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듀오, 다시 쓰는 이력서
작성일2009.08.20
조회수13,023
일찍이 초짜의 딱지를 뗀, 타짜 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장소에서는 존경 받는 선배님 대접을 받는 데뷔 십년차 대한민국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 힙합바지에서 일자바지, 스키니로 휙휙 변했던 지난 십 년 동안 묵묵히 ‘힙합’이라는 한 우물을 판 최자와 개코의 십 년 이력에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험난한 여정이 있다.
"1990년, 신사동 아이들의 힙합 점령기"
헤비급 최자(최재호)와 라이트급 개코(김윤성)의 첫만남은 십 년의 시간을 훌쩍 거슬러 간다. 최자와 개코가 음악이라는 코드로 묶이게 된 것 초등학교 때부터다.
“둘 다 신사동에 살았는데, 동네에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외국 옷이나 과자, 음반 등 외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죠. 그게 계기가 되서 개코랑 제가 외국음악,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문제집 살 돈으로 각자 시디를 사서 서로 돌려 듣고, 흉내도 내고 그랬죠.” (최자)
엠시 해머, 노티 바이 네이처를 듣고 그야말로 ‘필’을 받은 두 사람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모님 앞에서 ‘푸쳐핸섬’을 외치며 힙합의 묘미를 온몸으로 익혔다.
“가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들리는 대로 받아 적으면서 따라 했어요. 부모님 앞에서도 신나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죄다 ‘강간, 살인’ 그런 내용이었더라고요.” (개코)
"2000년, 힙합가수가 되다"
CB MASS로 시작한 가수로서의 첫 출발은 참으로 상쾌했다.
“그 때는 시작부터 모든 게 순조로웠어요. 최자랑 제가 음악이 정말 하고 싶었을 때, 커빈형이 같이 하자는 말을 해줬죠. 고민도 안 했어요, 그냥 단순하게 음악을 하고 싶은 욕망을 해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개코)
“모든 게 다 의욕적이었죠, 처음부터 반응이 좋아서 신나게 했죠.” (최자)
달콤한 칭찬들을 온몸으로 수집하며 전성기를 달릴 때쯤 ‘아는 사람들은 안다’는 사건을 겪으며 세 장의 앨범을 끝으로 CB MASS를 해체하게 된다.
"2003년, 셋 보다 나은 둘"
CB MASS를 벗어난 두 사람의 첫 출발은 험난했다. 셋을 알아주는 곳은 넘쳐났지만, 둘을 알아봐주는 곳은 없었다.
“서러웠어요. 셋이 있을 때는 어디를 가도 “계약합시다” 이러더니 둘이 되니까 대우가 달라지는 거에요. 너네 둘이 되겠냐는 분위기. 그 때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거든요, 원래 술을 안 먹는 편이었는데 소주가 참 달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어요.” (개코)
“술 멤버가, 에픽하이였어요. 거의 매일 저희 집에 모여서 술만 먹었죠. 에픽하이도 저희 처럼 앨범을 내줄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였잖아요. 낮에는 같이 마스터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찔러보고, 밤에는 이러다가 가수 못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신세 한탄하고. 다음 날 보면 다들 술에 취해서 쓰레기통에 머리 박은 채로 잠들어 있고(웃음).” (최자)
근면, 성실보다는 필 닿는 대로 살았던 힙합맨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생활패턴을 수능을 삼십 일 앞둔 고3 리듬으로 바꿨다.
“둘이 됐으니까, 무조건 잘 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에 대한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 때는 악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우리는 잘 되야 한다고 생각하고 독기를 품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도 지하철에서 가사를 쓰고.” (최자)
“그 때 저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거든요. 학교가 조치원이었는데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서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바로 와서 가사를 썼어요. 그 때는 정말, 꿈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주중에는 그렇게 각자 작업하고 주말에는 둘이 모여서 회의하고. 일주일에 곡 하나씩은 꼭 만들었어요.” (개코)
고진감래, 새옹지마. 언제나 그렇듯 옛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첫 앨범을 낸 다이나믹 듀오는 ‘셋보다 나은 둘’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재기에 성공했다.
“팬 분들은 다이나믹 듀오 1집을 제일 많이 아껴주세요.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십주년이 있는 것 같아요. 위기 없이 쭉 흘러왔다면, 여러 가지로 편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매너리즘에 빠졌겠죠.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해요.” (최자)
“인생을 버라이어티 하게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사를 쓸 게 없어요. 모험을 찾아서 즐겨야지요.” (개코)
"2006년, 좌충우돌 CEO"
멈추지 않는 개코와 최자의 모험정신은 급기야 본인들이 직접 회사를 세우는 도전을 저지르게 했다. 회사 이름에도 단순하고 고집스런 그들을 닮은 ‘아메바’라는 단어를 넣었다.
