠지 그 날은 선물 주고 받고 들뜨는 날이잖아요. 매일이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행복 속에서 노래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겠죠.
노래는 나를 세운 거잖아요. 노래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통로에요.
정규 앨범만 17집. 그룹 희자매에서 솔로 데뷔 후, 대중의 머릿속에 인순이의 이름을 강하게 세긴 ‘밤이면 밤마다’는 1984년에 탄생했고, 신세대 가수들과 같은 공간에서 화려한 댄스 무대를 선보여 폭발적인 환호를 끌어냈던 ‘또’는 1996년에 태어났다. 조피디와 함께 해 더욱 놀라웠던 ‘하이어’는 2004년 곡이며, 카니발의 곡을 리메이크해 선보여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희망가가 되었던 ‘거위의 꿈’은 2007년 발표곡이다. 잠시 우리가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해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후에 또 다시 인순이를 깨닫게 하는 건 그녀가 애써 빚은 새로움, 놀라움, 그리고 변하지 않는 힘있는 목소리일 것이다.
‘나가수’, 콘서트, 나이트 클럽 등 노래하는 무대는 저마다 성격이 다르지요. 그 무대에 서는 마음도 따라 다를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어떤 관객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제가 하는 이야기가 달라지고, 노래하는 스타일도, 선곡도 달라지거든요. 어느 행사를 가더라도 현장에서 레퍼토리를 짜는 스타일이에요. 현장에 가서, 관객들을 보고, 연령층을 보면 대강의 취향을 알 수 있잖아요. 꼭 내 곡이 아니더라도 남의 노래를 갖고서라도 그 분위기에 맞추는 스타일이죠.
무대에서 내가 돋보이는 것 보다 관객들의 만족이 우선이라는 뜻인가요.
그럼요. 그렇게 하면서 느끼게 된 게, 내가 무대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관객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무대에 내가 빠져드니까 관객들이 무대로 온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무대에서 자존심을 세울 때도 있어요. 젊은 애들이 나가는 프로그램에 많이 나간 후 ‘열린음악회’나 ‘7080콘서트’를 나간다고 하면 반드시 드레스를 입고, 꼭 추억의 노래를 불러요. 젊은이들 프로그램에 나가서 핫팬츠도 입고 정신 없이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그저 주책없는 아줌마, 인기에만 연연하는 아줌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중심을 잡아가는 거에요. ‘나가수’ 처음에 나갔을 때 드레스를 입은 것도, 똑같이 후배 가수들과 경합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걸 우선으로 하겠다는 무언의 표시였어요.
후배들과 격렬하게 춤추며 노래하는 것 보다는 드레스를 입고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선배 가수의 위치에서는 더 수월한 일이 아닐까요?
그것이 제 도전이죠. 젊은 이들에게 우리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안 했을 뿐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흘러간 가수로 치부해 버리기 쉬운데, 난 아니라는 거죠. 봐라, 나는 할 수 있다, 하고요. 안 보여주면 설명이 안되잖아요. 그 연습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입으려면 몸도 가꿔야 하죠. 또 겉만 번지르르 하면 뭐해요, 노래도 연습 해야 하고. “나, 너희들 보다 노래 연습 더 하고 있거든?” 하고요.
또 중견들에게도 우리가 못 해서 안 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요. 아이들 키우느라, 며느리이고 부인이고, 계속 옥죄어 오는 상황에 못하게 됐을 뿐이지, 왕년에 다 한 번씩 놀아봤지 않느냐, 이제 우리 다시 여자로 돌아가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중견들이 절 보고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데요.
본인의 의지 뿐 아니라 주변 환경 때문이라도 용기를 내기가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사회는 많이 개방되었는데 본인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 엄마인데,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거죠. 그것만 딱 탈피하면 ‘나’를 생각할 수 있어요. 제가 이렇게 하고 다닌다고 해서 이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처음이 어려운 것이죠.
