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이순재 “돈만 벌면 사업가, 배우는 평생 예술의 길 걷는 사람"

1935년 생, 올해로 일흔 일곱. 듣고도 믿지 못할 나이와, 보고도 믿기 힘든 모습이다. 그의 목소리는 실내를 울렸고, 그의 걸음은 방황이 없었다. 그러기에 배우 이순재는 드라마 두 편에 출연 중이며 내년 예정인 또 한 편의 작품 준비가 시작된 이 때에, 굳게 연극 무대를 더했다. 촉박한 일정과 변수 그 자체인 촬영 스케줄에도 어김없이 연극 연습실에 와 있던 그에게 연극 <돈키호테>에 관한 것만 물을 수 없었던 까닭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연기의 기본, 연기의 본질

바쁘시냐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바쁘죠. 밤에 학생들 워크숍 하는 것까지 있어서.(그는 12년간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내 수업 방식이 레퍼토리 하나 정해서 한 학기 동안 계속 하는 건데, 다른 수업 있으니 낮엔 안되고 7시부터 11시까지 쭉, 비는 저녁 시간에 매일 나가죠. 연출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애들에게 연기의 기본을 가르치고 연기의 본질을 가르쳐야 되기 때문에 거의 원작 그대로 하거든요. 그렇게 두 달 반 이상 연습을 해야 작품의 대사 전달이 그나마 되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무대를 놓고 계시지 않습니다.
80년대 중반 이후 내가 연극하고 거리가 좀 있었을 거에요. 70년대 중반 한번 어려운 일이 있기도 했고, 또 워낙 이쪽(드라마, 영화)이 바쁘다 보니. 어떻게든 시간을 꾸려서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상대 배우에게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 2000년에 서울시극단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하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2시간 40분을 풀로 했는데 나로서는 상당히 열심히 한 작품이에요. 1979년에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도시 공해, 환경 파괴에 관한 아서 밀러의 1949년의 경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애기죠. 또 세일즈에 대한 개념이 이젠 일상화 됐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됐고. 그리고 잘 풀어보면 부자지간, 부부간의 이야기, 가족적이고 동양적인 연극이에요.

동숭동에서 <늙은 부부 이야기>는 2년에 걸쳐서도 했고, 또 <라이프 인 더 시어터>(2008)는 연극열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기획 했다는, 그 점이 훌륭하고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참여했지요.


<돈키호테>를 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6,70년대 후반, 대학 나와서 제일 처음 일반 극단에서 한 게 국립극장이에요. <시라노 드 베르쥬락>에서 단역을 했지. 군 제대 후에 실험극장, 극단 산하, 주로 그 무대에서 모든 작품을 다 했기 때문에 명동예술극장은 내가 연기를 시작한 곳이고, 연기를 평생의 직업으로 자리잡은 터전이기 때문에 한번은 다시 해 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하게 됐어요.

연기의 꿈을 시작하고 키웠던 곳, 그곳에서 다시 한번

극단 여행자의 작품은 배우들의 신체 활용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연습에서도 검투 장면 등 격렬한 부분이 많이 나오네요.
그 부분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으니까 나도 맞춰서 해야 하는데. 돈키호테는 사실 그런 부분에 능한 사람이 아니에요. 욕심만, 의지만 있는 거지. 대단히 어눌하고 미숙할 수 있는 부분, 그게 돈키호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번 연극에선 돈키호테가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와 죽음을 맞는 대신, 끝까지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세르반테스의 시대적인 배경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돈키호테는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죠. 수 많은 책을 읽고 거기에서 온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있을 수 있지만, 돈키호테는 대단히 단순한 인물일 수 있어요. 자기가 가진 원칙 세 가지, 사랑, 정의, 약자, 이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 행위를 지속하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일반 지성인과의 차이죠. 일반 지성인들은 현실에서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주저하게 된단 말이야, 자기 안위를 생각하든지, 자기 이해를 생각하든지. 돈키호테는 행위를 실행하는 데 주저가 없단 말이죠.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사람, 숭고한 사랑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사람, 이런 돈키호테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는 거에요. 그의 기백과 용기, 가치관이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게 아닌가, <돈키호테> 작품의 평가가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굳은 가치관에 따라 한길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돈키호테와 배우 이순재,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할 50년대 중반에는 배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바닥이었고, 수익적 기능도 아주 약했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에 절제가 없는 직종이다, 나쁜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그렇게 표현을 했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출발했으니 이걸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또 인기를 얻고 명성을 쌓기 위해서, 신분을 높이기 위해서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어느 순간, 대학 때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의 모습을 보고, 저것도 하나의 예술적 경지 아니겠는가, 예술의 창조력이 있는 경지, 저런 정도면 한번 해 볼 만 하지 않겠는가’에서 시작했단 말이에요.