“재계약 조건이 좋았지만, 이렇게 쉽게 음악을 하면 저희가 고인 물이 될 것 같았어요. 심심해질 것 같았거든요, 음악이.” (개코)
“그런 면도 있었지만 저희 딴에는 그 동안에 쌓인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스타일대로 홍보도 하고, 저희랑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음악만 할 수 있는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뭐, 노하우라는 게, 쉽게 쌓이는 게 아니더
라고요. (웃음).” (최자)
초반에 수 만 가지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음반이 워낙 성수기와 비수기 차이가 많잖아요. 초반에는 회사에 수입이 없어서 넘어갈 뻔도 했죠. 모여서 회의 하는 게, 이 때쯤 되면 우리 망하겠다고 예언하고(웃음). 직원들이 합심해서 봉급도 줄이고 고생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안정화 됐죠.” (개코)
현재, 경영의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두 사람은 CEO 직함을 버리고 프로듀서로의 역량만을 발휘하고 있다.
"2009년, 군대 가는 길"
휴가 기간을 빼고는 365일 붙어 다닌다는 최자와 개코는 인생의 쓴맛을 원샷 할 수 있다는 군대에 동반 입대한다.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뭘 따로 한다는 게 어색해요. 휴가도 같이 맞춰나올 수 있으니까 좋죠.”(최자)
“최자 친구가 제 친구고, 제 친구들이 다 최자 친구거든요. 휴가 나오면 어차피 같이 놀아야 하니까(웃음). 늦게 가는 군대지만 걱정은 없어요, 군인들이 저희를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개코)
“군부대 공연을 갔는데, LPG 나올 때는 가만히 앉아있던 군인 분들이 저희가 나오니까 갑자기 일어서서 춤추고 난리였어요. 남자들이 새벽의 저주 같이 저희를 향해서 뛰어오는데 살짝 무서웠다니까요(웃음).” (최자)
개코가 군대에 간 사이에 회사에 소속된 그룹 슈프림팀이 계속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내밀자 최자의 걱정도 이어진다.
“콧수염을 밀어야 해서, 그게 걱정이에요. 지난 십 년 동안 뮤직비디오 찍을 때 딱 한 번 빼고 한 번도 민 적이 없거든요. 그 때도 무대에 설 때는 어색해서 매직으로 그리고 올라갔는데. 요즘엔 훈련소 사진이 인터넷에 뜨잖아요, 콧수염 없는 제 사진은 저희 식구들도 저인지 모를 거에요 아마.” (최자)
생활 속의 고됨과 감정이 묻어나는 솔직한 가사를 쏟아내는 솜씨가 일품인 두 남자는 군대에서 만난 다양한 느낌표들을 틈틈이 가사로 담아낼 예정이다.
“저희가 군대에 간 이후에도 새로운 곡이 나올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해뒀어요. 그 때 발표되는 건 방송을 안 해도 되니까, 심의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이 편안하게 썼거든요. 전에는 가사에 욕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걸 넣어도 되나? 하면서 한 번 생각하고 썼는데. 이번에는 쓰고 싶은 내용을 쭉 담았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을 거에요.” (개코)
“저희 음악이 CF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상업적, 대중적인 맛을 내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나쁜 방향으로 듣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으니까 여러 명이 듣는 거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니까 상업적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부러 그런 걸 배제하고 만들면 웃기잖아요. 저희가 군대에 간 이후에 나오는 음원들이 저희에게 실험적인 느낌이 아쉽다고 느꼈던 분들을 만족 시켜드릴 거에요.” (최자)
"십 년 후를 향해서!"
입대를 기준으로, 두 남자는 음악인생의 하프타임에 서 있다고 한다.
“저희가 제대 하는 2년 후에는 많은 게 변해있을 거에요. 음악 시장도, 또 저희들도요. 지금보다 더 새로운 걸 보여드리도록 노력해야지요.”(개코)
군입대 전, 펼쳐지는 다이나믹 듀오의 마지막 공연이 주목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화려한 게스트다.
“예전에는 공연 게스트를 부탁하면, “스케줄이 안되니까 다른 거 해줄게”라고 하셨던 분들이 이번에는 모두 한 번에 오케이를 해주는 거에요. 정말,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가 불쌍해 보이나(웃음)?” (최자)
“십 년 동안 같이 고생하고, 도움을 줬던 친구들이 전부 모인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차요. 이번 공연에서 스물 다섯 곡 정도를 부를 것 같은데, 공연시간이 심하게 길어질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죠.” (개코)”
수줍음 많은, 특유의 긍정의 힘을 전파시키는 서른 살 ‘미필’ 힙합청년의 폭발하는 에너지의 공연이 기대된다. 그리고 ‘군필’ 이력을 추가한 이후에 전하게 될 힙합듀오의 새로운 메시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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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신사동 아이들의 힙합 점령기"
헤비급 최자(최재호)와 라이트급 개코(김윤성)의 첫만남은 십 년의 시간을 훌쩍 거슬러 간다. 최자와 개코가 음악이라는 코드로 묶이게 된 것 초등학교 때부터다.