라스베가스 공연 갔을 때, 앞에 너무 예쁜 여자가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클러치 백을 들고 가는 걸 보고, 와, 진짜 멋있다, 하고 봤더니 할머니시더라고요. 주름이 잔뜩 있는데도 빨간 립스틱 바르시고,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 할머니를 보고 나도 여자로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이크를 쥐고, 단지 나를 보기 위한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수 많은 관객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을 자신감, 그 눈빛들에 보답할 수 있는 실력, 그리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가수로서의 존재감이 절정으로 달할 수 있는 곳 콘서트장. 지난 9월 17일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 충주에 이어 10월 30일 서울, 11월 5일 안동까지 인순이의 전국투어 콘서트 ‘판타지아’가 진행 중이다.
부를 노래를 현장에서 정한다는 건, 그만큼 소화할 수 있는 곡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제 노래만 고집하지 않고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노래도 하지요. 내 히트곡은 이 노래니까, 이것만 해야지, 하면 금방 자기 안에 갇혀 버리죠.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전국투어 콘서트에서도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지 않은 건 아니죠?(웃음)
콘서트는 다르죠. 이미 지방 공연은 시작했는데 잘 되고 좋았어요. 관객도 많고. 게스트 없이 2시간 40분 동안 해요. 우리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셨어요. 게스트가 있으면 그 가수에게 집중을 못하고 공연의 흐름이 망가지거든요. 그래서 좀 시간을 줄이더라도 혼자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뮤지컬 <시카고>의 노래도 하고, 이번에 <캣츠>에서 부르는 ‘메모리’도 해요. ‘링링동’, ‘런투유’, ‘챔피온’도 부르고 트로트도 부르죠. 관객 연령 폭이 워낙 넓거든요.
콘서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신 건가요?
‘나’라는 사람을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방송에서 보던 것 뿐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거니까. 여전히 누군가가 날 봐 주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죠.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 역도 맡으셨어요.
하나 착각을 한 게 있어요. 보통 대극장 뮤지컬에서 배우들은 크고 우렁차게 하잖아요. 그런데 <캣츠>에서 그리자벨라는 웅크린 몸을 펴지도 못해요. 그래서 연습할 때 목소리가 안 나와서 혼났어요, 주눅도 들고 그러니까. 그런데 이젠 조금 익숙해졌어요. 터트리는 건 마지막에 딱 한번 ‘터~치, 미!’ 할 때.(웃음)
객석에 ‘인순이’라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무대 위의 가수 인순이는 어떤 노래를 불러주고 싶으세요?
나에게요? 음. ‘서른 즈음에’요. 그 시절을 지나왔잖아요. 그리도 또 다른 나이를 만나야 하고. 내가 보내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간 것도 아닌데 시간이 가고 있는 걸 절절히 느끼거든요, 이제.
‘아버지’도 그래요. 자식들과 엄마와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르잖아요. 아버지와는 결국은 용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아버지를 용서 해야 할지,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지. 그리움이 더 많이 배어나고. 같이 있을 때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에게도 화해고 그리움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많은 분들을 울리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세월 뭍은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발 맞춰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요. 세월 가는 걸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먼저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 때에 맞춰 많은 사람들과 걸어갈 수 잇는 친구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을 보다가도 ‘어? 어디있지?’ 하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제공: 월드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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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력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무대를 두고 “이처럼 떨렸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건, 경연이 주는 당연한 긴장감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가수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더욱 클 것이다.
가수의 이름으로 33년. 인순이는 긴 녹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핫팬츠를 입고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며 춤출 때 발산하던 강렬함이 절절함으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보통 노래할 땐 방송국에서 원하는 것만, 너무나 간섭을 많이 받는데 나가수는 모든 걸 우리에게 다 줬어요.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든 청중평가단의 점수를 얻어 내라는 것이죠. 생각하지 못했던 곡들을 부르게 되도, 경험했던 많은 것들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거죠. 평소에 못 보셨던 그런 부분들, 어찌 보면 내가 숨기고자 했던 부분까지 보이는 것 같아요. ‘서른 즈음에’를 만나면 본연의 내가 나올 수 밖에 없어요.