지금이야 홍보대사 해달라고 사방에서 그러지만, 그 땐 홍보대사 근처에 가지도 못했고, 돈 도 못 버는 직종에. 그래도 고생고생하며 했던 건 어떤 가치간과 창조력이 우릴 지배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연극도 수익 상황만 생각하면 못하지, 연극 자체니까, 연극 자체니까 참여하는 거죠.

돈 벌고 관두면 사업가, 예술의 목적으로 평생을 걸어야

연극과 연기의 의의를 반드시 금전적인 가치 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반문도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지금 이 행위를 하면서 어떤 목표를 가지느냐”하고 물어봐요. 2000년도 들어오면서 고수익의 톱스타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걸 목표로 하느냐, 아니면 평생 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치관을 목표로 하느냐. 현실은 그 두 의미가 같이 존재한다고 봐요. 그러나 거기엔 탁월한 용모라든지 신체조건을 타고나야 되고, 그건 부모에게서 받는 거라 어떻게 할 수 없단 말야. 물론 요즘엔 많이 개조하고 나오지만은.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예술 창조가 반드시 돈과 결부된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능력으로 전제(신체 조건 등)를 압도할 수 있는 거고, 그런 사람은 평생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하는 건 평생 하는 사람들 이야기고, 그게 예술가의 길이죠. 돈 벌고 관두면 그건 사업가지. 사업적 목적으로 하느냐, 예술적 목적으로 하느냐. 예전에 우리는 사업적 목적이 요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한 방법 밖에 없었어요. 지금과는 출발부터, 정신적 입장부터 전혀 달랐죠.

현재 활동하는 배우로서, 후배 배우들과 무대를 앞둔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배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말이에요. 요즘엔 다른 건 다 잘하는데 화술이 약해서 말만 시키면 역할이 안 나와요.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우리 말에 대한 올바른 지도가 있어야 된단 말이죠. 요즘 우리 젊은 친구들이 무대나 영화, TV에서 쓰는 영어를 한국말 하듯 정확하지 않게 했으면 전달도 안되고 굉장히 부끄러워했을 텐데, 그래서 영어는 발음에 치중하면서 왜 우리 말은 제대로 안 하느냐는 거죠. 어찌 보면 교육적인 부분에서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거라고 봐요. 그래선 안되는데. 교육이라는 건 애들을 가르칠 땐 친밀하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작품, 욕심나는 배역이 있으신가요?
많죠, 많죠.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으니까. 이번에 <돈키호테>를 했지만 셰익스피어 작품도 우리 나이든 사람들이 할 역할이 많아요. 샤일록이라든지, 리어, 맥베스라든지. 그런 역할들이 기회가 있다면 하고 싶어요.

과거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페르루치오 역을 했었고, <맥베스>에서 말콤을 하기도 했어요. 최근엔 셰익스피어 작품을 변형해서 여러가지로 하는데, 역시 셰익스피어의 진수는 오리지널을 어떻게 하느냐,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모든 예술적 다이얼로그, 인문학적 다이얼로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는 거란 말이에요. 배우의 작업은 여기에 있는 거지요. 새롭게 변형하는 건 연출작업이지 배우의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오히려 한국 관객들이 원형에 대해 상당히 목말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고전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무대 작업에서 연출의 독창성이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지만, 무대는 배우의 무대지, 연출가의 무대는 아니란 말이에요. 배우의 예술은 역시 연극이니까. 어느 정도 부분은 배우에게 남겨 줬으면 좋겠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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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10.12.01

    이순재 선생님! 홧팅!!!!!!!! 대단해요... 기분이 좋습니다. 기대됩니다^^