“둘 다 신사동에 살았는데, 동네에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외국 옷이나 과자, 음반 등 외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죠. 그게 계기가 되서 개코랑 제가 외국음악,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문제집 살 돈으로 각자 시디를 사서 서로 돌려 듣고, 흉내도 내고 그랬죠.” (최자)
엠시 해머, 노티 바이 네이처를 듣고 그야말로 ‘필’을 받은 두 사람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모님 앞에서 ‘푸쳐핸섬’을 외치며 힙합의 묘미를 온몸으로 익혔다.
“가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들리는 대로 받아 적으면서 따라 했어요. 부모님 앞에서도 신나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죄다 ‘강간, 살인’ 그런 내용이었더라고요.” (개코)
"2000년, 힙합가수가 되다"
CB MASS로 시작한 가수로서의 첫 출발은 참으로 상쾌했다.
“그 때는 시작부터 모든 게 순조로웠어요. 최자랑 제가 음악이 정말 하고 싶었을 때, 커빈형이 같이 하자는 말을 해줬죠. 고민도 안 했어요, 그냥 단순하게 음악을 하고 싶은 욕망을 해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개코)
“모든 게 다 의욕적이었죠, 처음부터 반응이 좋아서 신나게 했죠.” (최자)
달콤한 칭찬들을 온몸으로 수집하며 전성기를 달릴 때쯤 ‘아는 사람들은 안다’는 사건을 겪으며 세 장의 앨범을 끝으로 CB MASS를 해체하게 된다.
"2003년, 셋 보다 나은 둘"
CB MASS를 벗어난 두 사람의 첫 출발은 험난했다. 셋을 알아주는 곳은 넘쳐났지만, 둘을 알아봐주는 곳은 없었다.
“서러웠어요. 셋이 있을 때는 어디를 가도 “계약합시다” 이러더니 둘이 되니까 대우가 달라지는 거에요. 너네 둘이 되겠냐는 분위기. 그 때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거든요, 원래 술을 안 먹는 편이었는데 소주가 참 달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어요.” (개코)
“술 멤버가, 에픽하이였어요. 거의 매일 저희 집에 모여서 술만 먹었죠. 에픽하이도 저희 처럼 앨범을 내줄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였잖아요. 낮에는 같이 마스터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찔러보고, 밤에는 이러다가 가수 못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신세 한탄하고. 다음 날 보면 다들 술에 취해서 쓰레기통에 머리 박은 채로 잠들어 있고(웃음).” (최자)
근면, 성실보다는 필 닿는 대로 살았던 힙합맨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생활패턴을 수능을 삼십 일 앞둔 고3 리듬으로 바꿨다.
“둘이 됐으니까, 무조건 잘 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에 대한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 때는 악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우리는 잘 되야 한다고 생각하고 독기를 품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도 지하철에서 가사를 쓰고.” (최자)
“그 때 저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거든요. 학교가 조치원이었는데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서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바로 와서 가사를 썼어요. 그 때는 정말, 꿈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주중에는 그렇게 각자 작업하고 주말에는 둘이 모여서 회의하고. 일주일에 곡 하나씩은 꼭 만들었어요.” (개코)
고진감래, 새옹지마. 언제나 그렇듯 옛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첫 앨범을 낸 다이나믹 듀오는 ‘셋보다 나은 둘’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재기에 성공했다.
“팬 분들은 다이나믹 듀오 1집을 제일 많이 아껴주세요.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십주년이 있는 것 같아요. 위기 없이 쭉 흘러왔다면, 여러 가지로 편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매너리즘에 빠졌겠죠.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해요.” (최자)
“인생을 버라이어티 하게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사를 쓸 게 없어요. 모험을 찾아서 즐겨야지요.” (개코)
"2006년, 좌충우돌 CEO"
멈추지 않는 개코와 최자의 모험정신은 급기야 본인들이 직접 회사를 세우는 도전을 저지르게 했다. 회사 이름에도 단순하고 고집스런 그들을 닮은 ‘아메바’라는 단어를 넣었다.