후회는 없어요. 저는 정말 충분히 성실히, 순간순간을 노력하면서 살았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나름 많이 생각도 해서 어떨 때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고, 진하게 노래로서 보여준 적도 있고, 또 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깜짝 놀라게 해 준 적도 있고요. 창도 배웠고, 재즈도 배웠고 뮤지컬도 배웠어요. 제가 갖고 있는 역량보다 조금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나 역시 이 지구에 왔다가 떠나잖아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발도장 찍고 가고 싶었어요. 남들이 넌 안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저는 그 사람들 보란 듯이 우뚝 서고 싶었어요. 누군가 나에게 불쌍하다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당신보다 더 멋지게 살거야, 당신의 생각을 뒤엎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행복했어요. 나는 큰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밥 한 끼를 먹으면서도 “와, 맛있다, 맛있지? 맛있지?” 조잘조잘 이야기하면서 먹는 스타일이죠. 그 순간에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여름에 사람들을 만나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해요. 난 크리스마스가 너무 좋아요. 화려해서도 좋고, 어렸을 때 교회 가면 맛있는 것도 많이 줬고. 왠지 그 날은 선물 주고 받고 들뜨는 날이잖아요. 매일이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노래는 나를 세운 거잖아요. 노래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통로에요.
정규 앨범만 17집. 그룹 희자매에서 솔로 데뷔 후, 대중의 머릿속에 인순이의 이름을 강하게 세긴 ‘밤이면 밤마다’는 1984년에 탄생했고, 신세대 가수들과 같은 공간에서 화려한 댄스 무대를 선보여 폭발적인 환호를 끌어냈던 ‘또’는 1996년에 태어났다. 조피디와 함께 해 더욱 놀라웠던 ‘하이어’는 2004년 곡이며, 카니발의 곡을 리메이크해 선보여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희망가가 되었던 ‘거위의 꿈’은 2007년 발표곡이다. 잠시 우리가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해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후에 또 다시 인순이를 깨닫게 하는 건 그녀가 애써 빚은 새로움, 놀라움, 그리고 변하지 않는 힘있는 목소리일 것이다.
그럴 수도 있어요. 어떤 관객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제가 하는 이야기가 달라지고, 노래하는 스타일도, 선곡도 달라지거든요. 어느 행사를 가더라도 현장에서 레퍼토리를 짜는 스타일이에요. 현장에 가서, 관객들을 보고, 연령층을 보면 대강의 취향을 알 수 있잖아요. 꼭 내 곡이 아니더라도 남의 노래를 갖고서라도 그 분위기에 맞추는 스타일이죠.
그럼요. 그렇게 하면서 느끼게 된 게, 내가 무대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관객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무대에 내가 빠져드니까 관객들이 무대로 온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무대에서 자존심을 세울 때도 있어요. 젊은 애들이 나가는 프로그램에 많이 나간 후 ‘열린음악회’나 ‘7080콘서트’를 나간다고 하면 반드시 드레스를 입고, 꼭 추억의 노래를 불러요. 젊은이들 프로그램에 나가서 핫팬츠도 입고 정신 없이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그저 주책없는 아줌마, 인기에만 연연하는 아줌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중심을 잡아가는 거에요. ‘나가수’ 처음에 나갔을 때 드레스를 입은 것도, 똑같이 후배 가수들과 경합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걸 우선으로 하겠다는 무언의 표시였어요.
