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씨, 이 버스 어디로 가나요?

출퇴근 시간대의 만원버스와는 격이 다른 고품격 버스가 시동을 걸고 있다. 소풍 떠나는 버스 안의 왁자지껄함, 그녀를 향해가는 버스에 탄 즐거운 떨림과 단풍놀이 가는 버스에서 만날 수 있는 질펀한 유머까지 가득 실었다. 핸들을 잡은 운전사, 김창완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래서 이 버스는 어디로 가나요?”

1977년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가 만들어낸 산울림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벌써’의 파워는 넓고 깊게 솟구쳤고 ‘음악의 천재 아닙니까?’라는 기분 좋은 의혹을 받으며 산울림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기념비적인 록그룹으로 자리잡았다. 산울림의 해체는 당혹스러웠다. 2008년, 막내 김창익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삼형제가 만들어냈던 울림들이 전설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창완은 산울림의 혼을 이어받은 신인밴드, 김창완밴드의 멤버로 돌아왔다.


"저희들은 신인이죠. 밴드 동생들과 저는 음악의 노예로 살기를 자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실한 자세로 음악과 만나고 있어요. 음악이 시키는 일이면 복종하고, 음악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요즘에는 앨범과 공연을 통해서 산울림과 차별화되는 김창완밴드 만의 서정성을 부각시키려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김창완밴드에는 산울림과는 또 다른 색이 더해졌다지만 그 출발은 산울림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산울림 시절 세션 멤버로 참여했던 이상훈(키보드), 최원식(베이스)의 사운드, 그리고 보컬 김창완의 목소리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창완밴드만이 가진 특색은 확실히 있어요. 산울림으로 활동할 때는 음악적인 한계가 많았던 게 사실이죠. 그런데 지금은 워낙 출중한 연주자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틀이 없고, 음악을 통해서 해방시키고, 제한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통한다는 점. 그게 가장 좋아요. ‘the happiest’랑 이번 ‘버스’앨범 들어봤어요? 차이점이 뭔가요?”

 
김창완의 갑작스런 역질문에 헤매던 기자는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내밀었다. “그렇구나, 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했어요”라며 김창완 특유의 웃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전달하는 건 감정이잖아요. 우리 스스로 ‘이것이 무엇입니다’라고 형상화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니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듣고 있는지 궁금할 수 밖에요. 우리가 ‘사과입니다’라고 불렀는데 배나 감으로 알아듣는 분도 계시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EP 형식으로 공개됐던 ‘the happiest’에 비해 첫 정규앨범인 ‘버스’에서는 편안함과 따뜻함의 강도를 높였다.

“갑작스런 사고 이후에 가장 넘쳤던 감정은 분노였어요. 그리고 절망. 그런 것들에서 빨리 빠져 나오고 싶어서 허둥대던 시기가 바로 ‘the happiest’를 만든 시기였죠. 그 때는 ‘분노의 자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는걸요. ‘버스’는 그런 마음들을 많이 가라앉혔죠. 저 스스로도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많이 담았어요. 실제로 음반 작업에 있어서도 멤버들이 허둥대는 부분도 없었어요. 저희 스스로도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으로 만들었거든요. 70년대 후반까지 있었던 LP컨셉 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에요. 앨범 전체가 통일성을 가지고 위로, 행복, 따뜻함을 전달해주려는 마음이 있거든요.”

소위 말하는 ‘요즘 노래’에 대한 김창완의 쓴 소리도 이어졌다.
“후크송이라고 하면서 몇 마디, 몇 소절로 사람들의 귀를 잡으려는 노래하고는 너무너무 달라요. 어쩌면 요즘 나오는 현란한 음악이 주는 힘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잔잔하게 전해져 오는 묵직한 힘이랄까? 가을의 정취에 맞는다고 할까? 소음공해가 넘치는 요즘에, 음악도 공해가 될 만큼 넘치고 있잖아요. 소란스러운 음악세계에 여백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할까요? 저희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에게 이런 기분을 전달하고 싶은 게 제 바람이기도 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김창완밴드의 그릇을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창완. 그는 확실히 젊어졌다. 홍대에서 열렸던 음반 쇼케이스 현장은 뜨거운 젊음의 열기로 가득 했다.


“정말 젊어졌어요. 열정은 차갑거나, 뜨겁거나 열정이잖아요. 우리가 여백이 되고 싶다, 여유를 주고 싶다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게 조용하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나뭇가지에 걸려서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잖아요, 그럼 순간적으로 사람이 굉장히 착해져요. 눈썹이 아래로 축 쳐지고, 땅바닥을 손으로 딱 잡고 아주 착한 개구리 모양으로 앉아있어요. 생전 생각도 안 하던 엄마 생각도 하고(웃음). 마찬가지에요. 어마어마한 소리에 맞춰서 헤드뱅잉하고, 뛰노는 광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어마어마한 차분함이 몰려와요. 닫아뒀던 자기 마음속의 용광로를 신나게 태우는 거죠.”

야무진 동생들과 함께 풍부한 울림, 생동감 있는 연주, 따뜻한 메시지를 안고 다시 돌아온 가수 김창완. 탤런트 겸 가수로 소개되는 그 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음악과 함께 할 때이다.

“음악소리가 나오는 게 행복해요. 김창완밴드는 이제 막 시작한 그룹이에요. 앞으로 어떤 밴드가 되고 싶다고 밝히는 건 시기상조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면 국제적인 밴드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원해주세요. 기분 좋은 건, 산울림 때 팬 분들도 계시지만, 김창완밴드에서 출발한 팬들도 많이 생겼다는 거에요.”

목적지도 인원제한도 없다는 묘령의 버스가 심상치 않은 출발을 알리고 있다. 김창완밴드의 버스와 함께 여백의 미가 넘치는 열정의 정류장으로 떠날 시간이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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