“재계약 조건이 좋았지만, 이렇게 쉽게 음악을 하면 저희가 고인 물이 될 것 같았어요. 심심해질 것 같았거든요, 음악이.” (개코)
“그런 면도 있었지만 저희 딴에는 그 동안에 쌓인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스타일대로 홍보도 하고, 저희랑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음악만 할 수 있는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뭐, 노하우라는 게, 쉽게 쌓이는 게 아니더
라고요. (웃음).” (최자)
초반에 수 만 가지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음반이 워낙 성수기와 비수기 차이가 많잖아요. 초반에는 회사에 수입이 없어서 넘어갈 뻔도 했죠. 모여서 회의 하는 게, 이 때쯤 되면 우리 망하겠다고 예언하고(웃음). 직원들이 합심해서 봉급도 줄이고 고생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안정화 됐죠.” (개코)
현재, 경영의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두 사람은 CEO 직함을 버리고 프로듀서로의 역량만을 발휘하고 있다.
"2009년, 군대 가는 길"
휴가 기간을 빼고는 365일 붙어 다닌다는 최자와 개코는 인생의 쓴맛을 원샷 할 수 있다는 군대에 동반 입대한다.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뭘 따로 한다는 게 어색해요. 휴가도 같이 맞춰나올 수 있으니까 좋죠.”(최자)
“최자 친구가 제 친구고, 제 친구들이 다 최자 친구거든요. 휴가 나오면 어차피 같이 놀아야 하니까(웃음). 늦게 가는 군대지만 걱정은 없어요, 군인들이 저희를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개코)
“군부대 공연을 갔는데, LPG 나올 때는 가만히 앉아있던 군인 분들이 저희가 나오니까 갑자기 일어서서 춤추고 난리였어요. 남자들이 새벽의 저주 같이 저희를 향해서 뛰어오는데 살짝 무서웠다니까요(웃음).” (최자)
개코가 군대에 간 사이에 회사에 소속된 그룹 슈프림팀이 계속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내밀자 최자의 걱정도 이어진다.
“콧수염을 밀어야 해서, 그게 걱정이에요. 지난 십 년 동안 뮤직비디오 찍을 때 딱 한 번 빼고 한 번도 민 적이 없거든요. 그 때도 무대에 설 때는 어색해서 매직으로 그리고 올라갔는데. 요즘엔 훈련소 사진이 인터넷에 뜨잖아요, 콧수염 없는 제 사진은 저희 식구들도 저인지 모를 거에요 아마.” (최자)
생활 속의 고됨과 감정이 묻어나는 솔직한 가사를 쏟아내는 솜씨가 일품인 두 남자는 군대에서 만난 다양한 느낌표들을 틈틈이 가사로 담아낼 예정이다.
“저희가 군대에 간 이후에도 새로운 곡이 나올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해뒀어요. 그 때 발표되는 건 방송을 안 해도 되니까, 심의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이 편안하게 썼거든요. 전에는 가사에 욕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걸 넣어도 되나? 하면서 한 번 생각하고 썼는데. 이번에는 쓰고 싶은 내용을 쭉 담았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을 거에요.” (개코)
“저희 음악이 CF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상업적, 대중적인 맛을 내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나쁜 방향으로 듣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으니까 여러 명이 듣는 거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니까 상업적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부러 그런 걸 배제하고 만들면 웃기잖아요. 저희가 군대에 간 이후에 나오는 음원들이 저희에게 실험적인 느낌이 아쉽다고 느꼈던 분들을 만족 시켜드릴 거에요.” (최자)
"십 년 후를 향해서!"
입대를 기준으로, 두 남자는 음악인생의 하프타임에 서 있다고 한다.
“저희가 제대 하는 2년 후에는 많은 게 변해있을 거에요. 음악 시장도, 또 저희들도요. 지금보다 더 새로운 걸 보여드리도록 노력해야지요.”(개코)
군입대 전, 펼쳐지는 다이나믹 듀오의 마지막 공연이 주목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화려한 게스트다.
“예전에는 공연 게스트를 부탁하면, “스케줄이 안되니까 다른 거 해줄게”라고 하셨던 분들이 이번에는 모두 한 번에 오케이를 해주는 거에요. 정말,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가 불쌍해 보이나(웃음)?” (최자)
“십 년 동안 같이 고생하고, 도움을 줬던 친구들이 전부 모인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차요. 이번 공연에서 스물 다섯 곡 정도를 부를 것 같은데, 공연시간이 심하게 길어질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죠.” (개코)”
수줍음 많은, 특유의 긍정의 힘을 전파시키는 서른 살 ‘미필’ 힙합청년의 폭발하는 에너지의 공연이 기대된다. 그리고 ‘군필’ 이력을 추가한 이후에 전하게 될 힙합듀오의 새로운 메시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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