그것이 제 도전이죠. 젊은 이들에게 우리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안 했을 뿐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흘러간 가수로 치부해 버리기 쉬운데, 난 아니라는 거죠. 봐라, 나는 할 수 있다, 하고요. 안 보여주면 설명이 안되잖아요. 그 연습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입으려면 몸도 가꿔야 하죠. 또 겉만 번지르르 하면 뭐해요, 노래도 연습 해야 하고. “나, 너희들 보다 노래 연습 더 하고 있거든?” 하고요.
또 중견들에게도 우리가 못 해서 안 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요. 아이들 키우느라, 며느리이고 부인이고, 계속 옥죄어 오는 상황에 못하게 됐을 뿐이지, 왕년에 다 한 번씩 놀아봤지 않느냐, 이제 우리 다시 여자로 돌아가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중견들이 절 보고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데요.
오히려 지금 사회는 많이 개방되었는데 본인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 엄마인데,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거죠. 그것만 딱 탈피하면 ‘나’를 생각할 수 있어요. 제가 이렇게 하고 다닌다고 해서 이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처음이 어려운 것이죠.
라스베가스 공연 갔을 때, 앞에 너무 예쁜 여자가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클러치 백을 들고 가는 걸 보고, 와, 진짜 멋있다, 하고 봤더니 할머니시더라고요. 주름이 잔뜩 있는데도 빨간 립스틱 바르시고,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 할머니를 보고 나도 여자로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이크를 쥐고, 단지 나를 보기 위한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수 많은 관객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을 자신감, 그 눈빛들에 보답할 수 있는 실력, 그리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가수로서의 존재감이 절정으로 달할 수 있는 곳 콘서트장. 지난 9월 17일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 충주에 이어 10월 30일 서울, 11월 5일 안동까지 인순이의 전국투어 콘서트 ‘판타지아’가 진행 중이다.
그럴 수도 있어요. 제 노래만 고집하지 않고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노래도 하지요. 내 히트곡은 이 노래니까, 이것만 해야지, 하면 금방 자기 안에 갇혀 버리죠.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콘서트는 다르죠. 이미 지방 공연은 시작했는데 잘 되고 좋았어요. 관객도 많고. 게스트 없이 2시간 40분 동안 해요. 우리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셨어요. 게스트가 있으면 그 가수에게 집중을 못하고 공연의 흐름이 망가지거든요. 그래서 좀 시간을 줄이더라도 혼자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뮤지컬 <시카고>의 노래도 하고, 이번에 <캣츠>에서 부르는 ‘메모리’도 해요. ‘링링동’, ‘런투유’, ‘챔피온’도 부르고 트로트도 부르죠. 관객 연령 폭이 워낙 넓거든요.
‘나’라는 사람을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방송에서 보던 것 뿐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거니까. 여전히 누군가가 날 봐 주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죠.
하나 착각을 한 게 있어요. 보통 대극장 뮤지컬에서 배우들은 크고 우렁차게 하잖아요. 그런데 <캣츠>에서 그리자벨라는 웅크린 몸을 펴지도 못해요. 그래서 연습할 때 목소리가 안 나와서 혼났어요, 주눅도 들고 그러니까. 그런데 이젠 조금 익숙해졌어요. 터트리는 건 마지막에 딱 한번 ‘터~치, 미!’ 할 때.(웃음)
나에게요? 음. ‘서른 즈음에’요. 그 시절을 지나왔잖아요. 그리도 또 다른 나이를 만나야 하고. 내가 보내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간 것도 아닌데 시간이 가고 있는 걸 절절히 느끼거든요, 이제.
‘아버지’도 그래요. 자식들과 엄마와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르잖아요. 아버지와는 결국은 용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아버지를 용서 해야 할지,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지. 그리움이 더 많이 배어나고. 같이 있을 때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에게도 화해고 그리움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많은 분들을 울리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 뭍은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발 맞춰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요. 세월 가는 걸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먼저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 때에 맞춰 많은 사람들과 걸어갈 수 잇는 친구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을 보다가도 ‘어? 어디있지?’ 하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제공: 월드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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